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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에 핀 저 꽃들, 가신 이들 넋이려나

중앙일보 2017.09.05 00:42 종합 22면 지면보기
‘그곳의 봄’(2014, 캔버스에 유채, 조화, 194x379㎝) 앞에 선 송창 작가. [학고재갤러리]

‘그곳의 봄’(2014, 캔버스에 유채, 조화, 194x379㎝) 앞에 선 송창 작가. [학고재갤러리]

탱크를 그린 캔버스 위에 점점이 꽃이 피었다. 실제의 꽃이나 이를 그린 것이 아니라 인공의 조화를 가져다 붙인 것이다. 꽃마다 한가운데 꽃술 자리에는 자그마한 병사 모형이 들어있다. 송창(65) 작가가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 개인전 ‘꽃그늘’에 선보이고 있는 작품 ‘수상한 꽃술’이다.
 

송창 작가 개인전 ‘꽃그늘’

그에게 꽃은 아름다운 자연, 혹은 축하의 의미만은 아니다. “죽은 이를 보낼 때도 쓰고, 산 자와 망자 간에 소통하는 중간 매개물도 되죠. 그런 점에서 직접 추모공원 같은 데서 사용하고 난 꽃을 모은 겁니다.” 조화에 함축된 애도와 비극의 의미는 ‘그곳의 봄’에서 한층 확실해진다. 흰 풀꽃의 풍경, 해골과 조화가 뒤섞인 비석, 외래종 흰 개를 각각 세 개의 캔버스에 그려 하나로 연결한 작품이다. 소재는 경기도 연천의 유엔군화장장이다. 한국전쟁 때 유엔군 전사자의 시신을 화장했던 곳이다. 현재 등록문화재로도 지정돼 있다. ‘등록문화재 408호’ 역시 이를 소재로 삼은 그림이다.
 
작가는 진작부터 임진강을 따라 연천, 철원 등을 꾸준히 답사하며 곳곳에서 분단의 흔적을 확인하고 작품의 영감을 받아왔다. “유일하게 남북을 관통하고 있는 강이 임진강이죠. 이를 사이에 두고 남북이 대치하고 있고. 중요성 때문에 삼국시대부터 임진강을 끼고 많은 싸움이 이뤄졌어요.” 가로 3.8m가 넘는 대형 그림 ‘꿈’은 연천의 주상절리 부근이 배경이다. 지금은 관광지로도 각광 받는 곳이지만 그의 그림에선 전혀 다른 모습이다. 하늘은 붉고 다리는 끊어진 모습이 마치 한국전쟁 같은 전쟁의 참화를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듯 보인다.
 
전시장에선 분단이 그의 오랜 주제임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사의 장면이 담긴 실제 사진에 바탕한 ‘판문점-휴전선 긋기’등 여러 실크 스크린 작품을 비롯해 실제 소나무 껍질을 큼직하게 붙인 캔버스 한가운데 투박한 식도를 꽂아 외세에 의한 분단을 표현한 ‘굴절된 시간’ 등 90년대 작품도 여럿 선보인다. 분단은 그에게 지금도 작가적 시대정신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보고 왜 바뀌지 않냐고, 그걸 버리지 않냐고 해요. 통일이 되고 시대가 정말 좋아졌다면 모르죠. 한때는 철도도 놓고 금방 뭔가 이뤄질 것 같았는데 다시 또 암울해진 게 지금의 상황이죠.”
 
작가의 80년대 대표작으로 꼽히는 ‘매립지-신도시’ ‘난지도-매립지’ 등도 전시된다. 급속한 도시화에 따른 그늘을 강렬하고 그로테스크하게 담아낸 시리즈다. 전남 장성이 고향인 작가가 대학졸업 후 서울 근교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하며 목격했던 참상이 그 바탕이 됐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24일까지.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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