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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얕고 넓은 정보 홍수, 설 땅 잃은 진짜 지식

중앙일보 2017.09.09 01:00 종합 26면 지면보기
전문가와 강적들
톰 니콜스 지음
정혜윤 옮김, 오르마
 
한국에서 기자로 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정보통신기술(ICT) 세계 1위의 위상에 걸맞게 가장 빠른 속도로 기사를 써야 하고, 이에 질세라 무서운 속도로 응답하는 네티즌의 질책을 견뎌야 한다. 그렇다고 매번 유의미한 토론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니가 기자면 나도 기자다” 같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 오갈 뿐이다.
 
미 해군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는 모든 사람이 전문가가 되어버린 상황에 주목한다. 인터넷의 발달로 누구나 손쉽게 방대한 양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세상이 됐지만 자신의 생각과 주장에 부합하는 방향으로만 정보를 모아 결국은 전문가의 조언을 가뿐히 무시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몇몇 직업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은 이제 아프면 병원에 가는 대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자가 진단을 내리고, 노벨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라이너스 폴링 같은 화학자도 비타민 C를 만병통치약으로 여긴다.
 
위기를 불러일으킨 주범으로는 자격증으로 전락해버린 대학 교육이나 잘못된 정보를 확인 없이 퍼 나르는 저널리즘 등 여럿이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왜곡된 해석이다. 모든 사람의 표가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고 해서 모든 사람의 지식이 같은 값을 가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저자도 이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다. 컬럼비아대·조지타운대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러시아 문제 전문가다. 하지만 SNS에 비전문가의 오류를 지적하는 글을 올렸다가 옥스퍼드대 제안으로 이 책을 쓰게 된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의심하고 확인하고 검증하는 습관이 배어있는 사람은 그 많은 정보 중 자기 것을 만들 수 있지만 이를 맹신하는 사람에게는 진짜 지식이 들어갈 틈이 없기에.
 
이것이 바로 전문가와 강적들의 차이가 아닐까. 원제는 ‘전문지식의 죽음(The Death of Expertise)’으로 아마존 인문 분야에서 25주 연속 1위에 올랐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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