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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침묵택시

중앙일보 2017.09.05 02:00 종합 31면 지면보기
나현철 논설위원

나현철 논설위원

신촌에서 저녁을 먹고 귀가하는 길, 유난히 수다스러운 택시기사를 만났다. 운전이 서투른 앞차를 보고 욕을 한 바가지 하더니 어느 직장에 다니냐고 묻는다. 그냥 “회사원”이라고 했더니 왕년에 자기도 그랬다며 개인사를 늘어놓는다. 결혼은 했느냐, 애들은 있느냐, 질문이 끝이 없다. 집앞에 도착해서도 자기 하던 얘길 마저 하고서야 신용카드를 달라고 한다. 그새 올라간 요금 100원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택시는 낯선 공간이다. 기사는 어떤 손님을 태울지 모르고, 손님도 어떤 기사를 만날지 모른다. 그러니 서로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고자 한다. 인간의 당연한 본성이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토마스 크레취만을 뒤에 태운 송강호도 자기가 베스트 드라이버라는 둥 사우디에 다녀왔다는 둥 되지도 않는 영어로 자꾸 말을 건다. 하지만 정도가 과하면 짜증이다. 숙취가 덜 깬 출근길이나 맥이 다 풀린 주말 퇴근길엔 제발 좀 가만 나뒀으면 한다.
 
사람들이 느끼는 게 다 비슷한 모양이다.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우버택시만 이용하는 친구가 있다. “요금도 싸지만 피곤한데 기사와 말 섞을 필요가 없어 좋다”고 한다. 앱으로 출발지와 목적지를 미리 입력하고 차 번호도 알고 있으니 만났을 때 “하이”, 헤어질 때 “생큐”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어차피 스쳐 지나갈 사람, 굳이 알아 뭐하느냐는 실용적인 태도다. 지난 3월 일본에선 침묵택시가 등장하기도 했다. 행선지를 묻고, 요금을 계산할 때 빼곤 운전기사가 승객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물론 손님이 먼저 얘기를 꺼낼 땐 예외다. 교토 미야코택시가 10대를 운행 중인데 승객 반응이 나쁘지 않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침묵택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생활 질문과 정치 얘기에 질린 승객이 적지 않다는 얘기일 것이다. 기사와의 대화가 부담스러워 택시에서 굳이 쓸데없는 통화를 하거나 스마트폰을 쳐다본다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꼭 ‘수다택시’만 있는 건 아니다. 기분 좋게 “어서 오세요”와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뻔한 길도 어느 길로 갈지 물어보는 친절한 기사가 대부분이다. ‘수다택시’는 사절이지만 침묵택시도 별로일 듯싶다. 내 기분을 살펴주고 대화의 양을 적절히 조절하는 ‘배려택시’면 충분하다.
 
나현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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