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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서있는 ‘자폐 건축물’ 짓지 말아야, 지하 연결하고 기능 섞어야 도시가 산다”

중앙선데이 2017.09.10 00:01 548호 8면 지면보기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말하는 지하 재생 프로젝트
‘지하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한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을지로 지하상가 재생 프로젝트 모형에 올라 포즈를 취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전시의 일환으로 DDP에 설치됐다.

‘지하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한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을지로 지하상가 재생 프로젝트 모형에 올라 포즈를 취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전시의 일환으로 DDP에 설치됐다.

지난 2월 파리에서 열린 ‘지하풍경(Groundscape)’ 전시회 모습. ⓒDPA/Adagp

지난 2월 파리에서 열린 ‘지하풍경(Groundscape)’ 전시회 모습. ⓒDPA/Adagp

 
늘 무언가 부수고 또 짓고 있는 600년 넘은 고도(古都) 서울이 올가을 특별한 잔치로 들썩이고 있다. 건축계의 올림픽이라 꼽히는 세계건축대회를 비롯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서울건축문화제, 국제건축영화제 등 굵직굵직한 건축 관련 행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서울시립미술관 등 미술관도 합세해 건축을 테마로 하는 전시회를 열고 있다. 서울시가 9월을 ‘서울 건축문화의 달’로 선포했을 정도다. 

 
파리 개선문 아래 지하도시 개념도. ⓒDPA/Adagp

파리 개선문 아래 지하도시 개념도. ⓒDPA/Adagp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ㆍ코엑스ㆍ문화역284ㆍ세운상가ㆍ을지로 등 도심 내 주요 장소에는 건축 이야기가 넘쳐난다. 어느 곳이든 시간 맞는 행사가 있다면 한번 불쑥 참석해 보는 것도 이 가을을 색다르게 보내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의 집합주택에는 사람들이 붙어살 뿐 공동의 삶이 없다. 모여 사는 삶이 있어야 공동주택이다”는 건축가 승효상의 이야기를 어느 강연장에서 우연히 듣게 될 지도 모른다. 서울이라는 메가시티를 다시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다.  
 
세계 건축계를 쥐락펴락하는 최고의 전문가들도 잇달아 서울을 찾았다. 중앙SUNDAY S매거진은 이화여대 지하캠퍼스 ‘ECC’로 유명한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64)를 만나 요즘 세계 도시에서 ‘핫이슈’라는 지하 재생 프로젝트 이야기를 들었다. 
 

지하로 길을 내는 등 지난해 리모델링을 마친 베르사이유 궁전의 주출입 건물 ‘파비용 뒤푸르(Pavillon Dufour)’ ⓒDPA/Adagp

지하로 길을 내는 등 지난해 리모델링을 마친 베르사이유 궁전의 주출입 건물 ‘파비용 뒤푸르(Pavillon Dufour)’ ⓒDPA/Adagp

지하를 더 넓게 파고, 강당도 만든 ‘파비용 뒤푸르’의 모습. ⓒDPA/Adagp

지하를 더 넓게 파고, 강당도 만든 ‘파비용 뒤푸르’의 모습. ⓒDPA/Adagp

 
“파리의 심장, 시테(Cite)섬을 되살려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전 대통령은 2015년 이같은 미션을 두 전문가에게 내렸다.건축가  도미니크 페로와 국가 기념물 센터장 필립 벨라발(62)은 미션을 받고 바로 연구에 착수했다. 지난해 12월 대통령 앞에서 발표도 하고, 지난 2월에는 대중을 상대로 섬 내에서 전시회도 열었다. 2040년 실제로 완공하는 게 목표다. 
 
센 강에 있는 시테섬은 유명 관광지다. 파리의 발원지이자 프랑스의 기원이라고 불린다. 노트르담 대성당, 대표적인 고딕 성당으로 꼽히는 생트 샤펠 성당. 16세기 혁명 때 감옥으로 사용했던 콩시에르쥬리 형무소 등 볼거리가 가득하다. 파리에 가면 꼭 한 번쯤 들르게 되는 이 유명한 섬을 되살리라는 미션은 왜 떨어졌을까. 지난 1일 DDP에서 만난 도미니크 페로는 “사람이 살지 않는 동네가 된 게 문제”라고 말했다. 도시 성장사의 역설, 도심 공동화가 시테섬에도 찾아온 것이다. 
 
