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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카와 아야의 서울 산책] 차에 휴대폰 번호 남기는 한국, 명함에도 개인 연락처 안 적는 일본

중앙일보 2017.09.09 01:00 종합 19면 지면보기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

최근에 이사를 했다. 여기저기 집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를 새삼 느꼈다. 그중 하나가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들어가서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도 이사를 여러 번 했지만 한 번도 없던 일이다. 집이 비어 있으면 들어가서 보지만,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 경우에는 실내 사진이나 그림만 보고 마음을 결정해 왔다. 내가 임대주택에서만 살아서 그럴까. 일본에 있는 친구들한테 물어 보니 매매할 때는 살고 있는 상태로 보기도 하는데, 미리 날짜와 시간을 정한다고 한다.
 
정말 놀란 건 두 가지다. 한국의 부동산 직원들은 대부분 일정에 대한 문의 전화를 방문 직전에 한다는 점. 그렇게 허락을 받고 방문했을 때 집 안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있거나 파자마 같은 옷을 입고 있을 때가 많았다는 점. 일본에서는 가족이 아니라면 절대 안 보여줄 만한 상황이다. 더욱 놀란 것은 부재중에도 남의 집에 들어가는 경우다. 물론 허가를 받고 들어가는 것이지만 일본 사람들은 집에 모르는 사람이 들어오는 것에 강한 거부감이 있어 부재중 방문을 허락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외에도 프라이버시에 관한 한국과 일본의 의식은 많이 다른 것 같다. 휴대전화 번호는 일본에서 쉽게 남에게 알려주지 않는 개인정보다. 명함에 휴대전화 번호가 없는 사람도 많다. 회사 전화나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이 보통이다. 회사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많은 신문기자들은 대부분 휴대전화 번호를 명함에 적지만 그것도 회사에서 대여받은 휴대전화 번호다.
 
한국에서 영화인들을 만나다 보니 누가 물어 보기도 전에 서로의 휴대전화 번호를 주고받았다. 일본에서도 문화부 기자를 하면서 감독과 배우를 여럿 만났지만 거의 없던 일이다. 나는 당연히 한국에서도 번호를 물어 보는 것 자체가 실례인 줄 알고 홍보담당자나 매니저 정도하고만 번호를 교환했다가 정작 급하게 취재해야 할 때 본인과 연락이 안 돼 고생한 적도 있다.
 
차 앞에 휴대전화 번호를 붙여놓는 습관도 나를 당황케 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한테 개인적인 휴대전화 번호를 알린다니. 하지만 한국 친구들이 그렇게 하는 게 매너라고 해서 나도 차를 산 후에는 똑같이 휴대전화 번호를 붙여 놓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 “차를 옮겨 달라”고 할 때가 종종 있다. 이 역시 일본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시스템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일본보다 한국이 훨씬 사람과 사람의 거리가 가까운 것 같다. 일본은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일정 정도의 거리를 지키려고 한다. 프라이버시에 관한 것도, 몸과 몸의 거리도. 일본은 웬만하면 악수조차 아낀다. 가족이나 애인이 아니면 피부 접촉이 거의 없다.
 
요즘 같아서는 금방 친해지고 시원하게 오픈하는 한국식이 편하고 좋다. 일본 사람이라는 이유로 나를 기분 나쁘게 대하는 한국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더 관심을 갖고 잘해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 번도 한국에 와본 적 없는 일본 사람 중에는 한국 사람이 무섭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일본에서 한국에 관한 보도는 역사·정치 이슈가 많기 때문에 한국 사람은 일본 사람을 싫어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번 여름휴가 때 시아버지가 처음으로 한국에 놀러 오셨다가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바뀐 모양이다. 가는 곳마다 일본에서 왔다고 하면 서비스를 더 해 주거나 친절하게 대해 준다며 좋아했다. 먹어 본 적 없던 음식들도 입에 잘 맞아 벌써 또 오고 싶다고 한다.
 
백문이 불여일견. 역시 직접 경험해 봐야지 알 수 있다. 방학 때 일본 우리 집에 못 갈 정도로 일본 친구들이 한국을 많이 찾았다. 한국 친구들은 “아예 여행사를 차려라” “돈도 안 되는 일에 시간 쓰는 게 아깝다”고 농담하지만 내가 있어 조금이라도 한국 문화에 친숙해질 수 있다면 보람 있는 일이다.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동국대 대학원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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