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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고 끌고 가는 게 지도자의 몫

중앙선데이 2017.09.10 01:00 548호 31면 지면보기
김진국 칼럼
모바일 여론의 힘이 크다.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은 법 개정운동으로 퍼졌다. 피투성이가 된 피해 학생의 사진에 분노를 터뜨렸다. 덕분에 소년범죄를 공론화했다. 제도를 개선하는 출발점이 됐다.

사드 조기 배치 잘한 선택이지만
입장 정리 덜 돼 끌려가는 인상

자유한국당은 비난과 조롱 일색
이 와중에 장외투쟁 답답한 처신
북핵 머리 맞대도 풀기 어려운데…

 
분명히 긍정적인 힘이다. 그런데도 아쉬움이 없지 않다. 너무 감성적이다. 온라인 게시판에 욕설이 난무했다. 가해 학생의 집에 오물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다고 분한 마음이 다 풀릴까. 하지만 인민재판은 곤란하지 않은가. 내 자식이 말을 안 듣고 말썽을 피운다면….
 
감정이 끓을 때마다 형량을 높이면 교화는 사라지고, 보복만 남는다. 형량이 뒤죽박죽된다. 이런 정서를 잘 수렴해 정리하는 게 정치의 역할이다. 분노한 민심을 끌어안으면서도 지나치지 않게 앞뒤를 잘 살펴 제도화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오히려 정치가 앞장서 선동하는 일이 허다하다.
 
민주당은 8일 영장을 기각한 법원을 공격하고 나섰다. 재판마저 여론몰이하려는 것이다. 세상일이 단순하지 않다. 속이 시원하다 싶으면 실리를 놓칠 때도 있다. 그런 종합적인 판단은 대중의 몫이 아니다. 멀리 보고 끌고 가는 건 정치 지도자가 해 줘야 한다. 그러나 당리당략만 생각하는 정치인이 더 많다.
 
특히 외교는 감정이 절제돼야 한다. 속 시원하게 퍼부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누군들 없을까. 그러나 국제 정치는 힘이다. 힘이 모자랄수록 설득하고, 협력하고, 뭉치는 외교를 한다. 북한·중국·러시아와 대화하기 위해서도 미국·일본과의 관계는 중요한 지렛대다. 국가 이익, 국민의 안전과 복리를 위해 타협하고, 참고, 물러선다. 인내와 실용은 지도자의 용기다.
 
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에 조괄(趙括)이란 장수가 있었다. 진(秦)의 공격을 받고 명장 염파는 싸우지 않고 보루를 세워 대치만 했다. 그러자 진나라 첩자가 “진은 조괄 장군만 두려워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어리석은 조왕은 장수를 조괄로 바꿨다. 이 바람에 조는 대패하고 45만 대군이 몰살당했다.
 
조괄은 어릴 적부터 병법 책을 많이 읽어 당할 자가 없었다. 장군이었던 그의 아버지 조사가 군사를 논했지만 아들을 당하지 못했다. 그러나 조사는 칭찬하지 않았다. 그 아내가 까닭을 물으니 “전쟁이란 목숨을 거는 건데 괄은 전쟁을 너무 쉽게 말한다”고 걱정했다. 그로 인해 탁상공론(卓上空論·현실과 동떨어진 책상 위 쓸데없는 의논), 지상담병(紙上談兵·종이 위에서 병법을 논하다)이란 말이 생겼다.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국제 관계는 훨씬 복잡하다.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해 실리를 챙겨야 한다. 그러나 현실보다 케케묵은 원칙에 매달린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국가 이익보다 국내 정치적 이해에 좌우된다.
 
정권이 바뀌면 입장이 달라진다. 그렇다고 국제적 약속까지 뒤집어 버려서는 안 된다. 외교는 국가 간 약속이지 개별 정치인 사이의 약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제 신뢰가 무너지면 힘이 지배한다. 약소국만 손해다. 국제 관계에서 어리광은 통하지 않는다. 군자표변(君子豹變)이다. ‘군자는 허물을 고쳐 올바로 행함이 신속하고 뚜렷하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조기 배치하기로 한 것은 잘한 선택이다. 그렇지만 아직 입장 정리가 덜 돼 있다. 끌려가는 인상이다. 민주당은 지지층 눈치를 본다. 사드 배치 여부보다 중요한 건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다. 그래야 장기 전략이 바로 선다. 정부와 집권당이 확신하지 못하면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다.
 
자유한국당은 더 하다.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이야기하면 한국당으로선 환영할 일 아닌가. 북한에 대해 강력한 제재와 압박 외교를 추진하면 박수를 칠 일이다. 그런데 ‘반성해라’, ‘왜 말을 바꾸느냐’, 비난과 조롱 일색이다. 한국당이 바라는 것이 안보인지, 문재인 정부의 실수인지 알 수 없다.
 
더구나 국회를 거부하고 장외투쟁에 나섰다. 이런 안보 위기에, 국정감사와 예산국회까지 앞두고 있는 시점 아닌가. 그런데 한국당 스스로 국회의 역할을 깎아 내리고, 포기하는 모양새다. 정권의 방송 장악 의혹이라면 박근혜 정부도 자유롭지 않다. 그렇다면 방송국 사태는 국회에서 따지고, 차제에 정권에서 자유롭도록 방송법을 개정하는 게 올바른 방법이다. 이미 그런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그것도 국회에 들어가야 해결할 수 있다. 명분도 실리도 잃어버린 한국당의 처신이 답답하다.
 
핵 보유국과 비보유국의 차이는 확연하다. 북한의 핵무기를 제거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워져 간다. 미국 입장에서는 본토에 대한 위협 제거가 급하다. 비핵화는커녕 동결이나 실험중단이 협상 조건으로 거론된다. 한국을 뺀 협상이 이뤄진다면 미군 철수까지 흥정 대상이 될 수 있다.
 
북한이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하는 이유가 뭘까. 미국과 전쟁하는 걸까.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는 건 북한도 안다. 위협하려는 것이다. 미국을 한반도에서 밀어내기 위해서. 북한은 평화협정과 미군철수를 계속 요구해 왔다. 그 다음은 오금철 북한군 부총참모장의 말처럼 “남반부 전역을 단숨에 깔고 앉을 수 있는 만단의 결전”이다.
 
북한 핵무기는 자위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핵이 아닌 재래식 무기로 제한된 공격을 할 때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연평도 포격 때와도 다르다. 핵 공격의 위협까지 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제 제대로 응징할 수 있을까. 미국은 전쟁을 감수할까. 외국 자본을 쫓아내지는 않을까.
 
정치적 이해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도 풀기 어려운 거대한 숙제다. 그럴수록 국회가 답답하다.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jink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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