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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17) 상처뿐인 영광 남긴 말벌과의 사투

중앙일보 2017.09.05 12:00
큰 태풍이 와도 잔가지 몇개와 이파리 나부랑이만 날려줄 뿐 끄떡 없는 용산리 느티나무. 제 나이에 어울리는 풍모와 오래 묵은 고요함이 부럽다. [사진 조민호]

큰 태풍이 와도 잔가지 몇개와 이파리 나부랑이만 날려줄 뿐 끄떡 없는 용산리 느티나무. 제 나이에 어울리는 풍모와 오래 묵은 고요함이 부럽다. [사진 조민호]

 
흙벽과 나무기둥 사이에 집을 지은 말벌과의 사투는 누구의 승리라 할 것도 없이 한 달 남짓 만에 끝이 났다. 그들은 죽었고, 나는 상처를 입었다.

집안에 들어온 100여 마리 말벌들
제압했지만 등에 침맞고 병원신세
나이 어울리지 않는 용감함 버리기로

 
집 안으로 흙을 파고 들어온 백 마리가 넘는 놈들을 파리채로 제압하면서 누렸던 승리감은 오래 가지 않았다. 소리도 내지 않고 몰래 집 안으로 잠입한 놈이 의자 등받이에 잠복해 있다가 방심한 채 다가오는 내 등짝에 큼지막한 침을 쑤셔 박았다. 
 
앉은 자리에서 50cm의 서전트 점프(?)를 할 정도의 통증이 왔고, 곧이어 등에 확~하고 불이 붙었다. 그때부터 늦은 저녁까지 지루하고 고통스러우면서도 깊은 성찰의 시간이 지속되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속에 말벌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한 농가에서 번식한 말벌들이 새끼를 보살피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연일 계속되는 폭염속에 말벌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한 농가에서 번식한 말벌들이 새끼를 보살피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나는 부주의하고 조심성이 없으며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 그래서 온몸에는 크고 작은 사건들의 기억이 상처로 남아있다. 왼쪽 눈 위 상처는 산정호수에서, 어긋난 갈비뼈는 직원 체육대회에서, 겨울만 되면 시큰시큰한 왼쪽 발목은 북한산에서. 상처로 남지 않은 죽을 뻔한 고비는 또 얼마나 많았나.
 
진작에 119를 불렀어야 했다. 이 정도 일로 이 산속까지 119 부르기 미안했으면 뭐든 잘하시는 김 사장님께라도 도움을 청해야 했었다. 등짝에 밥뚜껑만 한 동산이 볼록 생기고, 어질어질한 기분이 계속되어 보건소로 달려가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다. 소식을 듣고 김 사장님이 부랴부랴 달려와 “왜 진즉에 연락 안했어예~” 하며 가져온 장비로 집 안팎의 구멍을 메우셨다.  
 
왜 진작 연락 안 했을까? 손에 들린 파리채에 탁~ 하고 손맛을 전해주며 나가떨어지던 놈들과의 전투를 즐겼던 건가? 서울 있는 친구들에게 말벌과의 전투를 신나게 떠벌리던 나는 도대체 몇살인가? 몇살까지 이렇게 무모한 일을 벌이고 아슬아슬하게 살 건가? 저녁이 되자 가렵고 따가운 느낌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다행히 붓기는 가라앉았다.  
 
 
자동차 광고는 다른 광고들에 비해 돈을 많이 들여 찍어 그림이 멋있다. 그림에 비해 카피는 있으나마나한 광고들이 많은데 그림과 카피가 함께 멋있는 자동차 광고를 만날 때 기분이 좋다. [사진 TV 화면 캡쳐]

자동차 광고는 다른 광고들에 비해 돈을 많이 들여 찍어 그림이 멋있다. 그림에 비해 카피는 있으나마나한 광고들이 많은데 그림과 카피가 함께 멋있는 자동차 광고를 만날 때 기분이 좋다. [사진 TV 화면 캡쳐]

 
요즘 나오는 자동차 광고 카피 중에 “나에게 어울리는 것보다 나이에 어울리는 것을 찾고 있지 않았는가?” 라고 던지는 게 있다. 하고 싶은 얘기는 이런 걸 거다. 네 나이보다 더 젊게 살아라. 이 차는 나이 든 너한테도 어울리는 차다. 주저하지 마라. 용기를 가져라. 그리고 절벽을 뛰어 내려 바다로 빠지는 장면이 이어진다. 카피도 멋있고, 그림도 좋다.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안돼~~~ 나답다고 여기던 행동들이 내 목숨을 위태롭게 할지도 모른단 말이야~~~ 이제 나는 내 나이에 어울리는 것을 찾아야 돼~~~ 오래 살고 싶단 말이야~~~”
 
진로도 퇴로도 다 막힌 그 지옥의 공간을 비집고 나온 몇 마리의 말벌을 파리채 대신 멀찌감히 떨어져 에프킬러를 뿌려 잡으면서 나는 신음처럼 말했다.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minozo@naver.com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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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필진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 퇴직은 갑자기 찾아왔다. 일이 없는 도시의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이러다 죽는 날 아침에 “뭐 이렇게 빨라, 인생이?” 할 것 같았다. 경남 거창 보해산 자락, 친구가 마련해준 거처에 ‘포월침두’라는 이름을 지어 붙이고 평생 처음 겪는 혼자의 시간을 시작했다. 달을 품고(抱月) 북두칠성을 베고 자는(枕斗) 목가적 생활을 꿈꿨지만 다 떨쳐 버리지 못하고 데려온 도시의 취향과 입맛으로 인해 생활은 불편하고 먹거리는 가난했다. 몸을 쓰고, 글을 쓰자. 평생 머리만 쓰고 물건 파는 글을 썼으니 적게 먹어 맑은 정신으로 쓰고 싶은 글, 몸으로 쓰는 글을 쓰자, 했다. 올 3월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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