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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가방' 을 왜 영국 '구두' 디자이너가 만들지?

중앙일보 2017.09.05 00:01
배우 니콜 키드먼, 사라 제시카 파커, 모델 미란다 커 등 유명 스타들이 레드 카펫 행사가 있을 때 마다 앞다퉈 선택하는 구두가 있다. 런던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영국인 구두 디자이너 니콜라스 커크우드(37)의 아찔한 구두다. 비스듬하게 커팅된 플랫폼이 달린 하이힐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몇 년 동안 패션계에 화려한 색상과 프린트 등 시선을 사로잡는 구두를 소개하는 디자이너’라 평할 만큼 실험적인 구두를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130년이 넘는 역사의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불가리와 협업해 가방을 내놨다. 그렇다. 구두 아닌 가방 ‘불가리 세르펜티 바이 니콜라스 커크우드’ 컬렉션 말이다. 지난 8월 31일 컬렉션 론칭 행사를 위해 방한한 그를 서울 청담동 편집매장 분더샵에서 만났다. 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불가리 
이탈리아 브랜드 불가리와 함께 협업 가방을 만든 영국 구두 디자이너 니콜라스 커크우드가 지난 9월 1일 서울을 찾았다. 함꼐 보이는 가방이 이번 협업으로 선보인 가방들이다.

이탈리아 브랜드 불가리와 함께 협업 가방을 만든 영국 구두 디자이너 니콜라스 커크우드가 지난 9월 1일 서울을 찾았다. 함꼐 보이는 가방이 이번 협업으로 선보인 가방들이다.

불가리의 협업 가방을 처음 공개할 ‘분더샵’ 매장에 나타난 니콜라스 커크우드의 모습은 수수했다. 아니, 수수하게 느껴졌다. 다채로운 컬러에 커다랗고 조형적인 굽이나 장식으로 무장한 그의 화려한 구두를 생각하면 별다른 장식 없는 검정 점퍼 차림에 단정한 머리 모양, 오래 신은 듯 낡은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나타난 그의 모습은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가 한국에 들고 온 불가리와의 협업 가방은 그의 구두만큼이나 화려하고 또 젊었다. 이 남자의 속이 더 궁금해졌다.  

불가리와 협업한 니콜라스 커크우드
사라 제시카 파커, 미란다 커 등 스타들의 하이힐 만든 인물
삼성 갤럭시 탭, 화장품 헤라와 협업하기도
옷 가게 판매 직원으로 일하다 구두의 매력에 빠져 들어
130년 전통 이탈리아 장인 정신 깃든 불가리 백을 런던 감성으로 해석

한국엔 몇 번째 방문인가.
이번이 네 번째다. 2013년 삼성전자와의 협업으로 갤럭시 노트3를 보관하는 월렛 디자인을 하기 위해 처음 왔다. 마지막은 2016년 화장품 브랜드 헤라와의 협업을 위한 방한이었다.  
한국 브랜드와의 협업이 많았다.
사실 지금까지 구두 외의 제품으로는 협업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 두 곳이 다 한국 브랜드였다. 처음 시작할 때 갤럭시와 헤라가 한국 브랜드라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해외에서 워낙 많이 쓰는 것이다보니 브랜드의 이미지만 봤지, 그 브랜드가 어느 나라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계약을 하고 보니 둘 다 한국 브랜드여서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니콜라스 커크우드가 만든 '불가리 세르펜티 바이 니콜라스 커크우드' 컬렉션의 숄더백들.

니콜라스 커크우드가 만든 '불가리 세르펜티 바이 니콜라스 커크우드' 컬렉션의 숄더백들.

니콜라스 커크우드와 삼성전자가 협업한 갤럭시 노트3 월렛.

니콜라스 커크우드와 삼성전자가 협업한 갤럭시 노트3 월렛.

헤라와 협업으로 만든 쿠션 팩트 케이스.

헤라와 협업으로 만든 쿠션 팩트 케이스.

