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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성희의 어쩌다 꼰대(10) 주례, 조금 오글거리고 조금 뿌듯

중앙일보 2017.09.04 04:00
가을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것도 그렇지만 친지들이 보내오는 결혼 청첩이 시나브로 늘어난 것도 가을을 실감케 한다. 
 

신문사 부장시절 주례 부탁에 손사래
요즘 양가 부모가 주례서는 사례 많아져

 
청첩장. [중앙포토]

청첩장. [중앙포토]

 
“봄은 여자의 계절이고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어서, 여자는 봄에 결혼을 많이 하고 남자는 가을에 결혼을 많이 한다”는 케케묵은 농담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청첩이 청구서로 느껴진다며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있고, 자기 자식을 치우자면 이것저것 신경 쓰일 일이 많긴 하지만 결혼은 경사(慶事)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주례다. 
 
주례는 말 그대로야 ‘결혼식을 주재하여 진행하는 이’지만,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가정이 원만하고, 결혼 당사자들이 존경하는 이면 무난할 듯한데 간단하지 않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한 말씀 하는 것이라서 꺼리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집안 중 한편이 명망가나 고위 인사를 모셔 은근히 결혼식의 아우라를 더하려는 경우엔 문제가 더 까다롭다.  
 
 
배우 장동건, 고소영씨의 결혼식에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가운데)이 주례를 봤다. [중앙포토]

배우 장동건, 고소영씨의 결혼식에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가운데)이 주례를 봤다. [중앙포토]

 
주변에 어울리는 이들 중 절반가량은 주례를 선 경험이 있다. 어떤 이는 주례를 맡았던 커플을 일 년 후 식사에 초대해 애프터서비스까지 하는데, 그 덕인지 파경을 맞은 경우는 한 건도 없다 자부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주례 부탁을 받으면 조금은 오글거리고 조금은 뿌듯하다. 인생을 잘못 살지는 않았다는 증표 같아서다.
 
 
진땀 뺀 첫 주례  
 
필자는 대학 강의에서 인연을 맺은 ‘제자’에게서 처음 주례 부탁을 받았을 땐 퍽 당황스러웠다. 반백수 신세였기에 빠질 것 없는 신랑·신부의 새 출발을 축하하는 데 누가 될까 싶어서였다. 그래서 다른 은사나 직장의 장(長)을 모시는 게 모양이 나지 않겠냐고, 양가 부모님들이 섭섭해하지 않겠냐고 되물었을 정도였다. 
 
필자를 청한 신랑의 답이 신통했다. “저를 잘 모르면서 의례적인 덕담이나 해주는 분들보다 선생님의 축하를 받고 싶다”며 부모님들의 승낙도 받았다고 했다. 마음씀씀이가 기특해 보여 주례를 맡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서툴 수밖에 없어 진땀을 뺀 기억이 있다.  
 
 
MBC 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가상 결혼을 올린 홍종현·유라, 주례는 가수 태진아다. [중앙포토]

MBC 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가상 결혼을 올린 홍종현·유라, 주례는 가수 태진아다. [중앙포토]

 
하긴 10년쯤 전에 주례로 나설 기회가 있긴 했다. 부장 시절, 한 후배가 주례를 부탁했더랬으니 말이다. 그 커플이 맺어지는 데 작은 인연이 있긴 했지만, 펄쩍 뛰면서 손사래를 치고 말았다. “너 출세하려면 사장이나 최소한 주필에게 부탁해야지. 나한테 했다가는 공연히 밉보여”하면서.
 
이런 ‘깨인’ 의식을 가진 젊은이들이 갈수록 느는 모양이다. 양가 부모님의 덕담으로 주례사를 대신하는 결혼식을 더러 보니 말이다. 이건 대부분 ‘깨인’ 신랑·신부의 건강한 사고방식 때문인 듯하다. 하객은 물론 신랑신부도 귀담아듣지 않는 주례사보다는 이 편이 훨씬 진솔해서 보기에 참하긴 하다.  
 
 
요즘 결혼식에선 양가 부모님의 덕담을 주례사로 대신 하기도 한다. [중앙포토]

요즘 결혼식에선 양가 부모님의 덕담을 주례사로 대신 하기도 한다. [중앙포토]

 
이처럼 결혼식 풍경이 달라지면서, 우리 같은 반백수들로선 조금은 겸연쩍고 조금은 자랑스런 주례 경험을 할 일이 갈수록 줄어들 전망이다. 주례를 부탁받으면 서로의 주례사를 쉬쉬 주고받으며 나름 유쾌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일이었는데….
 
그나저나 아들 결혼식도 주례 없이 양가 아버지들이 나서 치르기로 했는데 예비사돈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소주 한 잔 하고 나서 하면 안 될까”했다가 예비 안사돈에게 혼쭐이 났다니 묵은 주례사라도 보내드려야 하려나.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jaejae99@hanmail.net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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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필진

[김성희의 천일서화] 책생책사(冊生冊死). 책을 읽고 기자를 꿈꿨고, 출판팀장으로 기자 생활을 마무리했다.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핵심은 ‘재미’였다. 공연히 무게 잡는 책은 싫기도 하고 읽어낼 깜냥도 못 되었으니.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재미있는 책’ 이야기 또는 재미있는 ‘책 이야기’를 쓰려 한다. 실타래가 풀려나가는 듯한 아라비안나이트식 책 이야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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