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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의 증세 타깃인 한국 부자의 포트폴리오 살펴보니] 부동산>예·적금>주식>보험>펀드

중앙일보 2017.09.10 00:02
10억원 이상 금융자산가 24만 명 … 국내 가계 평균보다 금융자산 비율 높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8월 2일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단순한 부동산 대책이 아니라 부자 증세를 위한 마중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 사진:국토교통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8월 2일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단순한 부동산 대책이 아니라 부자 증세를 위한 마중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 사진:국토교통부

자산가와 고소득층을 타깃으로 하는 문재인 정부의 다양한 정책이 가시화 국면에 들어섰다. 새 정부의 실세 장관으로 꼽히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8월 2일 ‘실수요 보호와 단기 투기수요 억제를 위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8.2 대책’으로 불리는 이 정책은 단순한 부동산 대책이 아니라 결국 부자 증세를 위한 마중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부자 증세 논란은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저서 [21세기 자본론(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이 2014년 영어로 번역돼 출간되면서 증폭되기 시작했다. 이 책은 미국·프랑스 등 세계 20여개국의 지난 300년간 경제 지표와 소득 자료를 다뤘다. 피케티는 “최상위 부유층이 벌어들이는 속도는 세계 경제의 성장률보다 세 배나 빠르다”며 “자본주의 아래에서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경제가 발전하면 빈부 격차가 사라진다’는 신고전파 주류 경제이론이 허구라고 강조했다. 그가 내놓은 해결책은 최상위 1% 부자에게 최고 80% 세율의 소득세를 물려 부의 축적 자체를 봉쇄하자는 게 핵심이다.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지 못하게 글로벌 부유세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피케티가 저서를 통해 부의 불평등을 지적한 가운데 다양한 부자 증세 아이디어가 나왔다. 부자 증세는 일정소득 수준 이상의 자에게 높은 세율을 적용해 세금을 부과하거나 일정 이상의 순자산에 추가로 세금을 매기는 것을 뜻한다. 수퍼리치세·부유세·버핏세 등 다양하게 불리는 데 개념은 조금씩 다르다. 수퍼리치세(Super-Rich Tax)는 10억원 이상의 순자산 또는 연소득을 가진 계층에게 좀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해 과세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유세(Net-Wealth Tax)는 일정액 이상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자에게 순자산액(=총자산-총부채)에서 일정 비율을 비례적 또는 누진적으로 과세하는 것을 말한다. 버핏세(Buffett Rule)는 배당과 자본 이득을 포함한 과세 소득이 100만 달러 이상인 고소득자에 대해서는 세율을 인상하고, 과세 소득이 1000만 달러 이상인 초고소득자에게는 추가적인 세 부담을 주는 방안이다. 고소득자의 자본 이득에 대해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미국의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포함한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을 것을 촉구하면서 ‘버핏세’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상위 0.02%(연소득 500만 달러 이상)에 43.6%의 세율을 적용하고, 연소득 100만 달러 이상의 자에게는 최소 30% 이상 과세하는 내용의 버핏세를 신설하겠다고 공약을 내놨지만 패배했다.
 
외국의 부자 증세는 고소득자의 자발적인 움직임과 국가 재정위기 극복이란 점에서 정치권발로 이뤄지고 있는 한국과는 배경이 다른 점이 있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부자 증세를 주장하는 입장의 근거는 고소득자의 세 부담이 낮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증세를 통해 조세 형평성을 제고하고 복지재정의 기반을 마련하자는 것”이라며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세율 인상과 과세표준 구간 확대 등 고소득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 이미 고소득자의 세 부담은 상당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10억원 이상 금융자산가 44% 집중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저서 [21세기 자본론]이 2014년 영어로 번역돼 출간되면서 부자 증세에 대한 논란이 커졌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저서 [21세기 자본론]이 2014년 영어로 번역돼 출간되면서 부자 증세에 대한 논란이 커졌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의 타깃인 한국의 부자는 어느 정도의 부를 보유한 사람을 일컫는 개념일까. 국내 금융 업계에선 부동산과 실물자산을 제외한 현금·예적금·보험·주식·채권 등 금융 자산이 10억원이 넘는 개인을 통상 ‘부자’로 꼽고 있다. 외국에서도 ‘미화 100만 달러(약 11억원) 이상의 투자자산을 보유한 개인’을 부자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KB금융과 국민은행에 따르면 국내에서 금융자산이 10억원이 넘는 개인은 약 24만 2000명(전체 국민의 0.47%)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보유한 금융자산은 약 552조원로 1인당 평균 22억8000만원이다. 이는 가계 총 금융자산의 16.3%에 이르는 규모다. 한국의 부자 수와 자산 규모는 매년 평균적으로 10% 정도 꾸준하게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꾸준한 증가에 대해 서정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글로벌 경기의 상승세와 주식시장의 호황에 따른 투자자산 가치의 증가, 부동산시장 가격 상승에 따른 금융자산의 투자 여력 확대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국의 부자는 주로 수도권에 몰려 있는데 서울에 10만7000명(44.2%), 경기도에 5만명(20.8%)이 살고 있다. 인구 대비 부자 수 비율은 서울이 1.07%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다음으로 부산(0.48%)·대구(0.44%)·경기(0.40%)·제주(0.37%)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수도권을 좀 더 살펴보면 서울에서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에 약 3만9000명이 사는데 서울 전체 부자 수의 36.1%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양천·동작·영등포구에 많았다. 경기에선 성남시가 9000명으로 가장 많았고, 용인시·고양시·수원시 순이었다. 6대 광역시의 경우 부산은 해운대구가 3600명으로 부자 수가 가장 많았고, 대구 수성구는 4400명으로 경우 광역시 구 단위에서는 부자 수가 가장 많은 지역으로 조사됐다. 인천은 연수구(1800명), 대전은 유성구(2200명), 광주는 서구(1200명), 울산은 남구(1900명)에 상대적으로 부자가 많았다.
 
