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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여성들, 품위 지킬까? 욕망 따를까?

중앙일보 2017.09.05 16:25

[매거진M] ‘매혹당한 사람들’ 리뷰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이번 영화는, 원작 소설과 1971년 버전 영화보다 육체적인 관계의 묘사를 자제했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이번 영화는, 원작 소설과 1971년 버전 영화보다 육체적인 관계의 묘사를 자제했다.

원제 The Beguiled 감독‧각색 소피아 코폴라 출연 니콜 키드먼, 커스틴 던스트, 엘르 패닝, 콜린 패럴 원작 토마스 P 컬리넌 각본 앨버트 말츠, 아이린 캠프 촬영 필립 르 소드 음악 로라 카프먼, 피닉스 미술 앤 로스 의상 스테이시 배탯 편집 사라 플랙 장르 스릴러, 드라마 상영 시간 94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9월 6일

여성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기담
원작소설·1971년 영화보다
남북전쟁 시대적 긴장감은 약해져

 
★★★
숨 막히는 처지에 고립된 아름다운 여성들. 강요된 품위와 피어오르는 욕망 사이에서 방황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전공 테마다. ‘뮤즈’ 커스틴 던스트와 처음 뭉쳐, 다섯 자매를 둔 보수적인 미국 중산층 가정의 실체를 파헤쳤던 장편 연출 데뷔작 ‘처녀 자살 소동’(1999)을 떠올려 보라. 각본‧연출‧제작한 시대극 ‘마리 앙투아네트’(2006)에선 사치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커스틴 던스트)의 내밀한 고독을 베르사유 궁전의 호화로운 이미지 속에 새겨냈다. 토마스 P 컬리넌의 1966년 소설을 토대로 한 ‘매혹당한 사람들’은 이러한 전작의 궤를 잇는다. 
전란 중, 존을 위한 저녁 식사에 격식을 갖춰 화려하게 차려입은 원장과 학생들.

전란 중, 존을 위한 저녁 식사에 격식을 갖춰 화려하게 차려입은 원장과 학생들.

원장에겐 남부군에게 적군(북부군) 부상병인 존의 존재를 알려야 할 의무가 있지만….

원장에겐 남부군에게 적군(북부군) 부상병인 존의 존재를 알려야 할 의무가 있지만….

때는 남북전쟁이 4년째로 접어든 1864년. 미국 남동부 외딴 저택에 원장 마사 판스워스(니콜 키드먼)가 자신의 이름으로 운영하는 여자 신학교가 무대다. 엄숙한 원장과 순진한 프랑스어 교사 에드위나(커스틴 던스트), 학생 다섯뿐인 이 학교는 마치 세상과 동떨어진 요새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갑자기 나타난 적군(북부군) 부상병 존(콜린 파렐)의 존재는 마른 들판에 던져진 불씨와 같다. 마사와 에드위나, 조숙한 소녀 알리시아(엘르 패닝)는 존을 두고 사각 관계를 이룬다. 
 
원작 소설과, 이를 토대로 한 돈 시겔 감독의 1971년 동명 영화가 이들의 엇갈리는 내면을 독백조로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서스펜스를 밀어 올린다면, 코폴라 감독은 절묘한 타이밍과 표정의 변화에서 매혹의 감정을 길어 올린다. 1971년작이 세 여성의 침실을 드나드는 존(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을 흡사 ‘쓰리섬’ 섹스처럼 교차 편집한다든지, 직접적인 추파로 존의 남성성을 부각한 반면, 이 영화는 존을 위한 식사 자리에서 지나치게 격식 갖춰 차려입은 드레스 등 풍자적 웃음을 자아내는, 여성들의 소리 없는 신경전에 더 골몰한다. 철저히 육체적인 관계보다 멜로라인이 강화된 것도 특징. 외딴 신학교의 여성들을 섣불리 원작 출간 당시의 제목, ‘가장한 악마(A Painted Devi)’로 매도하지 않고 여성의 시선에서 이 기이한 사건을 재해석하겠다는 코폴라 감독의 의도가 분명히 읽힌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존의 노골적인 추파가 강조됐던 돈 시겔 감독의 '매혹당한 사람들'(1971).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존의 노골적인 추파가 강조됐던 돈 시겔 감독의 '매혹당한 사람들'(1971).

원작 소설과 1971년 버전에 시대상을 반영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여성 노예 할리(메이 머서) 역은 코폴라 감독의 버전에선 등장하지 않는다.

원작 소설과 1971년 버전에 시대상을 반영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여성 노예 할리(메이 머서) 역은 코폴라 감독의 버전에선 등장하지 않는다.

반면, 남북전쟁 막바지라는 시대적 맥락이 흐릿해진 것은 아쉽다. 여자에 굶주린 아군(남부군) 역시 경계하던 여성들이 전세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악마 같은 형상으로 상상했던 적군에게 위험한 욕망을 품는 정황이나, 미묘한 시대상을 드러냈던 흑인 여성 노예 캐릭터가 사라지면서, 소설과 1971년작의 흡인력을 견인했던 현실적인 긴장감도 맥이 풀리고 말았다.  
 
TIP. 원작 소설(김영사)이 영화와 같은 제목으로 9월 6일 국내 첫 출간된다.  
 
함께 보면 좋은 영화   
'처녀 자살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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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 자살 소동’ 코폴라 감독과 ‘페르소나’ 던스트의 리즈 시절 ‘케미’가 궁금하다면. 스물한 살 단발머리 조쉬 하트넷의 앳된 미모는 덤.
 
‘매혹당한 사람들’(1971) 같은 원작, 다른 해석.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 빅터 플레밍 감독) 남북전쟁 배경. 코폴라 감독은 패닝에게, 이 영화 초반부의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 캐릭터를 알리시아 역에 참고하라고 했다고.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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