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멋과 편안함 겸비한 테이퍼드핏, 중년에 최적화

중앙선데이 2017.09.10 01:30 548호 23면 지면보기
[두 남자의 스타일 토크] 매일 입어도 고민되는 바지
이렇게 입기만 하면 손녀들이 달려와서 안긴다. 할아버지 냄새는 옷을 대하는 태도에서 난다.

이렇게 입기만 하면 손녀들이 달려와서 안긴다. 할아버지 냄새는 옷을 대하는 태도에서 난다.

바지는 남자의 하반신에 허락된 유일한 옷이다. 게다가 통이 조금 달라지거나 색상이 조금만 특이해도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다른 사람도 바지에 변화를 추구하지 못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분위기가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사람을 옷차림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는 말을 가장 바보 같은 격언으로 꼽는 남성 복식계의 구루 남훈과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신동헌이 함께하는 남자의 바지 이야기.  

슬림핏 따르며 엉덩이에 여유
다리는 얇아 보이고 배는 편안

클래식핏은 촌스러울 수 있어
몸에 달라붙는 슬림핏도 편안해

체형·사이즈 잘 알아야 멋스러워
배 나온 사람은 버튼 달린 바지를

상의 매치는 컬러보단 소재에 초점
울 소재 바지엔 재킷도 울 소재로

 
 
신동헌(이하 신)=매일 입는 데도 매일 아침마다 바지가 고민이다. 바지를 멋지게 입으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똑같은 바지라도 폼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꼭 다리 길이랑 상관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남훈(이하 남)=남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바지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다. 편하고 잘 맞는다고 생각하면 유행이 지나건 말건 신체 사이즈가 바뀌건 말건 쭉 그 브랜드의 바지만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티셔츠나 재킷을 바꾸는 건 쉽게 생각하는데 바지에 대해서는 은근히 보수적이다.
 
신=가끔 여자가 부럽다. 여자는 치마를 입을 수도, 바지를 입을 수도 있고, 아주 짧은 핫팬츠도 입을 수 있고, 통이 넓은 와이드팬츠를 입을 수도 있다. 반면에 남자는 바지밖에 입을 수 없는데 바지로 멋을 부리면 또 시선이 좋지가 않다. 그래서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핏에 비슷한 컬러의 바지를 입게 된다.
 
남=옷 만드는 사람들은 핏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첫째가 흔히 중년 남성들이 입는 클래식핏 바지다. 그리고 나머지 두 가지는 다리 라인을 좀 드러내는 슬림 핏과 젊은 친구들이 즐겨입는 스키니핏이다. 여기서 ‘클래식’은 기품 있거나 전통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옛 것’이란 뜻이다. 좀 촌스러운 느낌이라고 할까(웃음). 다리는 펑퍼짐하고 앞주름이 크게 잡혀 있고 밑위가 길다. 식사 후에 배가 나와도 편안해서 아저씨들에겐 제격이다.
 
신=결국 편안하다는 이유로 클래식핏을 입는다는 건데 요즘 나오는 슬림한 실루엣의 바지들도 사실 꽤 편안한데.
 
남=물론이다. 몸에 달라붙어도 편안한 바지가 많다. 익숙하지 않으니 손사레부터 칠 뿐이다. 옷 좀 입는다는 사람이라면 들어 봤을 법한 인코텍스, PT01, 메종, G.T.A 등의 이탈리아 브랜드가 내놓은 바지들이 대표적이다. 십년 전 즈음부터 우리나라에 소개되기 시작했는데, 이 브랜드들은 맞춤양복의 원리를 면바지에 도입해서 ‘몸에 착 붙는데도 편안한 아저씨 바지’를 새롭게 창조했다. 주변에서 이상하게 바지 맵시가 좋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있다면, 이 브랜드 바지를 입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신=마흔 넘어서부터 배가 나오고 엉덩이도 쳐지는 것 같아서 옷태에 자신이 없었는데, 그 브랜드들이 내 자존심(?)을 되찾아 줬다(웃음). 그래도 아직 앞주름이 없고 기장이 짧은 바지를 입는 걸 어색해하는 사람이 많다.
 
