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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스타일] 1000원짜리 노가리, 계란 동동 쌍화차 … 노포의 성지

중앙일보 2017.09.05 01:04 종합 18면 지면보기
푸드 트립 │ 서울 을지로3가 
도심 핫플레이스를 즐길 수 있는 가이드 역할을 하는 ‘푸드트립’, 이번에는 노포가 몰려 있는 서울 을지로3가다.
 

골목골목 수십 년 된 가게들
안동장·오구반점·을지면옥 …
내공 있는 맛 … 값도 싸고 푸짐

높아야 3~4층인 낮고 허름한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선 을지로3가. 하지만 걷다 보면 이곳만의 매력을 느끼게 된다. 공구상이며 조명가게 등은 마치 과거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거리가 호황을 누리던 1960~70년대 식당도 여럿 생겼다. 하지만 도시 발달에 속도를 맞추지 못한 을지로3가는 재개발 추진마저 여러 번 번복되며 쇠락을 거듭했다. 그 덕분에 값싸고 푸짐한 식당은 50년 넘게 이어질 수 있었다. 을지로 문화유산해설사 신성덕(71)씨는 “을지로3가 노포는 대부분 포장을 하지 않는다”며 “귀찮아서가 아니라 가게에서 음식 본연의 맛을 느끼라는 철학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새로 유입되는 사람도 적다. 중구청 시장경제과 이남숙 주무관은 “노포들은 주인이 건물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재개발 추진 번복으로 임대료가 크게 오르지 않아 임대로 들어와도 오래도록 장사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중식이냐 냉면이냐
 
을지로 푸드트립은 점심시간에 시작한다. 동네마다 중국집이 있지만 을지로에선 세월의 깊이가 다른 중국집이 기다린다. 을지로3가역 큰길에는 1948년 서울에서 처음 문을 연 중국집 ‘안동장’이 있다.
 
안동장 맞은편 2번 출구 옆 골목에는 빨간색 간판의 군만두 맛집 ‘오구반점’이 있다. 53년 문을 열 때 5-9번지라는 번지수대로 가게 이름을 짓고 아들 이름도 오구로 지었다. 지금은 그 아들 왕오구씨가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을지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냉면이다. 을지로3가역 5번 출구 바로 앞엔 평양냉면을 하는 ‘을지면옥’이 있다.
 
을지면옥과 이어지는 코스가 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나오는 ‘을지다방’이다. 50년 동안 주인은 몇 번 바뀌었지만 이름과 내부는 그대로다. 다방 커피와 달걀을 띄운 쌍화차가 인기다.
 
새로 문을 여는 공간도 오랜 역사를 담고 있는 기존 노포 분위기와 닮았다. 빈티지 소품과 고가구로 꾸민 ‘커피한약방’ 입구. [김경록 기자]

새로 문을 여는 공간도 오랜 역사를 담고 있는 기존 노포 분위기와 닮았다. 빈티지 소품과 고가구로 꾸민 ‘커피한약방’ 입구. [김경록 기자]

2~3년 새 새로 문을 연 공간도 을지로의 오래된 가게들과 닮았다. 안동장 뒤쪽 골목의 ‘호텔수선화’와 을지로3가역 1번 출구 뒷골목 ‘커피한약방’이 대표적이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인쇄소 건물 4층에 있는 호텔수선화는 패션 디자이너와 주얼리 디자이너 3명이 함께 연 작업실이자 카페다. 커피한약방은 연극배우 강윤석씨가 운영하는 공간이다.
 
사실 을지로에선 식사 후 커피 말고 다른 걸 찾는 사람이 더 많다. 을지다방 맞은편 골목, 그러니까 을지로3가역 4번 출구 안쪽으로 가면 노가리 골목이 나온다. 이곳엔 80년에 가장 먼저 노가리를 구워 판 ‘을지OB베어’를 필두로 23개의 호프집이 모여 있다. 노가리 골목의 단골들은 “커피보다 낫다”며 대낮부터 연신 맥주를 들이켠다. 노가리 골목 가게 대부분 낮 12시면 문을 연다. 500cc 생맥주 한 잔에 3000원, 노가리 한 마리에 1000원이다. 정규호 사장은 “노가리 골목 가게 모두 2000년 이후 노가리 가격을 올리지 않고 1000원만 받는다”고 말했다. ‘뮌헨호프’는 당일 오전에 받은 생맥주만 파는데, 그날 준비한 500cc 1200잔이 다 팔리면 문을 닫는다.
 
서울 을지로3가역 5번 출구 앞 좁은 골목부터 시작하는 ㄷ자형 골목엔 1960년대 이전에 문을 연 노포들이 모여 있다. 골목에 들어서면 보이는 ‘통일집’은 암소 등심 한 가지 메뉴만 판다. [송정 기자]

서울 을지로3가역 5번 출구 앞 좁은 골목부터 시작하는 ㄷ자형 골목엔 1960년대 이전에 문을 연 노포들이 모여 있다. 골목에 들어서면 보이는 ‘통일집’은 암소 등심 한 가지 메뉴만 판다. [송정 기자]

을지로3가역 네거리 6번 출구 쪽엔 양대창 전문점 ‘양미옥’을 필두로 한 골목길이 나온다. 이곳부터 ‘ㄷ’자로 이어진 좁은 골목이 노포의 성지다. 대부분 60년대 이전에 문을 열었다. 골목에 들어서니 노상 테이블에 앉아 고기 굽는 사람들이 보인다. 69년에 문을 연 ‘통일집’으로 암소 등심 한 가지 메뉴만 판다. 통일집을 지나 골목을 걷다 보면 생태탕 맛집 ‘세진식당’이 나오고 세진식당 지나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돼지갈비집 ‘안성집’과 곱창전문점 ‘우일집’, 소갈비집 ‘조선옥’이 차례로 나온다.
 
골뱅이냐 막걸리냐
 
시원한 맥주와 고소한 노가리를 파는 노가리 골목엔 하루 종일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낮엔 어르신이, 밤엔 직장인들이 찾는다. 외국인도 많다. [사진 뮌헨호프]

시원한 맥주와 고소한 노가리를 파는 노가리 골목엔 하루 종일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낮엔 어르신이, 밤엔 직장인들이 찾는다. 외국인도 많다. [사진 뮌헨호프]

을지로3가역 11, 12번 출구가 마주한 골목은 골뱅이무침을 파는 식당이 모여 있는 골뱅이 골목이다. 이 골목 골뱅이무침은 새콤달콤한 흔한 맛이 아니다. 통조림 골뱅이 하나를 통째로 따서 마늘과 고춧가루, 대구포(또는 아귀포), 파채를 함께 낸다.
 
막걸리를 좋아한다면 노가리 골목에서 을지로입구 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을 추천한다. 막걸리와 잘 어울리는 메뉴를 파는 식당 두 곳이 있다. 직접 말린 코다리로 만든 코다리찜을 파는 30년 된 ‘우화식당’, 그리고 여든 넘은 할머니가 파와 해물을 가득 넣고 구워낸 해물파전을 파는 ‘원조녹두’다.
 
을지로3가의 매력은 골목에 있다. 지도만 보고 찾아가기 어렵다면 ‘을지유람’을 추천한다. 전화(02-3396-5085)로 나흘 전에 신청하면 문화유산해설사가 현장에서 함께 걸으며 을지로 역사와 노포를 소개해준다.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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