을지로 지하상가 첫 인상, “외계에서 온 오브제 발견한 느낌”
2023년 완공 예정인 파리 빌레쥐프 역(Villejuif Station). ⓒDPA/Adagp

2023년 완공 예정인 파리 빌레쥐프 역(Villejuif Station). ⓒDPA/Adagp

“시테섬은 파리의 한가운데 있고 파리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지만, 더이상 살아 있는 섬이 아니에요. 각종 공공기관이 행정적 기능만 하는 동네로 전락했습니다. 모두 스쳐 지나갈 뿐이죠. 아무도 살지 않는 죽은 섬, 기념물이 된 섬(Monument Island)에 새 삶을 도입하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시테 섬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섣불리 건물을 허물 수도, 새 건물을 짓기도 힘든 상황이다. 건축가와 역사학자가 한 팀이 된 배경이다. 해법은 무엇일까. 그는 “지하에 답이 있다”고 말했다. 
 
“19세기 당시 파리 시장이었던 오스만 남작이 시테섬의 지하 두 개 층을 먼저 개발했고, 현재 주차장으로 쓰고 있습니다. 더 파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지하를 연결할 겁니다. 고고학적 부분은 건드리지 않고, 지하철과 주차장, 건물 지하층을 조밀하게 연결해 하나의 네트워크로 만들 계획입니다.” 
 
시테 섬의 지하 뿐 아니다. 그는 파리 시내의 지하 개발에도 열정을 기울이고 있다. 일명 ‘파리의 재탄생’ 프로젝트 시즌2다. 
 
어떤 아이디어인가.
“기존 건물의 뿌리를 확산시키거나 발달시킨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개선문이 있는 에투알 광장, 앵발리드 광장 지하에 새 기능을 넣는 거다. 전시 공간이나 업무 공간이 될 수 있다. 혹은 도시 농업을 발전시킬 수 도 있다. 일본의 경우 지하에서 과일ㆍ채소를 재배하는 사례가 있다. 지하를 통해 도시를 먹여 살릴 수 있는 기능을 새롭게 만들 수도 있겠다.”
 
왜 지하에 새 기능을 넣어야 하나. 
“지표면 아래 밀도를 높이면 도시가 팽창하는 걸 막을 수 있다. 도시가 수평적으로 점점 커지면 자연도 파괴된다. 도시민도 불행해진다. 자는 곳과 일하는 곳의 거리가 멀어져서다. 거주지와 사무공간, 거주지와 서비스공간이 가까워야 한다. 시테섬과 마찬가지로, 파리 시내에서 주민들이 더이상 살기가 힘들어졌다. 이제 사람들은 파리 외곽지역, 심지어 중심부에서 30㎞ 떨어진 곳에서 산다. 도심 내 새 용도를 개발하고, 밀도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 
 
고층건물을 짓는 것보다 지하를 파는 게 더 비싸지 않나.
“맞다. 지하 인프라를 만드는 게 고층 건물을 짓는 것보다 더 비싸다. 하지만 따로 개발하자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는 건물의 지하를 연결하자는 이야기다. 각각 고립되지 않도록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상부 도시를 받쳐주는 서비스 공간으로 만들면 비용면에서도 효율적이다. 또 지열을 이용할 수 있고, 지진이 나더라도 고층 건물보다 내성이 강해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도 좋다.” 
 
다른 도시들도 지하 공간에 관심을 갖고 있나.
“뉴욕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이탈리아 나폴리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논의가 가장 활발한 도시는 싱가포르다. 땅이 좁은만큼 지표면을 반대로 뒤집은 듯한 땅속 거울도시를 만들겠다고 생각할 정도다.”
페로가 2008년 완공한 이화여대 ECC. ⓒDPA/Adagp

페로가 2008년 완공한 이화여대 ECC. ⓒDPA/Adagp

 
현재 스위스 로잔공대 교수로도 재직 중인 그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를 통해 시청부터 동대문까지 이르는 을지로 지하상가 재생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페로 교수와 이화여대 이윤희 교수(건축학과)의 진두지휘 아래 각 학교 학생들이 합심해 서울의 지하공간을 재탄생시켰다. 그 결과물은 30m 길이의 벤치 형태로 만들어져 DDP에 전시됐다. 
 
