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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김이수 110일의 영욕사

중앙일보 2017.09.05 15:44
“(지명)소감을 말하긴 성급한 것 같다. 차분하게 준비하겠다.”(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한때 '실종사건' 말 나올 정도로 잊혀져
여야 대치로 청문회 끝나고도 표결 인준 못해
최근 나흘간은 김장겸ㆍ김정은 폭탄에 발목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차분한 준비’가 무려 110일째로 접어들었다. 그는 지난 5월 19일 지명된 뒤 아직까지 인준의 늪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무사히 인사청문회를 마치고도 취임을 못했다. 5일 당장 임명된다 해도 남은 소장 임기는 380일 뿐이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 마저 5일 “(김이수의)인준안 표결을 다음주에는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할 정도다.  
 
지명 106일째였던 지난 1일엔 김 후보자의 희비가 극명하게 교차했다. 오전에 이유정 전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사퇴하면서 청신호가 켜졌지만, 오후 본회의 직전 김장겸 MBC 사장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날은 여야는 묵시적 합의로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야당은 그동안 김 후보자의 임명과 이유정 전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사퇴를 연계해 통과는 시간문제로 보였다. 하지만 김장겸 사장 문제로 자유한국당이 보이콧을 선언(2일)하면서 상황이 꼬였다. 다음날(3일)엔 설상가상으로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했다. 최악의 안보위기로 4일 본회의에서 그의 거취는 다뤄지지도 않았다. 나흘 동안 김장겸ㆍ김정은 폭탄이 그를 들었다 놓았다 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연합뉴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연합뉴스]

◇지명 1일, 시작부터 꼬였다=문재인 대통령은 김 후보자를 헌재소장으로 지명하며 “재판관 잔여임기 동안만 소장을 하게 되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김 후보자의 남은 임기는 489일이었다. 헌법재판소법에는 헌재소장의 임기에 대한 별도 규정이 없고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임기는 6년으로 한다’는 조항(112조1항)만 있다. 대통령이 재판관 중 한 명을 소장으로 임명(12조2항)하기 때문에 재판관 잔여임기 동안만 활동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전 정권에서도 6년 임기 문제를 두고 박한철ㆍ전효숙 등 후보자들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그나마 김 후보자의 경우 문 대통령이 교통정리를 한 셈이다.  
 
6월 8일 인사청문회에선 호된 검증을 받아야 했다. 그가 과거에 내렸던 판결을 야당 의원들이 문제삼았다. 2012년 당시 민주통합당의 추천으로 재판관에 임명된 그는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반대의견, 전교조 법외노조 근거법 위헌주장 등으로 인해 “정치적 편향성이 강한 분”이란 비판을 받았다. 여야는 입장차로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았고, 그의 인준문제가 표류하기 시작했다.  
 
◇지명 47일, ‘김이수 실종사건’=지명 47일째인 지난 7월 4일, 김이수 후보자는 ‘잊혀진 존재’가 됐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김상곤 사회부총리의 임명에 야당이 반발하며 국회가 줄줄이 파행하면서다. 급기야 야당에서 “현 상황은 김이수 실종사건이라 할만하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8월 8일 이유정 전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지명되자 야당은 “김이수의 표결보다 이유정의 사퇴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첫 9월 정기국회 개회식에 참석, 위를 바라보고 있다.  지난달 31일 8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는 결국 헌재소장 후보자인 김 권한대행에 대한 임명동의안 표결이 무산됐다. [연합뉴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첫 9월 정기국회 개회식에 참석, 위를 바라보고 있다. 지난달 31일 8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는 결국 헌재소장 후보자인 김 권한대행에 대한 임명동의안 표결이 무산됐다. [연합뉴스]

◇지명 91일, 희망고문=지난달 17일엔 여야 4당 원내수석부대표가 모여 31일 본회의에서 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잊혀졌던 그는 지명 91일만에 임명되는 듯 했으나 이유정 전 후보자를 둘러싼 여야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결국 본회의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 후보자가 1일 사퇴하며 다시 희망이 보였으나 그를 맞이한 건 1일 김장겸 사장 체포영장, 3일 북한 6차 핵실험이었다. 4일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엄중한 상황에서 야당 반대를 무릅쓰고 (김이수)인준안을 표결에 붙이는 건 국회를 더욱 어렵게 한다”고 표결에 반대했다.
이유정 전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사퇴한 1일, 김장겸 MBC 사장(오른쪽)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직권상정이 결정된 3일에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6차 핵실험을 했다. [중앙포토]

이유정 전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사퇴한 1일, 김장겸 MBC 사장(오른쪽)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직권상정이 결정된 3일에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6차 핵실험을 했다. [중앙포토]

 
지명 110일이 되도록 표류하고 있는 김 후보자를 두고 인준안 표결 불발의 원인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있다는 게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이수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소속의 한 의원은 “지명 당시 남은 임기의 1/5이 각종 정치적 이슈와 맞물려 날아가 버렸다”며 “헌재소장 공백의 장기화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하는데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헌재소장 자리는 지난 1월 31일 박한철 전 소장의 퇴임 뒤 217일째 비어있다.  
  
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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