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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하필 이때에 공신 외교라니

중앙일보 2017.09.05 01:59 종합 31면 지면보기
송호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서울대 교수

송호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서울대 교수

참, 대책 없다, 기가 찬다. 물불 안 가리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난감한 판국이다. 김정은 같은 파괴적 인간이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게 한반도 팔자인지 모르겠으나 지구촌은 대체 무슨 불행인가? 핵 놀음은 인류사적 비극이다. 문명의 최대 적이다. 전쟁만은 막아야 하는데, 평양을 치면 제3차 세계대전, 안 치면 핵탄두에 무릎을 꿇어야 하니 난망하기 그지없다. 히로시마 원폭의 3배 위력을 지녔다는 핵탄두가 발사되면 뉴욕 맨해튼은 하루아침에 초토화된다. 서울과 도쿄는 말할 것도 없다.
 

문재인 정부는 캠프공화국
4강 대사에도 왜 공신뿐인가
국가 운명이 백척간두에 선 이때
도덕주의, 초년생 공신 외교는
‘국민의 우환’을 더할 뿐이다

김정은의 ‘죽음의 행진’ 앞에 경제 압박도, 외교 전술도 무기력하다. 말만 앞세우고 뒤로는 미소 짓는 중국의 저 음험한 태도 역시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외교의 전설’ 키신저(H. Kissinger)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는 과거에 중국을 끌어들여 소련을 고립시킨 전략가다. 1972년 닉슨의 중국 방문에 이어 1978년 체결된 미·중 수교는 소련을 변방으로 몰아 결국 냉전체제를 붕괴시켰다. 그의 솜씨다. 요즘 그는 시선을 바꾸었다. 거대 제국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에 손짓하는 중이다.
 
트럼프의 러시아 스캔들 뒤에는 키신저가 있다. 세력 판도를 바꾸려면 무엇을 못하랴. 그의 외교 전술에 도덕주의(moralism)는 없다. 10년 전, 그가 서울대를 방문한 적이 있다. 80세 고령에도 체구는 건장했고 눈빛은 형형했다. 필자가 물었다.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유대인의 강한 악센트로 말했다. “국제적 힘의 구도를 국익에 끌어들이는 지혜와 능력!” 간단명료했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세력 균형에 대한 천재적 촉수, 끊임없는 설득 능력이 그를 세기적 외교관으로 만든 원천이지만, 김정은의 가공할 만한 핵탄두 앞에서도 그의 논리가 통할까? 갑갑하긴 마찬가지다.
 
도덕주의에 기초한 문재인 정부의 초기 대북 원칙은 김정은이 발사한 미사일과 핵실험으로 무용지물이 됐다. 이슬람 무장세력인 IS에 도덕적 설득이 통하지 않듯, 대북 압박과 대화 노력을 병행하고자 했던 문 정부의 달빛정책은 이제 접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는가? 여전히 도덕주의 혹은 현실주의, 아니면 절충? 한반도의 운전대를 잡겠다는 의욕은 좋으나 목적지와 경로가 사라졌다. 내비게이션에 ‘평화공존’을 입력하면 ‘길, 절대 없음’이란 응답이 나온다.
 
이런 마당에 4대 강국 대사를 캠프 공신으로 채웠다. 강경화 장관 지명에서 이미 전조가 있었듯, 전문 외교관을 철저히 배제한다는 단호한 원칙이 관철됐다. 모두 신참이다. 외교관 행동요령이라도 제대로 익혔는지 모를 일이다. 군사 지식도 없다. 4강 신임대사들은 이미 무효화된 압박·대화 병행전략 말고 새로운 대안을 논의해 본 적이 없다. 강경화 장관도 궁한 판에 서로 ‘원칙 없음’을 확인하고 부임지로 떠나는 것은 아닌지. 이참에 외교 원로들을 한데 모아 숙의해 보면 틈새전략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자칫 틀어지면 한국의 운명이 어찌 될지 모를 4대 강국 외교에서 그냥 임기응변, 눈치껏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재인 정부는 캠프공화국이다. 국가 운명이 백척간두에 선 이때에 왜 모두 공신(功臣)들인가? 직업 외교관이라고 꼭 성과를 낸다고는 말 못한다. 참신한 인물이 빛을 발할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은 드물게 일어난다. 외교는 경륜과 경험지(知)가 무엇보다 중요한 전문 영역이다. 개인의 능력만 믿고 덤볐다간 일을 망친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전문가가 이리도 궁한가? 북·미 간 전쟁 기운이 고조된 이때에 꼭 경제전문가를 미국에 보내야 하나? 꿈쩍도 않는 시진핑의 중국에 노영민 의원은 웬일인가? 우윤근 국회사무처장은 개헌 관련 식견이 높은데 왜 러시아를 점찍고 있나? 이수훈 교수는 동아시아를 두루 살펴보긴 했는데 일본 특수통은 아니다.
 
하기야 이전에도 논공행상에 4강 대사가 최고의 선물이었으니 할 말은 없다. 신각수 전 일본대사는 소통 기술을 최선의 덕목으로 쳤다. 일본말로 ‘이이마와시(말 돌리기)’에 능통해야 외교 목적을 달성한다고 했다. 의사결정 채널이 누구인지,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파악하는 본능적 감각이 중요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당시 한덕수 주미 대사는 하원의원 250여 명을 찾아다녔다. ‘한·미 FTA 협정 폐기’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미 공사 십 년에 외교부 미주국장을 지낸 김숙 전 유엔대사는 미국 정치와 외교에 상당한 식견을 갖췄다. 그럼에도 외교계 핵심부에 진입하기가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내정된 공신들은 한국에서 명망가들이지만 국제 외교가(街)에서 인정받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김정은의 핵탄두가 대기 중이고, 4강이 첨단무기로 일자진(一字陣)을 펴는 이때 도덕주의 외교, 초년생 공신 외교는 ‘국민의 우환’을 더할 뿐이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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