인연의 고리가 된 것은 그가 9년 전 설계한 이화여대 지하캠퍼스 ECC였다. 지상 풍경을 살리기 위해 지하로 깊이 파 들어간 ECC의 성공 덕에 그의 지하 재생 프로젝트는 프랑스와 한국을 넘나들며 더 활기를 띠게 됐다. 건축가는 3㎞에 달하는 을지로 지하상가 길을 처음 접했을 때 “마치 과학자가 외계에서 온 오브제를 발견한 느낌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공간을 살리는 해법으로 자연 채광을 꼽았다.  
 
“바깥과 이어져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도로에서 계단식으로 자연스럽게 지형을 낮추는 것도 방법이죠. 자연 채광과 환기가 되게 하면서 지상 공간과 잘 어우러지는, 재미있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오래된 건물에 다양한 기능 집어 넣는 게 도시 재생”
시테섬 재생 프로젝트. ⓒDPA/Adagp

시테섬 재생 프로젝트. ⓒDPA/Adagp

리모델링 중인 파리 중앙 우체국. ⓒDPA/Adagp

리모델링 중인 파리 중앙 우체국. ⓒDPA/Adagp

페로는 지난해 2월 베르사유 궁전 리노베이션 작업을 마쳤다. 관광객 용 주출입구가 있는 건물의 로비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레스토랑과 상점 등을 만들었다. 궁전의 지하 공간을 확장해 새 기능을 담아냈다. 2층에는 150석 규모의 강당도 만들었다. 파리 중앙 우체국 재건축 프로젝트도 페로의 담당이다. 직원이 대폭 줄면서 공간의 80%가 비게 된 우체국 건물에 호텔ㆍ상업시설 등 다양한 기능을 추가하는 작업이다. 기존 건물을 다듬어 10여 개의 새 기능을 부여하는 일, 그는 이를 “파리의 재탄생”이라고 일컬었다.  
 
왜 한 건물이 여러 기능을 하게끔 바꿔줘야 하나.
“파리는 역사 도시다. 역사 도시를 보존한다는 이름 아래 그대로 두고 모든 활동이 주변부에서 진행된다면, 도시는 얼어붙게 된다. 도시의 밀도를 높이려면 기존 골격 안에 새 용도를 집어 넣어 활성화시키는 게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문화재라면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물이 계속 살아 숨쉬게 하려면 돈이 든다. 돈을 벌려면 현대적인 용도가 있어야 한다. 기존의 건축물을 보호하면서 새로운 기능을 넣는 것은, 곧 건물을 살리는 일이다. 파리의 경우 도시의 역사 덕에 풍요롭다. 하지만 파리가 죽어 있는 박물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역사가 살아 숨쉬게끔 해야 한다.”
 
한 건물이 여러 기능을 할 수 있게 바꿀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공유 공간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 앞으로 건축물을 지을 때는 무엇보다 혼자만 서있는 ‘자폐 건축물’을 짓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건축물이 돼야 한다.”
 
도미니크 페로가 건축하고 있는 도시는 ‘또는(or)’보다 ‘그리고(and)’에 가까웠다. 옛 것과 새 것을 나누지 않고, 옛 도시에 새 기능을 섞어 나가는 측면에서 그렇다. 지하 재생도, 문화재 재건축도 기존의 도시를 더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그의 철학에서 나온 해법이다. 
 
그가 꼽는 행복한 도시는 가까운 도시다. “모든 것이 가까이 있으면 행복해집니다. 많이 이동하지 않으면 행복한 도시가 될 수 있어요. 무작정 크다고 좋은 게 아니에요. 원 도시가 제대로 기능하는 지 살피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도미니크 페로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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