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렬 국제부장
북한 탄도미사일이 일본 상공 통과한 날 바로 전화했어야
대북 화해협력 정착 위해 일본과 협력 강화한 DJ 되새겨야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9/04/4d74f1da-cb7d-4107-9912-eeaeab74563b.jpg)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중앙포토]
하지만 충격에 빠진 상대에게 먼저 전화하는 것과 나중에 상대의 요청으로 통화하는 것은 차원이 같다고 볼 수 없다. 이웃집에 불이 났을 때 불을 보자마자 물동이를 들고 달려가는 것과 불길이 어느 정도 잡히고 난 다음 찾아가는 것의 성의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장에 입장하던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기자들에게 “일본에 1억3000만 명이 살고 있다. 어떤 나라도 미사일을 그 상공으로 쏘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일 안보관계 전문가인 박영준 국방대 교수는 “헤일리 대사의 그 한마디에 일본 국민은 큰 위로를 받았을 것”이라며 “그게 외교”라고 평가했다.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외교 전문가들은 대개 한국의 민주화 이래 한·일 관계가 가장 좋았던 시기로 김대중(DJ) 대통령-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 시절을 꼽는다. 1998년 두 지도자는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위한 공동선언’을 통해 한·일 관계를 한 단계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일본 정부는 과거사에 사죄를 표명했고, 한국 정부는 불행한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손을 내밀었다. 거기엔 물론 DJ·오부치의 인간적 유대와 배려가 크게 작용했다.

1998년 11월 일본을 국빈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왼쪽)은 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기자회견을 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당시 대북 화해 협력을 주요 국가 전략으로 추진한 DJ는 일본 등 주변국의 신뢰와 협조가 필수적임을 간파했다. 그랬기에 일본의 역사인식이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메시지를 절제하면서 외교안보를 비롯한 각 방면에서 한·일 협력을 강화해 나갔던 것이다. DJ의 햇볕정책도 그런 치밀한 전략 위에서 빛을 낼 수 있었다.
3일 북한의 6차 핵실험은 한반도의 운명을 위기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핵을 쥔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한·미·일 삼각 공조와 결속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북한은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한·일, 한·미의 틈을 벌리고 이간질할 것이다.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는 강력해 보인다. 그럴수록 한·미·일 공조를 지키고 강화하기 위한 노력과 정성이 중요하다.
이상렬 국제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