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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_this week]‘남산색' 파운데이션, ‘여주인공색' 립스틱?

중앙일보 2017.09.10 00:01
 영문이나 숫자로 색에 대한 정보만을 간결히 담은 컬러명이 다채롭게 변화하고 있다. 아시아권에서 환영받는 서울의 지명이나, SNS 신조어를 담은 화장품 컬러명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마치 광고 문구처럼 회자된다. 송현호 인턴기자.

영문이나 숫자로 색에 대한 정보만을 간결히 담은 컬러명이 다채롭게 변화하고 있다. 아시아권에서 환영받는 서울의 지명이나, SNS 신조어를 담은 화장품 컬러명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마치 광고 문구처럼 회자된다. 송현호 인턴기자.

 

“남산색으로 할게요.”

남산색은 대체 무슨 색일까. 파운데이션을 고르는 화장품 매장에서 이런 생경한 단어가 들린다. 다른 매장도 아닌, 미국 화장품 브랜드 나스(NARS)의 매장에서 말이다. 8월 1일 출시된 나스의 아쿠아 글로우 쿠션 파운데이션의 6개 컬러 중 하나인데, 남산 말고도 ‘소월’색을 비롯해 ‘핀란드’ ‘알래스카’ ‘그린란드’ ‘세인트모리츠’ 등이 있다. 남산색은 화사한 핑크 베이지, 소월색은 부드러운 핑크 바닐라 컬러다. 보통 우리에게 익숙한 국산 파운데이션의 컬러명(호수명)은 21호, 23호 식이다. 해외 브랜드도 주로 영문 컬러명(아이보리, 베이지 등)이나 숫자(01호, 02호)로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K-뷰티 인기에 글로벌 브랜드들 한글로 색 이름 지어
한국 브랜드는 한글 이름으로 SNS 입소문 마케팅

나스 홍보를 담당하는 한피알 박민경 대리는 “아시아 한정 제품으로 출시한 쿠션 파운데이션 제품 중 한국 여성과 아시아 여성이 선호하는 피부 컬러 두 가지에 '남산'과 '소월'이라는 컬러 이름을 붙였다”며 “서울 지명을 담은 건 쿠션 팩트의 원조인 한국 뷰티 시장에 대한 ‘헌사’라고 봐도 좋다”고 밝혔다.  
나스의 아쿠아 글로우 쿠션 파운데이션 '남산'컬러. 아시아 여성들이 선호하는 화사한 핑크 베이지 컬러다. [사진 나스]

나스의 아쿠아 글로우 쿠션 파운데이션 '남산'컬러. 아시아 여성들이 선호하는 화사한 핑크 베이지 컬러다. [사진 나스]

아시아 여성 사로잡는 ‘서울’ 립스틱
글로벌 뷰티 브랜드가 한글의 컬러 이름 붙이기는 나스 뿐만이 아니다. 색조 전문 브랜드 맥은 2012년부터 한정 립스틱 제품의 컬러명에 ‘서울’을 즐겨 붙여왔다. 대체 ‘서울’이 무슨 색 이름인가 싶지만, 한국 여성들이 좋아하는 환한 핑크색이나 자연스러운 산호색에 이런 이름을 붙이곤 한다. 가령 2012년 7월 출시 후 지금까지 판매되는 맥 립스틱 ‘써니 서울’은 가볍고 밝은 핑크색이다. 
한국의 수도 ‘서울’이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컬러를 개발할 당시 한국 아티스트가 참여했다. 원래 한정판으로 내놓았지만 반응이 좋아 아직까지 계속 판매하고 있다. 
맥 립스틱 써니서울. 한정판으로 출시했다가 반응이 좋아 계속해서 판매하고 있다. [사진 맥]

맥 립스틱 써니서울. 한정판으로 출시했다가 반응이 좋아 계속해서 판매하고 있다. [사진 맥]

맥은 2013년 8월엔 ‘귀요미’색 립 틴트를 출시한 바 있다. 산딸기 컬러의 립 틴트로, 당시 한국에서 유행하는 단어를 붙여 이목을 끌었다.
크리스찬 디올은 2017년 6월에 출시한 립스틱 시리즈에 ‘K-쉐이드’라는 부제를 붙이고 ‘서울 매트’라는 컬러를 내 놓았다. 동양인의 노르스름한 피부에 잘 어울리는 네온 핑크색으로 이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숙명여대 향장미용학과 이윤경 교수는 “K-뷰티 자체가 이미 브랜드화했다는 증거”라며 “과거 뉴욕이나 파리 등의 지명이 패션뷰티 부문에서 세련된 이미지를 담은 이름으로 활용된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서울도 그 반열에 올라섰기에 ‘남산’ 등 우리 지명이 네이밍의 재료로 활용되는 것”으로 해석했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만 판매하는 색조 화장품이라면 한국이나 서울과 관련한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트렌디한 느낌을 주기에 브랜드의 마케팅 전략으로 선호된다. 이 교수는 “중국이나 동남아 지역에서 K-뷰티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며 "한글 이름 화장품에 대해 호감을 갖는 아시아 각국 여성이 많다는 점을 의식한 브랜드의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페리페라의 잉크 더 에어리 벨벳 틴트 '외모성수기.'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 컬러명으로 특히 SNS에 회자되기 쉽다.[사진 페리페라]

