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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으로] 5년 뒤에도 시진핑이냐…‘후·천’ 시대 서막이냐

중앙일보 2017.09.09 01:00 종합 20면 지면보기
제19차 중국 공산당 대회 내달 18일 개막 
시진핑(習近平) 감독, 시진핑 주연의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이 상영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주 확정된 개봉 날짜는 10월 18일이지만 ‘쑨정차이(孫政才) 실각’이란 이름의 예고편이 공개된 건 개봉 3개월 전부터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버전의 예고편이 쏟아져 나오며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5년 주기로 열리는 중국 공산당의 제19차 당대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홀수 차수에 후계자 낙점
관례 따르면 50대 상무위원 발탁
서열 순으로 총서기·총리 후보

쑨정차이 낙마로 구도 안갯속
정치국원 후춘화 유력한 주자
중앙위원 천민얼 특진 가능성도

칠상팔하 내부 규칙 깨지나
69세 왕치산 예외 적용해 유임 땐
시 주석 집권 연장 길 열리는 셈

상무위원 숫자 줄이나
7명에서 5명으로 축소설 돌아
집단지도 유지하며 1인 권력 강화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5년 임기를 한 차례 연임하는 관행에 따라 10년마다 새 인물을 뽑는다. 당대회 차수가 짝수일 때다. 홀수 차수의 당대회가 주목받아 온 건 5년 후 짝수차 당대회에서의 총서기 교체에 대비해 후계자를 미리 정해 두는 관행 때문이었다.
 
시진핑 국가주석도 마찬가지 경로를 거쳤다. 2007년의 17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당시 상하이 서기는 서열 6위, 리커창(李克强) 당시 랴오닝(遼寧)성 서기는 서열 7위의 상무위원으로 발탁됐다. 이는 곧 ‘시진핑=차기 총서기 겸 국가주석, 리커창=차기 총리’로의 내정을 의미했다. 당시 상무위원 9명의 나이로 볼 때 5년 후의 18차 당대회를 기약할 수 있는 차세대 주자는 50대 초반의 시진핑과 리커창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관례대로라면 이번 19차 당대회에서도 시 주석의 뒤를 이을 50대 나이의 후계자가 상무위원으로 발탁돼야 한다. 낙마한 쑨정차이 전 충칭 서기도 유력 후보 중 한 명이었다. 동갑인 후춘화(胡春華) 광둥(廣東)성 서기와 함께 상무위원 바로 아래 단계인 정치국원에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남은 한 사람인 후가 상무위원 진입에 성공하면 시진핑의 후계자로 굳어지는 것일까. 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정치국원보다 아래 단계인 중앙위원 가운데 누군가가 상무위원으로 발탁될 가능성이 있다. 시 주석과 리 총리가 2007년 상무위원으로 선출될 때의 직급도 중앙위원이었다. ‘2계급 특진’을 하면서 차기 지도자로 낙점된 것이다. 현재 중앙위원 가운데 특진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표주자는 천민얼(陳敏爾) 충칭 서기다. 시 주석이 신임하는 측근 중의 측근이기 때문이다. 2003년 시 주석이 저장(浙江)성 서기로 부임했을 때 저장성 선전부장이던 천은 4년여 동안 시 주석의 칼럼 연재를 기획하고 초고를 썼다. 그는 시 주석의 배려 아래 구이저우(貴州)성과 충칭 서기를 거치며 차기 지도자 후보로서의 경력을 차곡차곡 쌓고 있다.
 
만일 이번 당대회에서 후와 천 두 사람 모두 상무위원으로 발탁된다고 하자. 10년 전 시진핑·리커창의 경우처럼 서열이 앞서는 사람이 차기 총서기로, 서열이 뒤인 사람이 차기 총리로 낙점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시 주석 말고는 아무도 없다. 역사학자 겸 정치분석가 장리판(章立凡)은 “뚜껑이 열리기 전까지는 아무도 결과를 알 수 없는 게 중국 정치의 속성”이라고 말했다. 10년 전에도 그랬다. 차기 지도자감으로 리커창에게 주목하고 있던 전 세계 언론은 17차 당대회 직후 새로운 진용의 상무위원 명단이 발표될 때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됐다.
 
최근 베이징의 외신기자들 사이에선 “포스트 시진핑은 다름 아닌 시진핑 본인”이란 얘기가 나돈다. 시 주석이 총서기로서의 관행적 임기인 10년을 채우는 2022년에도 물러나지 않고 집권을 연장할 것이란 예상에서다. 그럴 경우 이번 당대회에서 후계자를 내정할 필요가 없다. 설령 2022년 총서기직을 내려놓는다 해도 후계자가 누구인지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끊임없이 충성경쟁을 유도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시 주석의 집권연장론과 밀접하게 관련된 관전 포인트는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 서기의 거취다. 왕치산은 반부패 드라이브를 진두지휘하며 지난 5년간 시진핑 체제를 떠받친 최대 공로자다. 당대회 시점을 기준으로 67세는 유임하고 68세 이상은 은퇴한다는 칠상팔하(七上八下) 규칙에 따르면 올해 69세인 왕은 이번 당대회를 끝으로 물러나야 한다. 장쩌민(江澤民) 집권기에 이 잠규칙(潛規則·공개 규정에는 없는 내부 규칙)이 생긴 이래 단 한 번도 예외가 없었다.
 
