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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 시즌이 다가오면 나는 ‘대포’를 든다

중앙일보 2017.09.04 09:33
직캠러로 활동하는 신모(25)씨가 가수 볼빨간사춘기의 공연 영상을 찍고 있다. [사진 인스타그램]

직캠러로 활동하는 신모(25)씨가 가수 볼빨간사춘기의 공연 영상을 찍고 있다. [사진 인스타그램]

“가장 좋은 자리 잡으려고 경기도 안산에서 오전 7시에 출발했어요.”
 

취미로 사진 찍다 '직캠러'된 이들
4~5명이 한 팀으로 콘서트 영상 촬영
직캠러 운영 채널 구독자수 크게 늘어
중소기획사에는 쏠쏠한 홍보수단

지난 2일 오후 부산 기장군 기장현대차드림볼파크에서 만난 장현각(33)씨가 미리 설치해둔 캠코더를 점검하면서 말했다. 3년차 ‘직캠러’인 그는 가수 알리의 팬이다. 이날 이곳에선 알리 등이 출연하는 공개 콘서트가 열렸다. 입장은 오후 6시부터 가능했지만, 그는 낮 12시에 미리 도착해 기다렸다.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기 가장 좋은 맨 앞자리를 선점하기 위해서다. 장씨 옆에는 또 다른 직캠러 4~5명이 역시 촬영 장비를 세워두고 콘서트가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직캠이란 ‘직접 찍은 캠코더 영상’의 줄임말이다. 직캠을 촬영하는 이를 일컫는 말이 직캠러다. 이들은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찾아다니며 사진과 영상을 찍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다. 바야흐로 야외 축제의 계절이 다가오면서 직캠러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장씨가 보여준 스케쥴표에는 주말마다 야외 공연 일정이 빼곡했다. 그는 “우연히 알리의 음악을 듣고 감명을 받아 영상을 찾아보는데 만족스럽지 않아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보통 한 달에 한두개 정도 일정이 잡히는데 가을이 되니 행사가 2배로 늘었다. 장소도 서울·수원·대구·광주 등으로 다양해 바쁘지만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도울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직캠러 장현각(33)씨와 그의 동료들이 2일 오후 부산의 한 행사장에서 직캠을 찍고 있다. 하준호 기자

직캠러 장현각(33)씨와 그의 동료들이 2일 오후 부산의 한 행사장에서 직캠을 찍고 있다. 하준호 기자

직장인 신모(25)씨는 취미로 사진을 찍다가 직캠러가 됐다. 주로 아이유와 볼빨간사춘기 등 여성 가수들의 공연을 다니면서 직캠을 찍는다. 사진 경력은 7~8년, 재작년부터는 캠코더 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신씨의 사진과 영상은 팬들은 물론 해당 가수들에게도 화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신씨는 “가끔 기획사에서 사진을 쓴다고 연락이 오기도 한다. 입대 전 아이유가 직접 편지를 건네준 일이 직캠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직캠러들이 쓰는 망원렌즈 등 촬영 장비는 마치 대포의 포신과 흡사해 일명 ‘대포카메라’로 불린다. 장비의 가격은 수백만원에 이르기도 하지만 직캠러들은 초고화질 영상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장씨가 사용하는 장비의 가격은 300만원이 넘는다. 신씨의 카메라는 렌즈를 포함해 400만원을 웃돈다. 구입할 여력이 없는 10대 청소년 팬들은 대여업체에서 빌리기도 한다. DSLR 카메라와 렌즈 대여가격은 2만~20만원으로 성능에 따라 다양하다. 촬영 장비를 보유한 사람에게 대리 직캠을 부탁하는 팬들도 있다. 지난 7월에 열린 ‘프로듀스101 피날레 콘서트’의 경우 의뢰비가 8만~15만원 정도였다.
 
직캠러 장현각(33)씨가 사용하는 카메라와 렌즈 등은 모두 합쳐 300만원이 넘는다. [사진 장현각씨]

직캠러 장현각(33)씨가 사용하는 카메라와 렌즈 등은 모두 합쳐 300만원이 넘는다. [사진 장현각씨]

최근 TV보다 스마트기기로 가수의 야외 행사 영상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직캠러가 운영하는 채널의 구독자수도 크게 늘었다. 이들이 올린 직캠 영상 조회수가 올라가는 만큼 관련 채널도 늘고 있다. 직캠을 소비하는 팬덤 문화의 변화를 일찌감치 인지한 음악 전문 케이블방송인 엠넷(Mnet)은 프로그램 홍보에 직캠을 활용했다. 포털사이트에 방송용으로 쓰지 않은 출연자별 직캠 영상을 올리는 방식이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프로듀스101’의 시청자들은 출연자의 직캠 영상 조회수로 인기를 가늠하기도 했다. 보이그룹 워너원 멤버 박우진의 팬인 김미진(24·여)씨는 “실제 방송에서는 눈에 띄지 않아 몰랐는데 직캠 영상을 보고 춤 실력에 반했다”고 말했다. 워너원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했다.
 
직캠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14년부터다. 당시 걸그룹 EXID의 팬이 행사 무대영상을 찍어 올렸고 24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후 EXID의 곡이 음원차트 1위에 오르면서 EXID도 스타덤에 올랐다. 2015년에는 걸그룹 여자친구가 라디오 공개방송에서 공연을 하다 미끄러운 바닥에 넘어지는 영상의 조회수가 1200만을 넘었다. 이 그룹 역시 직캠 영상이 화제가 된 이후 팬 수가 급격히 늘었다.
 
보이그룹 워너원(Wanna One) 멤버인 박우진이 Mnet '프로듀스101'에 출연할 당시 직캠 영상. [사진 네이버TV 캡처]

보이그룹 워너원(Wanna One) 멤버인 박우진이 Mnet '프로듀스101'에 출연할 당시 직캠 영상. [사진 네이버TV 캡처]

마케팅에 큰 돈을 쏟아부을 수 없는 중소기획사에게 직캠 영상은 쏠쏠한 홍보 수단이다. 정우진 쇼파르뮤직 실장은 “직캠러 수가 많지는 않지만 그들이 찍어 올리는 영상이 가수 홍보에 많은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직캠 영상을 보고 모니터링을 하면서 개선점을 논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볼빨간사춘기의 멤버 안지영(22)씨는 “꾸준히 공연 다니면서 예쁜 영상을 올려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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