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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 과학 딱지, 창조과학은 ‘코카펩시’ 같은 궤변

중앙선데이 2017.09.10 01:00 548호 28면 지면보기
이호영의 동양학 가라사대
과학계가 부글부글 끓었다. 진화론이 뿔났다. 바로 창조론과 뉴라이트 사관을 지닌 후보를 중소벤처기업부장관으로 세워서다. 과학계는 창조과학에 알레르기 반응이고, 진보는 뉴라이트에 호들갑이다. 그런데 장관 후보자는 이런 사태를 “개인적 신앙” “역사적 무지”로 치부하며 사퇴를 거부했다. 아직 종교전쟁이 끝나지 않은 셈이다.
 
기독교뿐 아니라 다른 종교도 창조신화를 갖는다. 문제는 창조과학(科學) 싸움이 기독교에서만 벌어진다는 데 있다. 과학이 문제라서 그렇다. 과학이란 역사적으로는 가톨릭의 한 부분이었고, 근대에 와서야 독립을 쟁취한 일종의 개신교다. 그러니 딴 종교에서 창조과학 논쟁이 일어날 일은 없는 것이다.
 
과학은 귀납(induction)과 검증이라는 독특한 교리를 채택한다. 쉽게 말해 과학이란 팩트 폭격과 증명을 믿음의 중심(信經)으로 삼는다. 반면 기독교의 창조란 팩트도 아니고 증명할 수도 없으니 과학이 아니라 신앙이다. 그렇다. 창조과학이란 신앙에 과학의 딱지를 붙이려는 일이다. 말하자면 ‘코카펩시’나 ‘기독교무당’같이 어불성설이다.
 
기독교의 신화가 창조라면 과학도 진화론이라는 신화를 만들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 새로 천지를 뒤엎은 과학은 유인원부터 진화한 인간을 “보기 좋더라”고 평하며 창조의 제6일을 완수했다. 그런데 투쟁으로 이룬 과학의 성배(聖杯)인 진화론을 기독교가 감히 창조로 슬그머니 바꿔치려 한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과학계의 반발이란 일종의 지하드다.
 
동양에서도 과학적 교리가 없었던 건 아니다. 왕충(王充)이 대표적인 인물일 것이다. 그는 서한(西漢)의 동중서(董仲舒)와 미신적인 유교신학의 폐단을 신랄하게 공격했다. 뿐만 아니라 공맹(孔孟)에 대해서도 가차 없는 의문을 제기했다. 인간도 사물과 마찬가지로 기(氣)의 산물이고, 성인(聖人)과 범인(凡人)의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보았다. 그는 선천적인 관념보다는 경험을, 신비보다는 실증을, 우연보다는 필연을 주장하다 이단으로 찍혀 팽당한 것이다.
 
현대를 지배하는 종교는 과학이고 신(神)은 과학이성이다. 게다가 과학은 유일신교와 오랫동안 싸워 독립한 종파라 기독교를 닮았다. 그렇다. 지금 과학이성은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다 창조과학이니 개인적 신앙 운운하는 건 우상숭배와 다름없다.
 
오래전 왕충의 실패는 결국 근현대 동양의 패배로 이어졌다. 만일 우리의 과학을 대하는 태도가 미신적인 신학과 우상숭배라면 백년, 천년 후에도 깨지고 터지고 와서 ‘동양의 도, 서양의 도구(東道西器)’나 외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때문에 창조과학에 대항해 치켜든 깃발은 소중한 실천이자 위대한 지하드다.
 
 
이호영 현 중앙대 중앙철학연구소 연구원. 
서강대 종교학과 학사·석사. 런던대학교(S.O.A.S.) 박사. 동양학 전공. 『공자의 축구 양주의 골프』『여자의 속사정, 남자의 겉치레』『스타워즈 파보기』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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