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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르포]고흥 경로당 ‘막내 80대'가 식사당번, 초고령사회 이미 진입해 지역 소멸 위기까지

중앙일보 2017.09.06 00:01
전남 고흥군 고흥읍 장날인 지난 4일 오전 할머니들이 읍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고흥군 고흥읍 장날인 지난 4일 오전 할머니들이 읍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4일 오전 전남 고흥군 두원면 예동마을 경로당. 머리카락이 허옇게 세거나 허리가 굽은 할머니 9명이 모여 경로당 바닥에 눕거나 벽에 기대는 등 편한 자세로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몇몇 할머니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 9명 가운데 젊은 편에 속하는 80대 할머니들이다. 99세, 94세 할머니에 이어 이 경로당에서 세 번째로 나이가 많은 유경희(93) 할머니는 “몸이 아픈 할머니를 빼고 가장 젊은 84세가 반찬 요리, 86세가 밥 준비, 87세가 그릇 놓기, 88세가 설거지를 한다”고 말했다.

고흥,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전체의 38.1%로 전국 최고
16개 읍면 가운데 두원면은 51%로 주민 둘 중 한 명은 노인

장날 맞은 고흥읍에는 활기 없고 건물도 초고령사회 모습 반영
고흥군, 초고령사회 탈출 노력과 노인 대책 동시 추진 안간힘

 
고흥은 전국의 시ㆍ군ㆍ구 가운데 주민등록상 65세 이상 주민의 비율이 38.1%로 가장 높은 지역이다. 유엔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일 때 고령화사회, 14% 이상은 고령사회, 20% 이상은 초고령사회로 구분하고 있다.
지난 4일 전남 고흥에서도 가장 고령화가 심한 두원면의 예동마을 경로당에서 80~90대 할머니들이 손바닥으로 자신의 연령대를 표현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4일 전남 고흥에서도 가장 고령화가 심한 두원면의 예동마을 경로당에서 80~90대 할머니들이 손바닥으로 자신의 연령대를 표현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고흥에서도 두원면은 초고령화가 가장 극심한 지역이다. 전체 3285명의 주민 가운데 51%인 1708명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주민 2명 가운데 1명은 65세 이상인 셈이다. 고흥 지역 16개 읍ㆍ면 가운데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30% 아래인 곳은 고흥읍(19.98%)이 유일하다. 전국 평균은 14.0%다.
 
닷새 만에 돌아온 장날인 지난 4일 고흥읍 고흥장은 초고령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장날에도 전통시장 특유의 활기는 없었다. 생선과 야채를 파는 상인들도, 시장을 찾은 손님들도 대다수가 60대 이상 노인이었다. 거리에도 지팡이를 짚거나 보행기를 이용해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걷는 노인들만 가득했다.
 
전남 고흥군 고흥읍 장날인 지난 4일 오전 시장에 야채를 팔러 나온 상인들과 장을 보러 온 주민들의 모습.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고흥군 고흥읍 장날인 지난 4일 오전 시장에 야채를 팔러 나온 상인들과 장을 보러 온 주민들의 모습. 프리랜서 장정필

고흥 지역 번화가인 고흥읍 일대 건물에서도 초고령사회 분위기가 묻어났다. 지은 지 수십년은 지나 보이는 건물이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상당수 건물은 외벽의 페인트칠이 심하게 벗겨지거나 금이 간 상태였다. 젊은 주민들이 도심으로 빠져나가고 노인들만 남겨진 지역에서 건물을 새로 짓는 등 투자가 끊긴 흔적이다.
 
고흥 지역 상당수 마을에서는 노동력에 한계가 있는 70~80대 노인들을 대신해 60대 주민들이 대신 농사를 짓고 수확물을 가져간다. 논 주인은 땅을 빌려준 대가로 일부만 받는다. 고흥 도화면 신기리마을 주민 은만덕(90) 할머니는 “우리 마을에서는 젊은 사람들 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은 할머니는 젊은 사람들의 연령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60대”라고 답했다.
 
전남 고흥군 고흥읍 장날인 지난 4일 오전 시장에 생선을 팔러 나온 상인의 모습.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고흥군 고흥읍 장날인 지난 4일 오전 시장에 생선을 팔러 나온 상인의 모습. 프리랜서 장정필

노인의 수는 그대로인데 갈수록 줄어드는 아이들의 수는 고흥의 초고령사회화를 가속화한 요인이다. 
고흥교육지원청에 따르면 올해 초등학교 1학년 입학생은 321명으로 6학년 졸업생 357명에 비해 적었다. 전국적인 추세로도 볼 수 있지만 고흥의 경우 2013년 초교 졸업생(523명) 대비 입학생(344)의 비율이 65.7%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게 교육당국의 설명이다. 초교 입학생이 줄어드는 추세는 더욱 극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고흥 지역 출생아 수는 270명에 그쳐 합계출산율 1.323명을 기록했다.
 
고흥은 초고령사회를 넘어 지방자치단체 소멸 위기까지 몰린 상태다. 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부연구위원의 연구에 따르면 고흥의 소멸위험지수는 0.167로 경북 의성군(0.158)에 이어 전국 시ㆍ군ㆍ구 가운데 두 번째다. 65세 인구 대비 20~39세 여성 비중인 소멸위험지수가 0.2 미만일 경우 ‘소멸 고위험’으로 분류된다. 고흥이 의성 다음으로 30년 내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지자체 2순위라는 게 이 부연구위연의 분석이다. 고흥의 인구는 2007년 12월 7만8589명에서 현재 6만6961명으로 10년 만에 1만11628명 감소했다.
전남 고흥군 고흥읍 장날인 지난 4일 오전 할머니들이 읍내 정류장에서 버스를 탑승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고흥군 고흥읍 장날인 지난 4일 오전 할머니들이 읍내 정류장에서 버스를 탑승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고흥군은 초고령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과 노인 대책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올 초 보건소에 가족출산팀을 신설했다. 또 이달초 행정과에 인구정책계를 신설했다.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청년층이 지역을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맞춤형 청년 창업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고령화에 따른 부족한 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농촌인력지원센터도 문을 열었다. 농번기 일손이 달리는 논밭에는 공무원들이 대대적으로 투입돼 농사를 돕고 있다.
 
고흥군 정귀인 인구정책 담당은 "고흥 초고령화의 가장 큰 원인은 젊은 세대의 도심 이주"라며 "출산율 자체는 다른 지자체에 비해 낮지 않은 만큼 청년들이 정착하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사업들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흥=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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