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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18) “척~하다가 인생 다 간다~”

중앙일보 2017.09.08 12:00
마당의 봄꽃들은 들불처럼 한 순간에 확~ 하고 폈다가 갑자기 폭~ 하고 사라졌다. 다음 차례의 꽃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휴대폰 앱에 의하면 ‘90%의 확률로 봄맞이꽃’이다. [사진 조민호]

마당의 봄꽃들은 들불처럼 한 순간에 확~ 하고 폈다가 갑자기 폭~ 하고 사라졌다. 다음 차례의 꽃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휴대폰 앱에 의하면 ‘90%의 확률로 봄맞이꽃’이다. [사진 조민호]

 
산보 길. 포월침두에 다니러 온 친구나 후배들을 뒤에 척~ 거느리고 툭, 툭 한 마디씩 던진다. 평생 ‘잘난 척’, ‘있는 척’, ‘쿨한 척’하고 살더니 다 뒤로 하고 시골에 척~ 하니 내려와서 이제는 ‘아는 척’이었다.

도시 촌놈들에게 꽃·나무이름 아는 척하다가
이름 한방에 알려주는 휴대폰 앱 때문에 머쓱
아는 척, 적응한 척 안하고 보이는 대로 즐기기로


 
“이건 사과나무야. 가지가 높지 않고 옆으로 펼쳐진 건 수확할 때 따기 쉽도록 가지치기해서 그런 거지. 쩌~기 쭉쭉 뻗은 건 가죽나무. 봄에 가죽나무 순 데쳐 먹으면 두릅 같은 건 맛 없어서 못 먹어~ 오, 저기 무덤 앞에 꽃 잔디 예쁘게 피었네. 그 옆엔 복수초.” 아는 척이 제법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목사님, 이 나무 뭐예요? 저 나물 먹는 거예요? 이 꽃 이름은요?” 아랫집 목사님 졸졸 따라다니며 온갖 질문 던지며 귀찮게 굴던 놈이.
 
딱 거기까지였다. 어느 봄날 아침, 도시 촌놈들에게 아는 척하고 있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논산 훈련소에서 나눠주던 건빵 봉지 속의 별사탕-정력감퇴 제가 섞여 있다는 음모론으로 군필자들에게 유명한-같이 생긴 꽃이 마당 가득 피었다. 이 꽃은 뭐지? 목사님한테 물어 알아둘 새도 없이 한 후배 놈이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서는 “이 꽃은 봄맞이꽃일 확률이 90%라는데요” 한다. 이건 뭐지? 한 달 내내 목사님, 김 사장님 따라다니며 묻고 또 물어 알아낸 꽃과 나무 이름을 사진 한 방 찍기만 하면 한 방에 알려주는 휴대폰 앱이 있다는 거다.
 
 
꽃 이름 모를 때가 더 좋아 
 
 
꽃 이름을 알려줘서 유용한 앱이 아니라, 꽃 이름을 애써 기억하지 않아도 되니 좋은 앱이다. [사진 다음]

꽃 이름을 알려줘서 유용한 앱이 아니라, 꽃 이름을 애써 기억하지 않아도 되니 좋은 앱이다. [사진 다음]

 
작전을 바꿨다. 

이 꽃 저 꽃, 이 나무 저 나무 이름을 묻는 후배에게 “이름을 알고 나면 왠지 그 대상과 멀어지는 거 같아. 이름을 모를 땐 그저 제 차례를 지키며 지천으로 피는 그 작은 꽃들이 매일매일 예쁘고, 신비롭기까지 했는데 정작 이름을 알고 난 순간부터, 자~ 다음은 뭐지? 하며 다른 꽃들로, 다른 나무들로 관심과 호기심을 옮기기 바쁘거든. 꽃이나 나무 이름을 아는 것도 좋지만 꼭 이름을 알아야 사랑할 수 있는 건 아냐. 그냥 딱~ 바라 보는 거야. 땅이 쑥~ 올려놓은 그 여린 존재들의 아름다움에 그냥 푹~ 빠지는 거야. 팍~ 느끼는 거야. 이름 같은 거 몰라도 돼. 오히려 이름을 아는 게 방해가 된다니까. 가끔 보면 말이야 이름은 아는데 감동은 없고 말이야. 그러면 안되는 거거든. 자~ 너희들은 그러지 말라고~ 시골에 왔으면 알려고 하지 말고 느끼란 말이야~ 오케이?”
 
그 희한한 휴대폰 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작전을 바꿔야 했지만, 사실 이름을 모를 때가 더 좋았다. 이꽃이 개불알꽃인지, 며느리뒷간에서하는시어머니욕꽃인지 기억을 짜내고 있을 때 꽃향기는 저 멀리 달아났고, 봄은 짧아 꽃도 짧았다. 그러니 괜한 아는 척, 시골생활에 무척 적응한 척~하지 말고 보이는 대로 “보고, 뜯고, 맛 보고, 즐기고~” 할 일이다.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minozo@naver.com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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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필진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 퇴직은 갑자기 찾아왔다. 일이 없는 도시의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이러다 죽는 날 아침에 “뭐 이렇게 빨라, 인생이?” 할 것 같았다. 경남 거창 보해산 자락, 친구가 마련해준 거처에 ‘포월침두’라는 이름을 지어 붙이고 평생 처음 겪는 혼자의 시간을 시작했다. 달을 품고(抱月) 북두칠성을 베고 자는(枕斗) 목가적 생활을 꿈꿨지만 다 떨쳐 버리지 못하고 데려온 도시의 취향과 입맛으로 인해 생활은 불편하고 먹거리는 가난했다. 몸을 쓰고, 글을 쓰자. 평생 머리만 쓰고 물건 파는 글을 썼으니 적게 먹어 맑은 정신으로 쓰고 싶은 글, 몸으로 쓰는 글을 쓰자, 했다. 올 3월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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