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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닭·돼지·소 모두 한 목소리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중앙일보 2017.09.04 13:57
요즘, 나 때문에 한국은 물론 유럽도 난리가 났더군. 그런데 말이야 그동안 난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우리가 무슨 알 낳는 기계냐고? 옴짝달싹 못 하는 좁은 우리가 가두고 하루가 멀다고 이상한 액체를 찍찍 뿌려대니살 수가 있어야지. 이참에 잘됐어. 소·돼지·개 너희도할 말 많지? 뭐 코끼리랑 침팬지도 할 말 많다고? 그래 우리 다 같이 하소연 좀 해보자. 인간들아 우리는 즐겁게 살면 안 되는 거니? 그런 거니?
글=이연경 기자 lee.yeongyeong@joongang.co.kr
참고 도서=『돼지도 장난감이 필요해』, 『인간과 가축의 역사』, 『탐욕의 울타리』, 『총, 균, 쇠』
 

 올 첫 구제역이 충북 보은군 마로면에서 발생한 6일 오전 대전의 한 한우사육농가에서 어미소와 송아지들이 사육장 밖을 바라보고 있다. 정부는 이날 구제역 위기경보 단계를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올 첫 구제역이 충북 보은군 마로면에서 발생한 6일 오전 대전의 한 한우사육농가에서 어미소와 송아지들이 사육장 밖을 바라보고 있다. 정부는 이날 구제역 위기경보 단계를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순박함'. 나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느낌이지. 순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성격 때문이야. 하지만 원래 이러지 않았어. 내 조상은 유라시아 등에 살던 야생 소 '오록스'인데, 몸집이 무척 컸고 성격도 거칠었대. 실제로 뵌 적은 없어. 서식지 감소, 남획 때문에 16세기에 멸종했거든. 우리는 기원전 6000년부터 사람들과 함께 산 것으로 보여. 고기를 얻기 위해, 가죽을 옷으로 쓰기 위해 사람들을 우리를 길들였지. 기원전 4000년에 바퀴 달린 수레가 처음 사용됐는데, 우리가 밭일을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래. 이런 다양한 쓸모 때문에 너희 선조들은 나를 무척 아꼈어. '황태자', '어사' 등으로 부르기도 했지. 그들의 후손이라면 갑갑한 축사에서 날 꺼내줘. 목에 묶인 쇠사슬 때문에 피부를 간지럽히는 털, 배설물도 핥을 수가 없어. 온종일 하는 일은 옥수수 사료 먹기뿐. 이것도 '되새김질'이란 나의 습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메뉴야. 풀은 내 혹 위에 들어갔다 미생물에 의해 소화된 후 다시 입으로 나오지만, 사료는 혹 위에 그대로 있거든. 더부룩한 속을 달래다 보면 옛 조상들의 삶이 자꾸만 상상돼. 그들은 너른 초원을 달리며 맛있는 풀도 맘껏 먹었겠지?
소년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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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우리는 기원전 8000년부터 인간에게 길들여졌어. 대부분의 국가에서 우리는 백성들의 오랜 단백질원이었고, 고대 로마인은 "자연이 베풀어준 만찬"이라고 반겼대. 영화 '꼬마 돼지 베이브'를 보면 나의 두 가지 특징을 알 수 있어. 영화를 찍을 정도로 지능이 높고, 지루한 걸 못 참는 활달한 성격이란 것이지. 실제로 동물행동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우리가 사회성이 높고 학습효과가 뛰어난 동물임이 드러나. 또 깨끗한 걸 좋아해 화장실 터는 잠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정하고 한 장소만 사용하지. '게걸스레 먹는 동물'이란 이미지는 빨리 떨치고파. 제주도에 살았던 옛 돼지들은 사료대신 사람 배설물을 먹었지. 내륙보다 먹을 것이 부족한 섬사람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사육 방식이었는데, 우리는 어느새 '똥까지 먹는 돼지'가 되버렸어. 가끔 멧돼지들이 산에서 농가로 내려오는 것도 먹성보단 각종 개발로 먹이를 찾기 힘들어진 환경을 탓해야 해. 진흙 웅덩이에서 열을 식히는 것이 우리의 낙인데, 폭 60cm의 밀집 사육장에선 꿈도 못 꿀 일이야. 어쩔 수 없이 내 배설물을 진흙 대신 몸에 바르지. 이 모습을 보고 누군 "더럽다"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인간이 만든 환경을 우리 식대로 견디는 중일뿐이야.
 

우리의 조상은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에 인도와 동남아시아에 걸쳐 살았던 붉은색 들닭이야. 조상의 모습과 지금의 우리 모습을 비교하면 많은 게 달라졌어. 우선 오랜 세월 날지 않다보니 날개가 위축됐고, 덩치도 날기 부담스럽게 커졌어. 오스트리아 자연학자 콘라트 로렌츠는 새가 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를 '각인'이라 했는데, 처음 본 사물을 제 어미로 생각하고 따르는 행동을 말해. 태어나자마자 본 어미가 우리 안에서 늘 뒤뚱뒤뚱 걷고 있었으니, 우리가 나는 방법을 잊어버렸을 수 밖에 없지. 많은 학자들이 사람들이 계란이나 고기가 아닌 제의나 싸움닭 같은 오락을 위해 닭을 사육했다고 추정해. 실제로 우리 성격은 꽤 호전적이고, 90마리까지의 서열을 확실히 정할 만큼 엄격한 데가 있어. 부리로 다른 닭을 쪼는 행동이 바로 위계질서를 정할 때 보이는 모습이야. 하지만 다 옛날 얘기지. 좁은 축사에 갇힌 닭들이 서로 쪼아 상처를 입히는 걸 막기 위해 병아리 때 마취도 없이 부리를 잘라 버리거든. 우리 수명이 30년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공장식 농장에선 끽해야 한 달이야. 한 해 8억 마리의 닭을 먹어 치우는 사람들을 만족시키려면 빨리 자라 빨리 내 몸을 바칠 수 밖에.
 

