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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일의 시시각각] 두 개의 핵 위기

중앙일보 2017.09.09 02:22 종합 30면 지면보기
홍승일 수석논설위원

홍승일 수석논설위원

‘북한 핵이 남한 원전에 떨어지면 어떻게 되지?’ ‘북핵과 원전 중에 어느 게 무섭나?’ 이런 질문들이 요즘 포털사이트 Q&A 코너에 무성하다. ‘150t급 보잉 707기가 시속 360㎞로 충돌해도 5㎝ 정도만 파인다’ ‘한국형 원전은 규모 6.5의 강진을 견딘다’ 등등 원자력 기관들이 안심 댓글을 아무리 정성스레 달아봐야 원전 공포 괴담은 꼬리를 문다. ‘핵폭탄보다 원전사고가 더 무섭다’는 댓글도 의외로 많다. ‘폭격 맞으면 재앙이 될 위험한 원전을 왜 만들었느냐’는 투다. 못 말리는 핵 폭주족 북한보다 피해자인 한국이 질타를 당하는, 어이없는 본말전도다.        

북핵 위기와 원전 퇴출의 위기
원전기술은 핵 억지할 전략무기

 
전쟁과 평화는 제2차 세계대전이 낳은 원자력의 쌍생아라는데, 남북한의 길이 이토록 정반대로 갈리기도 쉽지 않다. 1960년대부터 할아버지 김일성 이후 3대 세습왕조가 선군(先軍) 원폭 유훈에 몰두해온 북한보다, 평화적 목적의 상업 원전에 진력해 세계적 수준에 올려놓은 남한의 처지가 오히려 고달픈 건 역사의 아이러니다. 더욱이 ‘원전 마피아’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던 ‘반핵 탈레반’은 북한의 핵 광인(狂人)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의아할 따름이다.  
 
사면초가다. 한반도 핵위기를 둘러싸고 우리는 북한에 나싱(Nothing·안하무인), 중국에 배싱(Bashing·때림), 미국엔 패싱(Passing·무시) 신세다. 오랜 금기였던 핵무장론이 버젓이 거론될 정도로 한반도 상황은 심각하지만, 대외교역과 군사동맹에 단단히 묶인 나라의 경제가 지구촌 핵 제재 역풍을 견디기 어렵다. 중국·러시아는 대북 원유공급 중단에 시큰둥하고, 들끓는 전술핵 재배치의 함성 역시 미국 쪽 메아리가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공허하다.  
 
이런 마당에 우리는 잘나가던 원전을 구박하고 있는데 미국은 반대다. 오히려 침체된 원전을 되살려 국제적인 핵 리더십을 굳건히 하고 싶지만 원전산업 생태계가 망가져 난망이다. 스리마일 원전 참사 이후 38년 동안 신규 건설이 중단됐다가 조지아와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총 4기를 건설 중인데 전문 인력과 기술의 부족으로 공기는 늘어지고 공사비는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건설사인 미 웨스팅하우스가 중도에 파산했고 일본 도시바 역시 이를 인수합병(M&A)한 데 따른 '승자의 저주'로 고전하고 있다. 
 
미 외교안보정책의 가늠자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존 햄리 회장은 최근 ‘두 개의 핵 위기’라는 시론을 썼다. ‘북한 핵 위기 말고 또 하나의 핵 위기가 있다. 미국의 원전 위기다. 상업용 원전 생태계의 붕괴는 향후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핵 주도권을 빼앗아 갈 것이다. 원자력기술 리더십은 원전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세계 5위권의 대한민국 원전은 북핵에 맞설 훌륭한 전략자산이 된다. 농축·재처리를 통해 언제든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북한과 중국을 부담스럽게 만들 수 있다. 
 
‘핵은 절대 핵으로 이길 수 없다’는 반핵 진영의 대화·협상론의 무게 추가 ‘핵은 핵으로 맞서야 한다’는 공포의 균형론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마침내 7일 지지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북 성주 사드 포대를 완성한 걸 보면 '게임 체인지'가 분명 진행 중이다. "9월 3일 북한 6차 핵실험을 분기점으로 분단 이후 한반도 역사는 그 전과 후로 나뉠 것"(남성욱 고려대 교수)이라는 시각에 동조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탈원전 민심을 살필 민간 공론화 위원회를 만들어 놓고 한편에선 산업통상자원부가 탈원전 계몽 사이트까지 만든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 꼼수 의심을 받기에 족하다. 한반도에도 미국처럼 두 개의 핵 위기, 북핵 위기와 탈원전 위기가 깊어가고 있다.  
 
홍승일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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