한국 부자는 안전자산 위주 포트폴리오
한국 부자의 자산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구성돼 있을까. 역시 부동산(주택·건물·상가·토지 등)이 52.2%로 절반이 넘었다. 뒤를 이어 금융자산은 44.2%, 기타자산(예술품·회원권 등)은 3.6%로 나타났다. 부동산 비중이 다소 큰 구조를 보이고 있으나 국내 가계의 평균 자산 구성(금융자산 26.0%, 부동산 69.2%)과 비교하면 그래도 부자들의 금융자산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자산 구성비는 보유자 특성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이는데, 총자산의 규모가 클수록 부동산 비중이 컸지만 금융자산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은 형태를 보였다. 지역적으로는 지방에 비해 서울과 수도권, 특히 강남3구 부자의 부동산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경향을 보였고, 연령별로는 40대 이하에 비해 50대 이상 연령층에서 부동산의 비중이 크게 나타났다.
 
한국 부자의 보유 부동산 중 거주용 주택·아파트·오피스텔은 49.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투자용 주택·아파트·오피스텔(18.4%), 빌딩·상가(16.1%), 토지(14.5%) 등 투자용 부동산도 절반으로 나타났다. 다만 자산 규모가 큰 부자일수록 전체 부동산 자산 중 투자용 부동산의 비중이 크게 나타났다. 총자산 30억원 미만의 경우 48.9%, 30억~50억원은 50.1%, 50억~100억원은 62.9%, 100억원 이상은 82.0%가 투자용 부동산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총자산 100억원 이상의 부자의 경우 빌딩·상가에 대한 투자 비중이 컸다. 거주 지역별로 강남3구에서는 아파트(57.3%)를 가장 많이 보유했는데 지방에서는 반대로 토지·임야(61.6%)의 비중이 컸다.
 
부동산에 이어 가장 비중이 큰 한국 부자의 금융자산에서는 현금과 예·적금이 48.9%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주식(20.4%)·보험(13.2%)·펀드(8.4%)가 뒤를 이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캡제미니(Capgemini)의 ‘세계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자산가(금융자산 100만 달러 이상)의 금융자산 포트폴리오에서 현금과 예적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9%였다. 이와 비교했을 때 한국 부자의 높은 현금·예적금 비중은 안전 자산 위주의 투자 행태로 분석된다. 다만 총자산이 많아질수록 예적금 비중이 감소하는 대신 주식·펀드·채권에 대한 투자 비중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서정주 연구위원은 “이러한 경향은 예적금과 같은 안전 금융자산에 일정 금액을 투자한 후 나머지 여유 자금은 투자 수익을 높일 수 있는 금융자산에 투자하는 행태로 이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령별로는 40대 이하 젊은 부유층에서 상대적으로 펀드 보유율이 높았다. 금융자산 축적에 대한 의지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 50대 이하 부자의 금융자산 증가 비율이 60대 이상 부자에 비해서 높은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들은 펀드·주식뿐만 아니라 증권사 종합자산관리 계좌(CMA)나 머니마켓펀드(MMF)와 같은 단기 대기성 자금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수도권 부자들이 지방 부자에 비해 펀드·주식·채권 보유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경향을 보였다. 특히 강남3구의 부자는 펀드·주식·채권·신탁·주가연계 증권(ELS) 등 모든 투자상품의 보유율이 높게 나타나 금융상품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구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한국 부자 중 55.0%가 펀드를 보유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주식형 펀드 보유율이 73.6%로 가장 높았고, 해외 주식형(47.7%), 국내 혼합형(45.0%), 해외 혼합형(23.6%)이 뒤를 이었다.
 
강병철 기자 bong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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