더블재킷에 카고팬츠. ‘군복바지’가 아니다. 평범한 아저씨 핏도 벨트 대신 끈으로 묶으니 멋스럽다.

더블재킷에 카고팬츠. ‘군복바지’가 아니다. 평범한 아저씨 핏도 벨트 대신 끈으로 묶으니 멋스럽다.

남=그럴 때는 슬림핏과 클래식핏을 결합한 바지를 입으면 된다. 전체적인 실루엣은 슬림핏을 따르지만, 밑위 부분과 엉덩이 쪽에 약간의 여유를 더해서 다리는 얇아 보이고 배는 편하다. 전문용어로는 ‘ 테이퍼드핏’이라고 하는데, 청바지부터 수트까지 이런 스타일을 도입하는 브랜드도 많아지고 있다.
 
신=이탈리아에서 밀라노 아저씨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는 가브리엘레 파시니 브랜드 수트를 맞춘 적이 있는데,  테이퍼드핏으로 해 달라고 했더니 디자이너 아저씨가 윙크를 찡긋 하더라. 거기서도  테이퍼드핏이 멋쟁이로 통하는 모양이다. 너무 딱 붙지 않고, 너무 펑퍼짐하지도 않아서 중년 남자가 입기에 최적화된 바지라고 생각한다.
 
남=정확하다.  테이퍼드핏은 ‘슬림핏을 입던 젊은이들에게도 익숙한 클래식핏, 혹은 반대로 클래식핏을 입는 사람들도 시도할 수 있는 슬림핏’이라는 발상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다. 아저씨들을 포용할 수 있고, 젊은이들도 멋지게 나이 들어감에 적응할 수 있게 해 준다.
 
신=그런데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바지 길이나 너비는 자유롭지 않다. 슬림하고 짧은 기장의 바지가 멋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손가락질 받을까 봐 일부러 보수적으로 입는 경향도 있다.
 
남=우리나라 사회에서 ‘옷 잘입으면 능력이 없다’라는 속설은 어느 조직에나 존재한다. 스타일링 클래스를 진행할 때 항상 하는 말이 있는데 “사장님부터 바뀌셔야 합니다”이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에서는 바지를 길게 입은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바지는 짧게 입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우리나라에서 사장님과 임원진이 이십년 전 스타일의 슈트를 입고 있으면, 직원들이 패션에 신경 쓰기는 어렵다. 관심을 받는 상위 10%가 바뀌면 나머지는 알아서 변화한다.
 
신=그렇다면 멋도 챙기면서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팁이나 노하우가 따로 있나.
 
남=먼저 바지주름(플리츠와 턴업)에 집착하지 마라. 보다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 주름이 두 개가 잡힌 바지를 입어 왔다면 하나로 줄여 보고, 나중에는 아예 없는 바지도 입어 보는 거다. 다음은 자기 사이즈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내 허리 사이즈가 어떤지, 밑위가 긴 편인지, 짧은 편인지 제대로 알아야 잘 맞는 옷을 입을 수 있고 멋있어질 수 있다.
 
상의와의 매치에는 소재에 초점을 맞춰라. 울 소재의 바지를 입었다면 재킷의 소재도 울이 돼야 한다. 컬러는 그 다음이다. 필수 컬러(그레이·네이비)를 제외한 색상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다. 이번 시즌이라면 카키와 밝은 블루다. 의외로 상의와의 매치도 쉽다.
 
바지의 너비는 발 크기 즉 구두 라스트에 맞춰 조절해야 한다. 발이 작은데 통이 넓으면 정말 이상해 보인다. 신발과 바지의 밸런스를 맞추는 건 꽤 상급기술이지만, 인상이 확 달라진다.
 
신=슈트 말고 평소에 입는 캐주얼 바지는 어떻게 입는 게 좋은가.
 
복숭아뼈 위로. 양말 없이. 도전해보자. [사진 최승점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복숭아뼈 위로. 양말 없이. 도전해보자. [사진 최승점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남=우리나라 남자들이 바지로 멋을 부리는 장소는 두 곳이다. 골프장과 등산로. 골프복과 등산복을 고를 때와 똑같이 생각하면 된다. 평소에는 죽어도 안 입을 파란색, 빨간색 바지를 골프장과 등산로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입는다. 이 용기를 일상복에 대입하는 거다.
 
