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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취하는 것 말고는 여성을 묘사할 줄 모르는 충무로 '남자영화'

중앙일보 2017.09.04 11:17
 
한국영화에 새로운 장르가 부상한 모양이다. 지금껏 당연시되다 사회 전반의 젠더 감수성이 진화하며 이제야 문제시되고 있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남자영화'가 그것이다. 남자영화라니?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하지만 용어의 정확성을 따질 만큼 한가해 보이지 않는다. 남자영화는 단순히 남자들이 우르르 나와 그들만의 이야기를 쌓는 영화가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신흥 장르의 핵심은 여자에 대한 영화의 태도에 달려 있다. 이들 영화는 남성성을 부각하기 위해 여자를 폭력적으로 묘사한다. 단순무식한 장애물로 취급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벗기고, 관음하고, 때리고, 강간하고, 살해한다. 착취하는 방식 외에 여자에 대한 상상력이 희박한 영화가 남자영화인 것이다.  

'브이아이피'에서 '청년경찰''군함도'에 이르기까지
남성이 중심 인물일 뿐 아니라 남성성을 부각하기 위해
여성을 폭력적으로 묘사하는 '남자영화' 들.
여성은 그저 걸림돌이거나 폭력의 대상으로만 존재.

 
'탐정:더 비기닝'

'탐정:더 비기닝'

 
남자영화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멀리 갈 것 없이 최근 몇 년간의 한국영화를 바탕으로 남자영화의 특징을 개괄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남자영화에서 여자는 남자의 비장한 과업을 방해하는 장애물 수준으로 납작해진다. '탐정: 더 비기닝'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남편은 본업인 만화방 운영 대신 허구한 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미제살인사건에 집착한다. 집안 사정을 무시하고 형사놀이에 빠진 것은 남편이지만 영화는 그것에 대한 아내의 비판을 엇나간 성깔로 취급한다. 무능하고 철없는 남편의 위상을 굳건하게 지키기 위해 상식적이고 철든 아내를 신경질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결말은 더 황당하다. “어쩌겠어, 우리 인자한 남자들이 참아야지” 식인데, 참으로 편리한 정신승리라 하겠다.  
 
'브이아이피'.

'브이아이피'.

 
한편, 남자영화는 남자 캐릭터를 입체화하기 위해 여자 캐릭터를 희생양 삼는다. 최근 논란이 되는 '브이아이피'가 대표적이다. 이 영화에서 여자는 이미 죽었거나 곧 죽는다. 특히 초반의 살해 장면은 선정적이다 못해 참혹하다. 캐릭터의 악마성을 강조해 이야기의 힘을 확보하는 차원이었다 해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악마를 상상하는 방식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많은 방식 중 하필이면 여자를 고문하고, 강간하고, 살해하는 방식을 고집한 이유는 무엇인가. 빈곤한 상상력은 때론 고약하다.  


청년경찰

청년경찰

 
 더불어, 남자영화는 남자의 신화를 완성하기 위해 여자의 고통을 저당 잡는다. 중국동포의 묘사에 대한 논란을 낳은 '청년경찰'은 '브이아이피' 보다 심각하다. 이 영화는 일종의 영웅담이다. 여성 대상의 인신매매 범죄, 범죄를 모의하는 악당, 여성을 구하기 위해 악당과 대결하는 경찰 지망생의 구도이다. 문제는 이 구도들이 맞물릴 때 발생하는 효과이다. 청년을 영웅으로 추앙하기 위해 영화는 고통받는 여자를 말초적으로 전시한다. 여자가 고통스러울수록 두 남자의 영웅 지수는 상승한다. 황당하게도 이 와중에도 영화는 시종일관 유머를 고집한다. 한쪽에서 난자적출 범죄가 심각하게 진행된다. 다른 한 쪽에서 남자들의 말장난과 몸개그가 가볍게 시전된다. ‘그녀들’을 절실하게 걱정해야 할 때 ‘그들’의 재롱을 즐겨야 하는 자리, ‘그들’의 재롱을 따라 ‘그녀들’의 고통을 웃고 넘겨야 하는 자리가 영화의 진심인 것이다. 
 
영화 '귀향'.  [사진제공=와우픽쳐스]

영화 '귀향'. [사진제공=와우픽쳐스]

 
 마지막으로, 남자영화는 여성의 몸을 구경거리로 삼거나 도구화한다. '귀향'을 남자영화라고 한다면 어색할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과 한마디 없는 일본을 고발하는 이 영화는 윤리적으로 훌륭해 보인다. 개봉 즈음 단체 관람 열풍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귀향'은 남자영화다. 이 영화는 뜨겁게 고발하기 위해 여성의 나체를 다양한 영화언어를 동원해 아무렇지 않은 듯 전시한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여성의 몸을 자극적으로 활용해도 상관없다는 듯이 행동한다. 그러는 사이 일제 만행의 피해자인 여성은, 비록 재현의 결과물일지라도, 다시 한 번 남성 중심적 시선에 의해 구경거리로 추락한다. 우리는 역사적 비극에 공감한 것일까, 아니면 여성의 고통을 구경한 것일까. 
 
'군함도'

'군함도'

 
스크린 독점과 모호한 역사관으로 논란이 된 '군함도' 역시 남자영화다. 일제강점기의 상흔을 여성의 몸으로 표상하기 때문이다. 여성 캐릭터의 신체에 새겨진, 일본군이 우겨넣은 문신이 그것이다. 민족의 수난이 곧 여성의 수난으로 등치되는 것이다. 여성의 몸을 역사의 도화지 수준으로 취급하는 감수성이다.
 젠더 감수성에 방점을 찍어 남자영화의 특징을 일별해 본 것이지만 이 외에도 폭력적인 묘사 방식은 부지기수다. 보다 본질적인 것은 남자영화에 대한 우리의 태도이다. 젠더 감수성만으로 영화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편협하다는 반론이 있다. 그런 접근이 벌써부터 지겹다는 의견도 제법 보인다. 되묻고 싶다. 진짜 편협하고 지겨운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진화한 젠더 감수성으로 남자영화를 비판하는 태도가 아니라 퇴행적 젠더 감수성을 지겹도록 고수하는 남자영화 자체이다. 여성 착취 이미지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둔감한 감수성, 둔감해도 별 지장 없는 구조, 그러니까 둔감할 수 있는 권력이야말로 진짜 문제인 것이다. 젠더 감수성을 중심에 둔 갑론을박은 지금보다 훨씬 더 뜨거워져야 한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박우성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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