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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올림픽 휴전’의 지혜, 평창서 발휘될 때

중앙선데이 2017.09.10 01:47 548호 22면 지면보기
[세상을 바꾼 전략] 올림픽과 평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선수단 기수들이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선수단 기수들이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꼭 17년 전인 2000년 9월 10일,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닷새 후 열리는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에 남북한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함께 입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때 처음 성사된 남북한의 올림픽 개막식 동시입장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과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그리고 기타 대회의 개막식으로 이어지다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부터 중단됐다.

군사국가였던 그리스 도시국가
BC 776년 휴전 위한 올림픽 개최

1차대전 중 베를린 올림픽 취소 등
근대 100년간 평화·휴전 목표 삐끗

지바 탁구, 포르투갈 청소년 축구 때
남북한 한반도기 쓰며 단일팀 구성

평화 이루진 못해도 효과 없진 않아
평창 대회, 번영의 계기 되게 해야

 
평창 동계올림픽을 5개월 앞둔 지금, 북한의 잇따른 핵 및 미사일 실험으로 정치·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와중에도 올림픽을 매개로 남북한 협력을 도모하려는 노력이 있는 것 같다. 평화 올림픽이니 통일 올림픽이니 하는, 즉 스포츠 교류가 평화나 통일에 도움될 거라는 기대에서다. 과연 올림픽을 평화통일에 이르게 하는 전략으로 볼 수 있을까?
 
올림픽과 평화를 연결하는 가장 오래된 개념은 에케히리아 즉 올림픽 휴전이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는 일종의 군사국가였고 도시국가 간 관계는 거의 늘 전쟁 상태였다. 기원전 776년 도시국가 간 전투를 휴전하려는 목적으로 첫 올림픽경기가 개최됐다. 그리스 남부 도시국가 엘리스·스파르타·피사 등 3개국은 협약을 맺고 그 내용을 이른바 ‘이피토스의 원반’에 새겼다고 한다. 올림피아 지역을 중립 및 불가침 지역으로 규정했고 올림픽경기 동안 적대행위 중지를 선포했다. 사형도 중지했고 사면도 시행했다. 올림픽경기에 자국 선수를 보내고 또 타국 선수의 이동을 존중하는 행위는 휴전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올림픽 휴전은 가끔 준수되지 않기도 했지만 1200년 이상 대체로 잘 지켜졌다고 볼 수 있다.
 
 
튼튼한 신체 신에게 상징적으로 바쳐
1991년 5월 일본 지바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 선수권대회에서 남한의 현정화(오른쪽) 선수와 북한의 이분희(왼쪽) 선수가 코리아팀으로 함께 경기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1년 5월 일본 지바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 선수권대회에서 남한의 현정화(오른쪽) 선수와 북한의 이분희(왼쪽) 선수가 코리아팀으로 함께 경기하고 있다. [중앙포토]

고대 올림픽의 출범 목적에는 휴전뿐 아니라, 종교도 있었다. 올림피아 종교의식은 제물을 바치는 방식이었다. 운동경기 역시 튼튼한 신체의 인간을 뽑아 신에게 상징적으로 바치는 일종의 제사의식이었다. 운동경기는 사람들을 올림피아로 모을 좋은 계기지만, 공식 휴전을 하지 않고는 선수·심판·관중을 모으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휴전이 필요했던 것이다.
 
1892년 피에르 드 쿠베르탱은 유럽 평화의 수단으로 올림픽 재건을 주창했다. 유럽 각국 국민들이 갖고 있던 증오와 긴장을 스포츠로 해소하려는 취지였다. 쿠베르탱은 “사람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요구는 유치하며, 서로 존중하라는 요구도 바람직하지 않다. 서로를 존중하게 만들려면 먼저 서로를 알게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상호이해가 평화의 기초라는 맥락에서 올림픽을 재건했다. 평화 추구가 올림픽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주요 목표라고 올림픽 헌장 제1조는 천명하고 있다. 1894년 소르본 IOC 출범 회의에는 당시 평화운동단체 대표들이 대거 참가했다.
 
하지만 근대 올림픽 창설부터 100년 동안 올림픽은 평화는커녕 휴전도 잘 성사시키지 못했다. 1916년 올림픽은 독일의 호전적 성향을 억제하여 유럽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베를린에서 개최하기로 결정됐다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취소됐다. 또 1940년 올림픽도 본래 도쿄에서 열리기로 되었다가 일본이 중일전쟁으로 자의반 타의반 개최권을 반납했고, 헬싱키로 개최 장소가 바뀐 후 다시 제2차 세계대전으로 결국 취소됐다. 런던에서 개최키로 결정된 1944년 올림픽 역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취소됐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앞둔 1979년 12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미국 지미 카터 행정부는 소련이 30일 이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하겠다고 천명했다. 소련이 철수하지 않자 결국 모스크바 올림픽은 62개국이 불참한 대회가 되었다. 이에 소련 등 14개국은 4년 후인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 불참했다. 19세기 말 올림픽이 재건된 이후부터 냉전이 종식될 때까지 올림픽은 전쟁을 막지도 못했고 화해를 유도하지도 못했다. 반대로 전쟁 때문에 올림픽 개최가 취소되었거나, 냉전 때문에 반쪽 올림픽 대회가 되었던 것이다.
 