신=용기는 있지만 체형이 준비돼 있지 않다면.
 
남=먼저 자기 체형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배가 나온 사람들은 지퍼 대신 버튼이 달린 바지를 입는 게 좋다. 화장실 갈 때야 조금 불편하겠지만 버튼이 지지대 역할을 하면서 배를 눌러 준다. 다리가 짧다면 밑위를 길게 입으면 된다. 재킷과 바지만 제대로 입어도 웬만한 단점은 보완된다. 원래 남자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태어난 옷이니까.
 
신=간단한 테크닉이라고 하지만 패션업 종사자가 아니면 알기 쉽지 않다. 바지를 사러 가면 그 매장에 있는 젊은 매니저가 기준이 된다. ‘이 바지는 이렇게 입는 게 맞아요’ ‘지금 이 너비가 딱인데요’라는 말에 현혹돼 구매하게 된다. 막상 집에 와서 다시 입어 보면 참담한 모습일 때가 있다. 이럴 땐 아재들을 위한 카운셀러가 따로 있으면 좋겠다.
 
남=사실 옷을 파는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지식은 갖추고 있어야 된다. 좋은 옷 가게, 좋은 직원들이 한국 남자들을 멋있게 만드는 건데, 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됐으면 좋겠다.
 
신=영향력으로 따지면 연예인이 최고일 텐데, 우리나라 중년 남성 연예인 중 누가 가장 옷을 잘 입는다고 생각하나.
 
남=할리우드에서 고르라고 한다면 떠오르는 인물이 몇몇 있는데, 한국은 잘 모르겠다. 영화제나 시상식을 봐도 스타일링보단 브랜드로 성패가 갈린다. 젊은 ‘스타일 아이콘’은 많지만, 닮고 싶은 중년 남자 배우나 가수도 나와 줬으면 좋겠다. 그 와중에 이병헌은 자신의 단점을 잘 파악하고 보완하는 스타일링을 할 줄 안다. 단점을 보완할 줄 안다는 건 엄청난 테크닉이다.
 
신=흔히 ‘카브라’라고 불리는 턴업은 꼭 해야 되나
 
남=정석은 턴업을 하는 게 맞다. 무게 중심을 잡아서 바지가 쫙 펴지게 해 주고 차려 입은 듯한 느낌을 준다. 크기는 4~5㎝가 적당하다. 단, 키가 작다면 턴업은 생략하는 것이 좋다. 다리가 더 짧아 보일 수 있다.
 
신=하나만 더.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 요즘 건빵 주머니 달린 카고 팬츠가 유행인데, 거기다가 건빵 넣어도 되나.
 
남=카고바지에는 넣어도 된다.(웃음) 하지만 바지건 재킷이건 소지품을 넣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본다. 실루엣을 망가트리기도 하고 불룩 튀어 나온 모양새가 보기에도 좋지 않다.
 
신=마지막 질문이다. 바지도 비싼 게 비싼 값을 할까.
 
남=바지는 소모품이다. 비싼 걸 한 벌 사는 거보다 저렴한 바지를 여러 벌 사서 돌려 입는 것이 좋다.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매일 연속해서 입으면 옷감이 쉬 상한다. 바지에서 아끼고 재킷이나 구두에 투자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다. 저렴하고 편하고 몸에 잘 맞는 바지를 찾아 두면, 패션은 반쯤 완성한 거나 마찬가지다.
 
 
신동헌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남성복 편집숍 알란스 대표
스포츠투데이·에스콰이어 기자를 거쳐 남성패션지 레옹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온갖 놀거리를 섭렵한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패션뿐 아니라 카메라·오디오·전자기타·자동차·모터사이클에 이르기까지 광폭의 취미를 자랑하는 순혈 마초다.
 
남훈 남자의 복장과 패션에 대한 연구를 삶의 목표로 삼은 클래식 슈트 매니어. 
패션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면서 여러 기업과 협업해서 브랜드와 편집숍을 함께 만들었다. 자신만의 남성복 편집숍 알란스도 운영한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