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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시시각각] 우리에겐 아베도 추이 톈카이도 없었다

중앙일보 2017.09.05 02:04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중국 최고위층의 집단거주지 중난하이. 보름 정도 후면 시진핑-펑리위안 내외와 한 젊은 부부가 이곳에서 만찬을 즐기는 모습이 전 세계 언론을 탈 것이다. 주인공은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와 사위 쿠슈너. 이 프로젝트의 주역은 ‘정력적 전략가’인 추이 톈카이 주미 중국대사. “중국의 정치선전에 이용당할 수 있다”는 신중론은 이방카 부부의 막강 권력에 뭉개지고 말았다. 워싱턴 정가에는 “민간인이 트럼프 곁을 떠났고, 조만간 군인이 떠날 것이고, 마지막 남는 건 패밀리(이방카 부부)밖에 없을 것”이란 말이 정설이다. ‘딸 바보’ 트럼프를 읽은 시 주석의 노림수는 여럿 있다. 하지만 결국 핵심은 다음달 18일의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분위기 띄우기다.
 

핵실험으로 미·중 빅딜 시동 가능성
‘코리아패싱’이 ‘코리아나싱’될 수도

하지만 워싱턴 외교가에선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 것”(주미 일본 대사관 관계자)이라 본다. 백악관 소식통은 “트럼프-아베 전화 회담이 취임 후 11번이나 된다. 하지만 실은 트럼프-시 주석 통화는 제대로 공개를 안 할 뿐 더 많을 것”이라며 “한국에 (동선과 정보가) 노출되기 쉬운 맥매스터 보좌관이나 틸러슨 국무장관이 아닌 쿠슈너를 미·중 간 은밀한 ‘북한 빅딜’의 메신저로 쓰려 한다”고 전했다. 쿠슈너 뒤에는 같은 유대인 출신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있다. 쿠슈너는 요즘 키신저의 조언에 부쩍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키신저의 구상은 한마디로 ‘북한과 대화해 봐야 완전한 핵 폐기를 얻을 수 없다. 중국은 북한 체제를 붕괴(김정은 제거)시키고,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사전 빅딜’에 합의하라’는 것. 거칠게 말하자면 한국·북한 따위 신경 쓰지 말고 대국끼리 손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실 트럼프로선 피 하나 흘리지 않는 군사작전, 몸값이 오를 대로 오른 북한과의 협상 모두 ‘미션 임파서블’이다. 큰소리 치지만 카드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 6차 핵실험은 ‘키신저 구상’으로 말을 옮겨 탈 좋은 구실이 될 수 있다.
 
궁지에 몰린 건 미국보다 우리다. 트럼프가 3일 트위터에 올린 “한국은 유화적인 대북정책이 작동하지 않음을 알아 가고 있다. 한국은 단지 하나만 안다”는 글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을 혼냈다(scold)”고 했다. 귀에 거슬리지만 그게 미국 내 분위기다.
 
청와대는 “우린 이 땅에서 전쟁의 참화를 되풀이할 순 없다”며 미국과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현 정권이 상정하는 전쟁 가능성이 ‘미국의 선제공격→북한의 반격 대응’이라면 미국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게 공조하고 설득하고 신뢰를 쌓는 게 최우선이었다. 그걸 소홀히 했다. 사드다 레드라인이다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에 갈지자 행보로 불신만 쌓았다. 아베가 트럼프의 ‘손볼 타깃 1순위’에서 ‘베프(가장 친한 친구)’가 된 데는 이유가 있다. “통화 횟수나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다”는 청와대 주장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건 지도자 간의 믿음·신뢰가 있을 때나 하는 말이다. 결국 우리에겐 아베도, 트럼프 패밀리를 잡은 추이 톈카이도 없었던 게다. 곁가지의 응원 멘트 한마디에 “물샐 틈 없는 동맹”이라 기뻐했던 외교안보 아마추어들만 있었던 게다.
 
트럼프는 지난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연내 한국 방문을 약속했다. 어떻게 될까. 코리아패싱은 코리아배싱(bashing·한국 때리기), 그리고 코리아 나싱(nothing·아무것도 아닌 한국)이 될 수도 있다. 누차 얘기하지만 상황을 직시해야만 한·미·일 공조, 중국 협조, 국제사회 동조를 얻어낼 기회라도 찾을 수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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