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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올림픽 금메달 기념주화, 남태평양 섬나라 투발루사서 발행된 까닭은.

중앙일보 2017.09.09 01:00 종합 19면 지면보기
평창 올림픽 계기로 본 기념 화폐
2002년은 월드컵의 동의어다. 붉은악마가 대한민국을 물들인 월드컵의 추억은 강렬했다. 하지만 그해 한국에서 열린 국제스포츠대회는 한·일 월드컵만이 아니었다. 하나가 더 있다. 부산에서 열린 제14회 아시안게임이다. 우리의 뇌리에서 잊혔지만 아시안게임이 월드컵보다 더 가치 있는 곳이 있다. 기념주화 시장이다.

2002 부산 AG 세트 495만원
판매 대행사 부도로 발행량 적어
희소 가치 높아 발행가의 3.4배
한·일 월드컵 세트는 319만원대

너무 많이 풀린 88올림픽 주화
1100만개 찍어 공무원 등에 ‘강매’
한때 값 절반 이하로 떨어지기도

1970년 한국 최초 기념주화
북한 앞서려 대통령 특명으로 발행
지난해 경매서 4100만원에 거래

 
아시안게임 기념주화의 몸값은 월드컵 기념주화보다 비싸다. 주화 유통업체인 풍산화동양행에 따르면 ‘제14회 아시아경기대회 부산 2002’ 기념주화(6종 세트)는 495만원 선에서 거래된다. 발행 당시 판매가(144만원)의 세 배 이상이다. 반면 ‘2002 FIFA 월드컵축구대회’(6종 세트) 기념주화의 시장 거래가격은 319만원대다. 당시 판매가는 130만원이었다. 대회의 비중이나 영향력을 따지면 월드컵 기념주화가 비쌀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상황은 반대다. 그 이유는 뭘까.
 
기념주화는 국가적 행사나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거나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행한다. 중요한 스포츠 이벤트가 열릴 때는 기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기념주화를 찍기도 한다. 한국은행 발권정책팀의 이한별 과장은 “기념주화는 한국은행 자체 기획 혹은 조직위원회 특별법에 의해 발행되는 법화(法貨)”라며 “액면 금액만큼 현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기념주화 발행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매일 쓰는 돈과는 조금 다르게 여겨진다. 기념주화는 도안의 특수성과 예술성, 희소성으로 인해 시장 화폐보다는 수집가 사이에 거래되는 상품으로 여겨진다.
 
기념주화의 시장 가격은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수량이 적거나 희소할수록 몸값은 오른다. 금화나 은화는 원자재 가격의 영향도 받는다. 환율이 주화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아시안게임 기념주화 값이 비싼 건 희소성 때문이다. 당시 판매대행업체의 부도로 판매량은 총 예상발행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시장에 풀린 물량이 적은 탓에 귀하신 몸이 됐다.
 
반대 경우도 있다. 1988년 24회 서울올림픽 기념주화다. 5차분까지 1100만 개를 찍었다. 시장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어서가 아니다. 올림픽기금 마련을 위해 공무원이나 교사 등에게 떠넘겼다. 국민 5명당 1명이 서울올림픽 기념주화를 가진 셈이었다. 해외 판매도 많았다. 해외 판매권을 가졌던 일본의 세이부사가 1000억원의 수익금을 올림픽조직위에 냈을 정도였다.
 
풀린 물량이 많다 보니 시장 가격은 급락했다. 발행 직후인 90년대 초반 기념주화 값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기념주화 값이 급락하자 판매사에 전화를 걸어 화풀이를 하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이제철 풍산화동양행 대표는 “88올림픽 기념주화는 기금 마련이란 차원에서는 성공했지만 수집 시장에서는 천대받던 기념주화”라고 말했다. 하지만 30년이 흐른 지금 88서울올림픽 기념주화는 판매가보다 두 배 이상 값이 뛰었다. 금과 은값이 오른 덕분이다.
 
한국은행은 총 50회에 걸쳐 152종의 기념주화를 발행했다. 가장 최근 발행한 기념주화는 2018 평창 겨울올림픽대회 기념주화와 지폐다. 굵직한 국가적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제조된 기념주화에는 한국 현대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한국의 첫 기념주화로 70년 발행된 ‘대한민국 반만년 영광사 기념주화’는 분단 경쟁의 산물이다. 사연은 이렇다. 69년 북한이 금은 주화를 만들려 한다는 정보를 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북한을 앞지르기 위해 급하게 발행을 지시했다. 대통령 특명으로 진행된 탓에 일급 기밀을 유지하다 보니 기념주화 발행에 필요한 금통위 의결 절차는 사후에 이뤄졌다. 이 때문에 최초의 기념주화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정통성 논란도 뒤따랐다. 해외 홍보용으로 독일에서 제조돼 외국인에게만 팔린 이 기념주화의 12종 세트(금화와 은화 각각 6종 세트)는 지난해 3월 화동옥션 경매에서 4100만원에 거래됐다.
 
국내의 화폐 수집 인구는 2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제철 대표는 “기념주화는 정부가 만드는 유일한 기념품으로 권위와 역사 기록으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투자 가치도 충분하다”며 “화폐 수집은 서양에서 ‘취미 중의 제왕, 제왕의 취미’로 불리며 긴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S BOX] 2010년 김연아 기념주화 남태평양 투발루서 발행 왜
김연아 선수가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한국 피겨 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이를 기념하는 주화가 발행됐다. 대한체육회가 발행했지만 주화 발행 국가는 영연방국가인 남태평양 투발루. 제작은 호주 퍼스 조폐국이 맡았다. 당시 해외에서 기념주화가 발행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액면가는 호주 달러로 금화는 25달러, 은화는 1달러였다. 판매가는 금화 88만원, 은화 12만1000원이었다.
 
현행법상 기념주화를 액면가보다 높은 가격에 팔 수 없다. 한국은행법상 한국조폐공사에서 발행하는 주화를 마케팅이나 부가가치를 창출할 목적으로 판매할 수 없다. 게다가 기념주화 발행과 관련한 인물 선정의 형평성 논란 등이 불거질 수 있는 만큼 현존 인물을 주화 도안에 쓰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김연아 기념주화가 해외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유명 인물의 기념주화가 해외 화폐로 제작된 것은 김연아만이 아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기념주화는 노르웨이에서,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기념주화는 라이베리아에서 발행됐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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