페리페라의 잉크 더 에어리 벨벳 틴트 '외모성수기.'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 컬러명으로 특히 SNS에 회자되기 쉽다.[사진 페리페라]

독특한 한글 이름으로 애칭 마케팅
한국 브랜드들도 이런 전략을 곧잘 쓴다. 재미난 한글 이름을 활용해 입소문을 노리는 마케팅 전략이다. 페리페라와 에뛰드하우스가 대표적이다. 
페리페라는 2015년부터 매 시즌 출시하는 신제품에 컬러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담는 대신에 재미있는 한글 이름을 붙여 대중들에게 어필해 왔다. 예를 들어 2016년 8월 출시한 잉크 더 벨벳 틴트에 ‘여주인공’‘감탄연발’‘심쿵유발’‘폭풍대쉬’같은 컬러 이름을 붙였다. 컬러명만 봐서는 언뜻 어떤 색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지만 한 번 들으면 잊기 어려운 독특함으로 각인효과는 뚜렷하다. 2017년 3월에도 잉크 더 에어리 벨벳 틴트의 컬러 이름을 평범한 레드나 핑크·코랄이 아니라 ‘최애쁨템’‘조기품절’‘미모열일’ 등으로 정해 내놓았다. 
에뛰드하우스는 재미있는 형용사와 접속사를 색조 제품 컬러 이름 앞에 두는 방식으로 네이밍 마케팅을 하고 있다. 2012년 4월 출시한 아이섀도인 룩 앳 마이 아이즈에는 ‘시럽빼고 테이크아웃’‘사랑은 모래성’ 같은 이름을 붙였고, 2017년 6월 출시한 립스틱 디어 마이 립스 톡 크림에는 ‘화난 핑크’‘분노하는 레드’등의 컬러 이름을 부여했다.  
에뛰드우스 룩 앳 마이 아이즈 '사랑은 모래성' 컬러. 흔한 컬러 이름대신 젊은층에게 공감을 일으키는 감성적 멘트를 담았다. [사진 에뛰드 하우스]

에뛰드우스 룩 앳 마이 아이즈 '사랑은 모래성' 컬러. 흔한 컬러 이름대신 젊은층에게 공감을 일으키는 감성적 멘트를 담았다. [사진 에뛰드 하우스]

해시태그(#)달고 입소문
소비자들은 이런 네이밍에 일단 재미있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특히 친근한 한국 지명을 더한 이름이나 독특한 한글 이름은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등 해시태그(#)로 소통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상에서 제품에 대한 빠른 입소문을 일으키는 데 일조한다. 잉크 더 에어리 벨벳 틴트 중 ‘최애쁨템(최고로 애정하는 예쁜 아이템의 줄인말)’ 컬러는 함께 출시한 컬러 가운데 포털사이트 검색수가 가장 많았고 팔리기도 가장 많이 팔렸다. 
페리페라 브랜드 매니저 김애나 대리는 “주로 10~20대 들이 소통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다”며 “제품 용기에 이미 컬러가 직관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단순히 컬러에 대한 정보를 주는 이름보다는 주 타깃 연령층인 10~20대들에게 친근함을 어필할 수 있는 이름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페리페라 홍대 플래그쉽 스토어. 재미있는 이름의 틴트를 직접 입술에 발라보는 이들이 많다. [사진 페리페라]

페리페라 홍대 플래그쉽 스토어. 재미있는 이름의 틴트를 직접 입술에 발라보는 이들이 많다. [사진 페리페라]

SPC 마케팅 전략실 연유진 마케터는 이런 네이밍 방식을 펫네임(pet name), 즉 애칭 마케팅이라고 설명한다. “마치 소비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붙여진 이름처럼 친근하고 기억되기 쉽도록 브랜드측에서 처음부터 애칭을 지은 셈”이라며 “트렌드에 민감한 20대 여성들을 주 타깃으로 하는 화장품 브랜드에서 친근한 한국 지명이나 인터넷 신조어 등을 활용해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 자체로 광고 카피의 역할까지 한다”고 해석했다.  
한 달에도 수백 개씩, 다양한 색조 제품이 출시되는 화장품 업계에선 '하늘 아래 같은 색은 없다'는 말이 널리 퍼져있다. 비슷한 레드와 비슷한 핑크 제품을 조금이라도 달라 보이게 만드는 한 끗 차, 컬러라기보다는 그 컬러를 담는 이름일 지도 모른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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