개가 인간의 가축이 된 것은 기원전 1만 년 전. 대형 포유류 가운데선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해. 사람을 잘 따르고 주인에게 충성하는 성격 덕분이지. 우리의 조상은 늑대야. 옛 사람들은 사냥과 도둑을 막는 용도로 늑대를 기르기도 했대. 그런데 용맹한 늑대가 어떻게 페키니즈, 치와와 등의 귀여운 애완견이 됐을까? 인간이 종을 개량한 덕분이지. 농경 사회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은 단순했대. 학자들은 집을 지키는 개를 검게, 양치기 개는 희게 육종했을 거라고 추측해. 그러다 고대 로마 시대에 투견이 육종됐고, 가슴에 폭 안기는 작은 개도 등장했지. 이렇게 만들어진 우리의 종류는 현재 400가지가 넘어. 제각기 다른 생김새와 성격을 자랑하는 우리를 사람들은 물건 사듯 구입해 기르지. 하지만 한 해 동안 생기는 유기견 수가 10만 마리일 정도로 금방 버리는 사람이 많아. 식용으로 개를 키우는 농장에 가면 개별 상자에 고립돼 길러지는 우리를 볼 수 있을 거야. 서열이 낮은 개들이 스트레스를 받은 큰 개에 물리는 걸 막기 위해 따로 둔 것이지. 하지만 그런 사나운 개도 상자 밖으로 나와 사람 손을 타면 온순해져. 우리가 너희를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변함 없는 거야.
 

침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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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과 닮은꼴 동물로 잘 알려져 있지. 실제로 인간과 우리의 유전자는 98.8%나 일치해. 이 때문에 신약 실험 동물로 자주 이용되지. 실험실에 온 어린 침팬지들은 고향 밀림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경험해. 어린 개체 한 마리를 잡으려면 그의 부모 등 수많은 큰 침팬지를 사살해야 하거든. 영국의 동물학자 제인 구달은 이를 안타까워하며 우리에게 감성이 있다고 주장했어. 실제로 그녀의 책엔 가족들끼리 입 맞추고, 껴안고, 장난치는 침팬지의 모습이 자주 등장해. 인상적인 일화도 있지. 제인 구달이 실험실에 갇인 침팬지를 보고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렸대. 그런데 가만히 있던 침팬지가 갑자기 다가와 눈물을 닦아줬단 거야.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침팬지가 그녀의 슬픔에 공감했던 것은 아닐까? 영화 '혹성탈출'의 모델이기도 한 실험실 침팬지 '님 침스키' 역시 우리가 감성을 가지고 있음을 잘 보여줘. 인간에게 수화를 배웠을 정도로 똑똑했지만, 야생성이 드러나자 버림 받았어. 그래도 사람들과 찍은 사진을 간직하고, 동료에게 수화를 가르치는 등 인간과의 기억을 끝까지 소중히 여겼대. 이처럼 우리도 사랑을 알고 또 울고 웃어. 그러니, 좀 조심히 다뤄줄래?
 
코끼리
다른 동물들이 묵묵한 일꾼이라면, 쇼에 선 우리들은 너희들의 '연예인'이지. 연예인 노릇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니? 옛 사람들은 우리의 빛나는 상아에 열광했지. 19세기에는 아프리카 등 우리가 사는 지역을 모든 유럽 여행자들이 코끼리를 사냥하려고 안달이었는데, 단추·당구공·나이프의 손잡이·피아노 건반 등 상아가 쓰이는 곳이 끝도 없었대. 쇼에 선 것은 고대 로마 시대 때부터야. 무기를 던지고 '전쟁춤'을 추는 등 온갖 묘기를 선보였대. 다 피나는 연습의 결과지. 지금도 조련사들은 '따거'라 불리는 뾰족한 갈고리를 들고 귀 뒷부분처럼 부드러운 피부를 찌르며 우리를 조종해. 실수하면 매질을 하거나 입에 재갈을 물리기도 하지. 나 역시 어릴 때 사람들에게 사로잡혀 쇼장으로 왔어. 나를 잡기 위해 사람들은 부모, 형제 코끼리들을 죽였지. 지금 가장 괴로운 것은 휴식도 없이 반복 되는 공연이야. 10여 년 전, 내 선배들은 이 생활을 못참고 어린이대공원을 탈출하는 사고를 냈어. 인천에서 서울로 오자마자 하루 5번씩 이어진 공연에 화가 난 탓이야. 하지만 지금도 쇼는 계속 돼. 여기서도 우리는 슬픔과 고통을 숨기고 춤을 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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