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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관점으로 원작 소설을 다시 쓴다면, 소피아 코폴라 감독 인터뷰

중앙일보 2017.09.07 00:00
 [매거진M] ‘대부’ 3부작(1972~90)으로 영화사에 길이 남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외동딸, ‘존 말코비치 되기’(1999) ‘어댑테이션’(2002) ‘그녀’(2013)를 연출한 스파이크 존즈 감독과 한때 부부였던 사이, 유명 패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의 뮤즈….
 
소피아 코폴라(46) 감독을 지금껏 어떻게 기억했든 상관없다. 이제 어느 누가 그를 ‘미국 최고 영화 명문가의 후광을 등에 업고 데뷔해, 예쁜 화면과 감상적인 분위기의 작품으로 과대평가된 감독’이라 깎아내릴 수 있을까.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차지한 여섯 번째 장편 연출작 ‘매혹당한 사람들’을 보면 그가 자기만의 세계가 뚜렷한 뛰어난 감독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매혹당한 사람들'

'매혹당한 사람들'


-원작 소설도 있고, 이를 바탕으로 돈 시겔 감독이 1971년에 만든 동명 영화도 있다. 어디서 영감을 받은 건가.
“내 친구이자 ‘매혹당한 사람들’ ‘블링 링’ ‘썸웨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미술감독으로 함께 일한 앤 로스가 돈 시겔 감독의 영화에 관해 이야기했다. 영화를 봤는데 이상하게 이야기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리메이크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못 한 채로 원작 소설을 찾아 읽었다. ‘이 이야기를 여자들의 관점에서 다시 쓴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원작의 재해석인 셈이다.”
 
-남북 전쟁 시기, 미국 남동부의 버지니아주라는 원작의 배경을 바꿀 생각을 하지는 않았나.
“주변에서 그런 제안을 하기도 했는데, 난 원작의 배경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당시 여성들은 남성 중심 사회에 들어맞는 역할을 강요받았다. 늘 밝고 명랑하고 매력적인 모습을 유지하며, 정성을 다해 남성을 대접해야 하는 식이었다. 그 시대 예법 중에는 ‘여성은 칭찬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항목도 있었다. 여성의 콧대가 너무 높아지면 안 된다는 게 그 이유다. 그렇게 살아가던 여성들의 삶에, 전쟁으로 남자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다. 자기 삶을 자기 힘으로 지켜 나가야만 하는 상황을 당시 여성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 점을 탐구하는 게 몹시 흥미로웠다.”
 
'매혹당한 사람들'

'매혹당한 사람들'


-전쟁의 긴장 속에 여자들끼리만 살아가는 신학교에 부상당한 군인이 머물게 된다. 이 영화의 뱃속에는 등장인물의 욕망이 요동치는 위험천만한 드라마가 자리 잡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시나리오를 쓰면서 ‘미저리’(1990, 로브 라이너 감독)를 떠올렸다. 소설가 폴(제임스 칸)이 애니(케시 베이츠)의 집에 온 손님이자 인질이 되지 않나. 그런 스릴러는 한마디로 내 전문 분야가 아니다. 그래서 ‘매혹당한 사람들’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할 때 일부러 평소의 나보다 한발 더 나아가려 했다. 시적이고 아름다운 분위기와, 욕망과 위험이 도사린 이야기를 조화시킨다는 게 쉽지 않았지만, 무척 즐거웠다. 왜냐하면 전에 이런 걸 해 본 적이 없으니까(웃음)!”
 
-약간 빛바랜 듯한 영상이 정말 아름답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어느 멋진 순간’(2006),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2013)로 유명한 필립 르 소드 촬영감독이 필름으로 찍었다고.
“필립은 말 그대로 예술가다. 요즘은 빈티지 렌즈로 촬영하는 사람이 정말 드물지 않나(이 영화는 KODAK VISION3 500T 5219 카메라에 Kodak 35㎜ 필름으로 촬영했다). 우리는 이 영화가 깨끗하게 빨아 널어놓은 순면의 천 뒤로 아른거리듯 부드럽고 아련하게 보이길 바랐다. 동시에 그 천에 내리쬐는 강렬한 햇볕과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게 하고 싶었다. 등장인물들이 성적인 욕망을 애써 누르며 답답해하고 있으니 말이다.”
 
'매혹당한 사람들'

'매혹당한 사람들'


-당신의 영화는 여성 주인공의 심리를 섬세하게 비춘다. 특히 ‘처녀 자살 소동’, ‘블링 링’에 이어 ‘매혹당한 사람들’에서 다시 한 번 여성 집단의 내면을 들여다보는데.
“원작 소설이 여성으로만 이뤄진 집단에 대해 그리고 있다는 점에 끌렸다. 여자들이 모인 집단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정말 재미있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뭔가가 있다. 남자들의 관계가 단순하고 명료해서 이해하기 쉬운 것과는 다르다. 이 영화의 여성들이 전쟁 중이라 신학교 건물에만 숨어 살 듯한다는 점은, ‘처녀 자살 소동’에서 좀체 이웃과 어울리지 않는 리스본 가족의 다섯 자매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다양한 연령의 여성들이 모인 집단을 그린 건 이 영화가 처음이다. 나이가 다르다는 건, 각자의 삶에서 다른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 아닌가. 그런 인물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을지, 그들의 보금자리에 느닷없이 등장한 남자에게 어떻게 반응할지 그려 보고 싶었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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