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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막나가는 북한 정권에 엄부자모란?

중앙일보 2017.09.06 01:50 종합 35면 지면보기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평소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미국에서 한때 가장 즐겨 봤던 방송이 ‘도그 위스퍼러(dog whisperer)’였다. 시저 밀란(Cesar Millan)이라는 ‘dog psychologist(개심리학자? 맞다)’가 문제 있는 애완견을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고 개 길들이기를 도와주는 과정을 보여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볼 때마다 감탄하며 확신했다. 저 개심리학자는 전생에 분명히 무서운 큰 개였을 것이라고. 아무리 사납고 문제를 일으키는 개도 그 앞에서는 얌전해졌다. 그리고 그가 시키는 대로 개 주인이 따라 하면 대부분 개의 문제행동은 그냥 해결됐다.
 

북한은 3대 세습으로 60년 통치
한국, 정권 따라 대북정책 냉온탕
강한 처벌과 대화도 효과적 훈육법
우리의 어설픈 엄부자모 전략으로
북한에 일관성 잃어버린 게 문제다

개의 심리는 배운 적도 없고 전혀 모르지만 그 방송을 유심히 보면서 효과적인 개 교육법의 핵심은 두 가지라고 느꼈다. 첫째는 일관성이고, 둘째는 본질적으로 개를 교육시키는 게 아니라 그 주인인 사람을 교육시키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많은 경우 주인이 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몰라 당황하다가 훈육의 일관성을 잃게 되고, 결국 그 개는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개에게 안 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안 된다고 일관성 있게 가르쳐야 하는데도 처음에는 안 된다고 하다가 개가 너무 짖거나 다른 사람이나 개에게 위협을 가할 때 오히려 그 부적절한 행동을 허용하거나 주인이 달래거나 안아 주게 된다.
 
이러한 행동은 개로 하여금 자신의 짖기·위협 등의 부적절한 행동이 보상받는다고 착각하게끔 만들어 그 개는 더욱 강하게 짖고, 위협하고, 부적절한 행동을 극단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가족 여러 명이 일관성을 잃고 서로 다르게 개를 대하면 어떤 행동이 보상을 받고 처벌받는지에 대해 혼란스러워진 개는 자신이 개라는 것도 잊고, 마음에 안 드는 가족에게도 적대적으로 대하게 된다. 그래서 그 개심리학자는 항상 그 주인과 가족에게 개에게 다 함께 일관된 행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방송이었지만 그 효과는 대단했다. 이런 원칙은 단지 개 훈련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행동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훈육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방송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 많은 경우 부모의 일관되지 않은 행동, 부모와 조부모 간의 양육 갈등 등이 자녀의 문제행동의 주요 원인이었고, 그 처방도 모든 양육자가 일관된 훈육방향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최근 북한의 계속된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과 같은 무모하고 잘못된 행동들도 부분적으로 같은 원리로 이해해 볼 수 있다. 북한 정권의 의사결정을 애완견이나 한 아이의 그것처럼 단순화할 수는 없지만, 그 모든 것도 결국 인간의 인식·사고·선택·행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에 이 같은 분석은 나름 의미가 있다. 북한 정권은 3대에 걸친 세습을 해 60여 년의 통치를 해 왔지만, 한국의 정치는 각 정권이 지향하는 바에 따라 그 일관성을 잃어 왔다. 때로는 적대적으로, 때로는 따뜻한 햇볕으로, 때로는 힘으로, 때로는 대화로. 최근에는 북한에 대한 대외적 보상과 처벌을 결정하던 미국·한국·중국·러시아와 같은 주요국들 간에도 그 대북정책의 협조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특히 한국과 미국 간의 북핵 해결 방식에도 이견이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북한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부모의 일관되지 않은 훈육에서 자녀가 꼭 나빠야만 삐뚤어져 나가는 것은 아니다. 그냥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전략을 찾게 되고 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행동은 절대 안 된다는, 그래서 그 행동을 하면 소위 강한 처벌과 ‘호적에서 파 버린다’고 협박하는 아버지와 “말로 하지 왜 애를 때리냐”며 아버지를 말리면서 아이에게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얘기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그 아이는 무엇을 선택하게 될까. 강한 처벌도 하나의 효과적인 훈육방법이고 대화도 좋은 훈육방법이다. 인본주의 차원에서 대화가 더 바람직해 보이지만, 그 어떤 것이 절대적으로 더 나은 방법은 아니다. 어찌 보면 핵심은 훈육과 더 큰 비전의 일관성이다.
 
물론 부모가 하나의 팀으로 ‘엄부자모’의 역할을 맡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역할 분담의 전략은 부모가 자녀의 미래와 훈육방향에 대한 합의하에 긴밀한 협조와 신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만약 그 협업의 전제가 없다면 교육문제는 항상 부부 싸움의 씨앗이 된다. 그리고 손발이 맞지 않는 엄부자모의 자녀는 보통 아버지를 미워하고, 어머니를 우습게 보게 된다. 과연 현재 대북정책에서 한국과 미국은 이런 협조와 신뢰 정도는 충분히 확보돼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자식도 아닌 북한 정권에 어설픈 엄부자모 전략과 비슷하게라도 먹혀들까?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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