가방 협업은 이번이 처음인가.
그렇다. 이번 불가리와의 협업으로 15가지 가방을 만들어 냈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라 기대가 크다.  
※국내에는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계 패션업계에서 니콜라스 커크우드의 명성은 대단하다. 2005년 25세의 나이로 처음 자신의 브랜드를 만든 그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여배우들의 선택을 받기 시작하더니 ‘차세대 크리스찬 루부탱’이라 불릴 정도로 현재 구두업계를 이끄는 디자이너로 인정받고 있다. 2013년엔 거대 럭셔리 브랜드 그룹 LVMH의 투자를 받아 이목을 끌었다. LVMH 그룹이 소유하거나 투자한 단일 여성 구두 브랜드는 ‘니콜라스 커크우드’가 유일하다. 국내엔 분더샵 등 편집매장에 입점해있다.  
니콜라스 커크우드. 그가 디자인한 전위적 느낌의 구두와 다른 편안한 운동화가 눈에 띈다.

니콜라스 커크우드. 그가 디자인한 전위적 느낌의 구두와 다른 편안한 운동화가 눈에 띈다.

성공한 구두 디자이너로 손꼽힌다. 구두 디자이너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대학 졸업 후 패션 브랜드 ‘필립 트레이시’에서 잠시 매장 직원으로 일할 때였다. 당시 자신의 신발을 매장으로 들고 와서 그 신발에 맞는 옷과 모자를 찾고 싶다고 말하는 많은 여성들을 봤다. 그때 신발이 매력적인 물건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한 마디로 구두에 반했다. 대학에서 사진과 설치미술을 전공했는데 다시 ‘세인트 마틴’에서 패션을 공부했다.  
구두에 반한 이유가 뭔가.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을 많이 갖추고 있다. ‘마이크로 디테일’과 구조적인 특성에 끌렸다. 무슨 말이냐면, 구두가 가진 여러 요소들이 구조적이고 건축적인 데다 아주 정교하고 정확한 기술이 필요하다. 평소 주얼리의 정교함과 화려함, 구조적인 특성을 좋아했는데, 구두는 주얼리만큼 10분의 1㎜ 단위는 아니라도 ㎜단위의 정교함이 필요하다. 1㎜만 달라져도 전체적인 슈즈의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처음 구두를 배우고 만드는 과정 자체에 희열을 느꼈다.  
니콜라스 커크우드가 2017 가을 시즌의 새로운 모델로 내놓은 하이힐. 뒷굽 안쪽에 커다란 진주가 아슬아슬하게 달려 있다.

니콜라스 커크우드가 2017 가을 시즌의 새로운 모델로 내놓은 하이힐. 뒷굽 안쪽에 커다란 진주가 아슬아슬하게 달려 있다.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명한데, 주로 어디서 영감을 받나.
사실 따로 영감을 얻기 위한 무언가를 하진 않는다. 그저 평소에 건축과 현대미술을 보는 걸 좋아한다. 그게 자연스럽게 ‘베이비’(구두)들에 배어져 나온다. 하지만 막상 디자인에 들어가면 직접적인 모티프 없이 그냥 저절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디자인 작업에서는 평소 내 안에 깔아놓은 심미적인 틀 안에서 그래픽적 요소와 여성스러움 같은 상반된 요소들을 어떻게 긴장감 있게, 그러면서도 잘 어울리게 만들어 내느냐를 고민한다.  
니콜라스 커크우드의 구두들. 화려한 색감에 뒷굽을 조각처럼 만들거나 사선으로 깎은 앞굽을 붙였다.

니콜라스 커크우드의 구두들. 화려한 색감에 뒷굽을 조각처럼 만들거나 사선으로 깎은 앞굽을 붙였다.