탈냉전시대에 와서 올림픽 휴전은 다시 이뤄지고 있다. 1993년 유엔 총회는 올림픽 휴전에 관한 결의문을 121개국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유엔의 결의가 동반된 올림픽 휴전은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때부터 시작되었다. 1994년 수단인민해방군과 정부군 사이의 휴전이 성사됐고, 조지아와 아브하지아 간의 무력충돌도 중지됐으며, 보스니아에서도 짧은 휴전으로 약 1만 명 어린이의 예방접종이 이뤄졌고, 구유고슬라비아 출신 선수들의 올림픽 참가가 허용됐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경기 때에는 유엔 주도로 이라크전쟁 재발이 억제됐다.
 
사실 IOC는 분쟁의 완전한 해결보다 휴전을 더 중시한다. 국제분쟁에서 일방의 주장이 더 타당하고 다른 일방의 주장이 부당할 때에도 그 분쟁이 올림픽에서 표출되지 않기를 요구할 뿐이다. 전투를 멈추고 올림픽이나 월드컵의 경기를 청취하는 군인들 모습이 상징하듯이, 전쟁의 완전 종식보다는 완화가 더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어떤 전쟁이 올림픽을 계기로 일시적이라도 멈춰진다면 영구적인 평화로 다가갈 가능성은 증대될 수 있다.
 
고대부터 현재까지의 올림픽을 비교해 보면, 올림픽의 평화 효과는 있지만 제한적임을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평화는 안으로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종교적으로 유사했고 또 밖으로는 페르시아 등 외부 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근대 올림픽 첫 100년 동안 올림픽 평화가 잘 이뤄지지 못한 것은 당시 국제관계 때문이었으며, 마찬가지로 탈냉전시대에 올림픽 휴전이 비교적 잘 준수된 것도 당시 국제관계 때문이었다. 따라서 올림픽 자체가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며, 교류와 휴전을 통해 간접적인 평화 효과만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북, 서울올림픽 공동개최 주장하기도 
대구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3년 여름 유니버시아드대회 개회식에서 남북한팀이 한반도기를 흔들며 함께 입장하고 있다. [중앙포토]

대구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3년 여름 유니버시아드대회 개회식에서 남북한팀이 한반도기를 흔들며 함께 입장하고 있다. [중앙포토]

분단 민족의 통일 갈망은 국제 사회가 무조건 지지하지는 않는다. 독일 베를린은 통일된 후 2000년 올림픽을 유치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2000년 올림픽 유치를 신청한 중국 베이징도 대만에서 일부 종목을 개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유치에 성공하지 못했다. 대만과의 공동개최를 언급하지 않은 2008년 올림픽 유치 신청서로 개최권을 받았다. 평창 동계올림픽도 세 차례의 신청서 가운데 분단을 강조하지 않은 2018년 올림픽 유치 신청서로 개최권을 얻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북한은 한반도가 아직 전시 상태라는 이유로 개최지 변경을 요구한 바 있다. 개최지 변경이 이뤄지지 않자 북한은 1985년부터 남북한 공동개최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한국 내에서도 종교단체, 시민단체, 대학생들 가운데 일부는 남북한 공동개최를 주장했다. 공동개최 논의 자체가 평화의 길이라고 적극 주장되기도 했다. 한국과 IOC는 4개 종목을, 추후에는 5개 종목을 북한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허용한 반면, 북한은 초기에 전체 23개 종목 가운데 절반이 북한에서 개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1986년 6월부터는 인구비례에 따라 적어도 8개 종목의 개최를 주장했다. 1988년 올림픽은 결국 한국 단독으로 개최됐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역시 일부에서 남북한의 공동개최 또는 분산개최가 주장되기도 했지만 이제 어려워졌고, 일부 종목의 남북한 단일팀 구성도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실험 등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남북한 단일팀은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처음 구성된 바 있다. 그때 한반도기가 남북한 단일팀의 기장으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북한 내부에서는 핵무장화를 비밀리에 추진하는 등 진정한 정치군사 협력으로 진전되지 못했다. 스포츠 협력이 이뤄지더라도 정치군사 관계의 진전은 보장되지 않음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올림픽으로 통일과 평화가 바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올림픽이 전쟁을 종식시킨 적은 없다. 1971년 미국과 중국 간의 핑퐁 교류도 먼저 이뤄진 정치군사 관계 변화에 따라 성사된 이벤트였지, 핑퐁 교류가 정치적 갈등관계를 바꾼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올림픽의 평화 효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와 탈냉전시대에는 전쟁을 하다가도 올림픽이 개최되는 동안 전투를 멈추는 올림픽 휴전이 있었다. 그런 계기로 전쟁 종식 가능성이 증대됨은 물론이다. 올림픽과 스포츠 교류는 나쁜 관계로 되돌아가는 것을 지연시키기도 한다.
 
2018년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오는 11월 유엔 총회에서 채택 예정인 올림픽 휴전 결의의 대상에 곧 닥칠지도 모를 한반도 전쟁이 포함될까 하는 우려까지 있는 실정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냉전에서 탈냉전으로 가는 세상의 흐름을 타서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그로부터 30년 후인 2018년 개최되는 평창 올림픽은 불안정한 동북아시아에 세계의 염원을 모아 평화와 번영의 계기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다. 올림픽 준비와 개최에서 평화를 위한 치밀한 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김재한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로체스터대 정치학 박사. 2009년 미국 후버 내셔널 펠로. 2010년 교육부 국가석학으로 선정됐다. 정치 현상의 수리적 분석에 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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