하지만 왕의 거취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무성하다. 관례대로 은퇴할 것이란 예상부터 칠상팔하 예외를 적용해 상무위원에 유임시킨다는 소문, 2018년 신설되는 국가감찰위원회 수장을 맡게 될 것이란 관측, 심지어 리커창 총리를 전인대 상무위원장으로 보내고 왕치산을 총리로 임명할 것이란 설까지 있다.
 
칠상팔하의 파괴는 왕치산의 일로만 끝나지 않는다. 2022년 20차 당대회에서 69세가 되는 시 주석 역시 권력을 연장하려면 칠상팔하 규칙을 깨뜨려야 한다. 왕치산의 유임은 시진핑 집권 연장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하나 지켜봐야 할 것은 권력구조의 변화 여부다. 일각에선 당 주석제도를 부활시킬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금까지 당 주석에 오른 사람은 마오쩌둥(毛澤東)과 화궈펑(華國鋒)밖에 없다. 이후 집권한 덩샤오핑(鄧小平)은 1982년 당 주석제도를 폐지하고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했다. 10년간 계속된 문화대혁명의 비극이 과도한 1인 권력 집중에서 비롯됐다는 반성에서 내린 결단이었다. 정치분석가 장리판은 “문혁 이후의 역사적 경위를 감안하면 아무리 시진핑의 권력이 막강하다고 해도 당 주석제도의 부활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보다 더 현실성 있게 거론되는 게 상무위원의 숫자를 지금의 7명에서 5명으로 줄일 것이란 예상이다. 상무위원의 숫자가 줄어들수록 개개인의 권한이 더 강해지고 그 정점에 있는 총서기로의 권력 집중이 강화된다. 집단지도체제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실제로는 1인 권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다.
 
이런 권력구조의 얼개가 확정된 연후에 시진핑 2기 체제를 이끌어 갈 새로운 지도부, 즉 25명의 정치국원과 상무위원들의 면면이 결정될 것이다. 장리판은 “항간에 차기 상무위원 예상 명단까지 나돌고 있지만 당대회가 열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투쟁이 계속될 것이라 지금 나오는 예측들을 섣불리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모든 게 불확실하지만 분명한 것도 있다. 시진핑 2기야말로 진정한 ‘시진핑의 시대’가 될 것이란 점이다. 시진핑 1기 체제의 상무위원 7명 가운데 시 주석의 사람으로 불릴 만한 이는 왕치산 기율위 서기가 유일했다. 나머지는 5년 전의 실권자인 후진타오(胡錦濤)와 상왕(上王) 역할을 하던 장쩌민 전 주석이 심어 둔 사람들이었다. 이번 당대회를 기점으로 그들은 모두 물러나게 된다. 그 대신 시자쥔(習家軍), 즉 시 주석의 측근 인사들이 대거 전면에 배치되면서 본격적인 시진핑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S BOX] 당 대회서 중앙위원 205명, 중앙위서 정치국원 25명, 정치국서 상무위원 7명 선출
중국 공산당은 당원 수 8875만8000명(2016년 말 기준)을 헤아리는 거대 조직이다. 지방별 대표와 인민해방군과 국무원 등 각 조직의 대표들이 5년마다 당대회를 열어 공산당 중앙위원(205명)을 선출하고 궐석에 대비한 후보위원까지 뽑는다.
 
이들이 1년에 한 차례씩 모여 개최하는 회의가 바로 ‘3중전회’ ‘5중전회’란 식으로 약칭되는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다. 중국의 중요한 시정 방침과 결정은 중앙위원회 의결을 거쳐 확정된다. 당대회 폐막 직후 소집되는 1중전회에서는 205명의 중앙위원 중 25명의 정치국원을 뽑는다. 평상시 중앙위원회가 열리지 않는 기간에 그 권한을 대행하는 조직이 정치국이다.
 
정치국은 다시 소수의 상무위원을 선출하는데 현재는 7명이다. 상무위원 중 서열 1위가 공산당 총서기다. 총서기는 이듬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 선출 절차를 거쳐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을 겸임한다.
 
1921년 창당된 중국 공산당이 지하 비밀조직이었을 때나 국민당과 내전을 치르던 시기, 혹은 마오쩌둥(毛澤東)이란 절대적 카리스마가 당을 통치하던 시기엔 당대회가 열리는 간격이 들쭉날쭉했다. 하지만 마오 사후 덩샤오핑(鄧小平)이 집권하면서는 5년마다 한 차례씩 당대회를 열어 지도부의 인적 쇄신을 단행하는 관행이 정착됐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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