긴장감이 당신의 구두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가.
맞다. 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무엇이든 긴장감이 있어야 눈이 한번 더 간다. 특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가지가 뻔하지 않게 만날 때 우리는 더 흥미를 느낀다. 사실 디자인을 할 때 한 가지로 통일된 모티프나 요소를 정하면 쉽다. 하지만 그러면 너무 뻔한 작품이 나오고 식상해진다. 반대 방향으로 끌어줄 수 있는 다른 요소가 동시에 있어서 팽팽하게 긴장감이 유지되야 생각하지 못했던 신선한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나 스스로도 그 작품에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게 된다. 예를 들어 구두 윗부분은 거대한 사이즈의 꽃을 프린트해서 구두가 꽃의 일부인 것처럼 만드는 반면 굽은 금속 소재를 쓰는 식이다. 두 가지의 안 어울릴 것 같은 소재와 재질을 하나의 구두에 넣어 긴장감을 준다. 물론 이때도 여성이 이 신발을 신었을 때 아름답고 섹시하게 보여야 한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니콜라스 커크우드가 이번 불가리와의 협업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든다고 꼽은 가방. 그가 구두에 잘 사용하는 V자 패턴을 블랙&화이트 스터드로 장식했다.

니콜라스 커크우드가 이번 불가리와의 협업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든다고 꼽은 가방. 그가 구두에 잘 사용하는 V자 패턴을 블랙&화이트 스터드로 장식했다.

불가리와의 협업은 어떻게 진행됐나.
공식적으로 출발한 건 아니었다. 한 사교모임에서 불가리 액세서리 비즈니스 부문 매니징 디렉터인 미레이아 로페즈 몬토야와 ‘젊은 영국 디자이너와 전통적인 이탈리아 브랜드가 함께 작품을 만들어보면 재미있겠다’라고 이야기하다 시작됐다. 실제로 많은 협업들은 이렇게 사소한 만남에서 시작된다.  
시간은 얼마나 걸렸나.
처음 이야기가 나오고 몇 달 뒤 바로 시작해 프로토 타입(생산 전 모델)이 나오기까지 1년 정도 걸렸다. 그게 2016년 12월이었고 올 가을시즌 상품으로 매장에 나오게 됐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오히려 공통점이 너무 많아 너무 쉽게 진행됐다. 불가리가 생각하는 디자인 정신이 있었는데 독창성과 구조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디자인 철학과 놀랍도록 일치했다. 굳이 어려운 점을 꼽자면 불가리에 대한 많은 공부를 해야 했다는 것 정도인데, 하이 주얼리와 가방을 배울 수 있어서 나에겐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이번 협업 컬렉션을 간단하게 소개한다면.
불가리의 상징물 중 하나인 ‘세르펜티’(뱀 모양 장식) 가방을 젊은 영국 디자이너의 감각으로 풀어낸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뱀 머리 조각을 단 백팩, 숄더백, 파우치 등 가방을 그래픽적인 요소와 펑크한 런던 스타일의 감성을 넣어 만들었다. 기존의 세르펜티 가방에 비해 더 젊고 화려해진 모습이다.  
불가리 세르펜티 바이 니콜라스 커크우드 컬렉션.

불가리 세르펜티 바이 니콜라스 커크우드 컬렉션.

원래의 불가리 세르펜티 백. 가방의 전체적인 모양이나 플랩(덮개)부분, 뱀 머리 장식이 많이 바뀌었다.

원래의 불가리 세르펜티 백. 가방의 전체적인 모양이나 플랩(덮개)부분, 뱀 머리 장식이 많이 바뀌었다.

기존의 세르펜티 가방과 다른 점은.
기존 가방에 비해 뱀 머리 모양을 둥글고 납작하게 만들었다. 펑키한 느낌이 나도록 금속 스터드를 많이 달았는데 이 위에 고무를 한번 덧씌워 만졌을 때 부드러운 느낌이 나도록 했다. 스터드의 패턴은 내가 주로 사용하는 쉐브론(V자) 패턴을 반복해서 넣었다. 가방 모양도 정사각형 비율로 다듬었다. 
구두디자이너 니콜라스 커크우드.

구두디자이너 니콜라스 커크우드.

앞으로 자신의 브랜드에서도 구두 외에 다른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 있나.
물론이다. 사실 구두 외에 주얼리에 관심이 많아서 내 브랜드 안에 주얼리 라인을 만드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 실제 대학에서도 주얼리를 전공할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많을 만큼 말이다. 그 외에도 가구, 홈웨어와 크게는 건물 디자인까지도 도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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