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더,오래] 장흥 추억여행 낭패 … 피천득의 아사코 떠올라

중앙일보 2017.09.06 01:00 경제 6면 지면보기
김순근의 간이역
 
 
주말이면 장흥유원지를 찾는 행락객으로 붐볐던 장흥역이 을씨년스럽게 변했다. [사진 코레일 제공]

주말이면 장흥유원지를 찾는 행락객으로 붐볐던 장흥역이 을씨년스럽게 변했다. [사진 코레일 제공]

 

1980년대 청춘남녀 데이트 명소
낭만 사라지고 상업시설만 북적
옛 기억 더듬다 실망만 하고 발길

추억여행은 젊었을 적 아름다운 추억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말한다. 나이 들수록 추억여행을 많이 떠올린다고 한다. 지나온 인생 여정을 뒤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히 아련한 옛 추억에 대한 향수에 젖게 된다.
 
찾고자 하는 추억은 개인별로 다르겠지만 찾아야 할 추억과 찾지 말아야 할 추억도 있다. 너무나 변해버린 현실을 직면하는 순간 아름다운 추억 하나를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50대 중반의 A씨는 최근 경기도 장흥유원지(현 장흥국민관광지)로 추억여행을 다녀왔다. 당시 장흥유원지는 초입에 서울교외선 장흥역이 있고 맑고 깨끗한 계곡에 인심 좋고 저렴한 민박도 많아 인근 일영과 함께 대학가 MT 장소로 인기를 끌었다. 지금 장흥역엔 열차가 정차하지 않지만, 당시 주말이면 장흥역은 젊은이들로 붐볐다.
 
1980년대 초 이곳에 장흥토탈미술관이 들어섰는데, 넓은 잔디밭에 다양한 조각품이 전시된 야외미술관이어서 단박에 청춘남녀의 데이트 명소로 떠올랐다. 특히 장작불 난로가 있던 너와집 카페는 연인들이 써놓은 방문기와 언약 등의 쪽지가 사방에 붙어있는 등 로맨틱한 분위기에다 마신 커피잔을 포장해주는 서비스로 유명했다.
 
당시 젊은이들 사이엔 이곳에서 가져온 커피잔 개수로 연애능력을 자랑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A씨도 너와집 카페를 비롯해 장흥토탈미술관 곳곳에 20대 푸른 시절의 낭만이 깃들어 있다. 이런 이유로 그는 1993년까지 장흥토탈미술관을 자주 찾곤 했는데 이후 바쁜 세파 속에 발길을 끊었다.
 
그러나 25년이 훌쩍 지난 어느 날 불현듯 장흥에 가고 싶었다. 기억 속 사람들은 없지만, 추억의 장소를 보면 당시로의 시간여행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아 들뜬 마음에 홀로 장흥을 찾았다.
 
그러나 A씨는 장흥 입구에 들어선 순간부터 ‘멘붕’에 빠졌다. 입구에 몰라보게 많아진 건물과 숙박업소들, 도로 위를 높이 가로지르며 달리는 고가도로 등 당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미술관을 제대로 찾지 못해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던 중 혹시나 하고 당시 미술관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가나아트파크’에 들러 물었더니 2006년에 장흥아트파크로 바뀐뒤 지금은 가나아트파크로 이름이 바뀌었단다.
 
그 장소가 그대로 있다는 반가움에 입장권을 구입해 들어갔지만 기대는 이내 무너졌다.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기억과 다른 생소한 모습들이었다. 야외에 조각상들이 전시되어 있고 야외공연장도 있었지만, 어린이 미술관·어린이체험관 ·목마 놀이터 등 주로 어린이들을 위한 전시공간이었다. 관람객도 연인들로 넘쳐나던 이전과 달리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 대부분이었다.
 
실망감에 발길을 돌리려던 참에 장작불이 있는 난로에 연인들의 사연이 주렁주렁 메달렸던 카페가 생각났다.
 
A씨는 카페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발길을 멈췄다. 아름다운 추억들이 그 곳에 남아있는데, 분위기가 전혀 딴판으로 변한게 아닌지 걱정이 됐다. A씨는 결국 그곳 만은 기억 속 당시 모습 그대로 남겨놓고 싶어 돌아섰다.
 
장흥을 빠져나오면서 문득 2007년 작고한 피천득 시인의 ‘인연’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리워하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일생을 그리워하면서도 못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추억을 쌓고 때론 그 추억을 떠올리며 옛 장소를 찾곤 한다. 어떤 이는 피천득 시인의 ‘세 번째 만남’처럼 후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금 추억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몇 번째 만남에 해당될지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게 좋겠다.
 
미세먼지 실험 아이디어 공모, 이벤트만 참여해도 바나나맛 우유가!
공유하기
김순근 김순근 여행작가 필진

[김순근의 간이역] 은퇴는 끝이 아니다. 새로운 도전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걱정과 두려움도 있겠지만, 성공의 성취감은 무엇보다 값질 것이다. ‘간이역’은 도전에 나서기 전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처음 가는 길은 먼저 간 사람들이 겪은 시행착오 등 경험들이 큰 힘이 된다. 성공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한 이들의 경험담과 조언을 공유하고, 좋은 힐링 여행지를 통해 도전에 앞서 갑자기 많아진 시간을 알차게 보내며 막연한 두려움을 씻어내고 새 출발의 의지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광고 닫기

미세먼지 심한 날엔? 먼지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