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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한국 축구, 잔디부터 잘 키우자

중앙일보 2017.09.04 02:09 종합 33면 지면보기
송지훈 스포츠부 기자

송지훈 스포츠부 기자

지난달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이란과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9차전.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명운이 걸린 이 경기에서 한국은 아쉬운 0-0 무승부에 그쳤다.
 
선수들의 부진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날엔 열악한 잔디 상태가 도마에 올랐다. 공격수 손흥민이 가장 직설적이었다. 그는 “잔디 상태가 나빠 우리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었다”고 불평했다. 축구 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포털 사이트마다 ‘서툰 목수가 연장 탓을 한다’는 질책성 댓글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똑같은 잔디 논란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근본 해결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축구대표팀 선수들은 그동안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경기할 때마다 그라운드 상태에 불만을 표했다. 익명을 원한 한 대표팀 선수는 “서울월드컵경기장 잔디는 오래 쓴 양탄자 같다. 밀도도, 탄력도 부족하다. 경기 중 급히 방향을 바꿀 때 제대로 버텨주지 못한다. 그래서 선수들은 미끄러지고, 공은 불규칙 바운드가 잦다”고 불만스러워했다. 그는 “우리 안방 선수들이 간판 시설인 서울월드컵경기장을 기피한 지 오래”라고 털어놓았다.
듬성듬성 파인 잔디 위에 쭈그려 앉은 손흥민. 한국 축구의 현주소를 대변하는 듯하다. [연합뉴스]

듬성듬성 파인 잔디 위에 쭈그려 앉은 손흥민. 한국 축구의 현주소를 대변하는 듯하다. [연합뉴스]

 
실제로 잔디 관리 시스템이 주먹구구식이란 비판이 나온다. 경기장 관리 주체인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은 이란전을 앞두고 1년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7000만원을 들여 잔디 보식을 했다. 하지만 경기 2주 전 급히 하는 바람에 잔디 뿌리가 충분히 자라지 못했다. 국내 월드컵경기장에 파종한 잔디는 영상 5~25도 사이의 서늘한 장소에서 잘 자라는 한지형이다. 낮 최고 기온이 연일 30도를 웃돈 데다 비가 자주 내려 후텁지근했던 8월의 한국 여름 기후에선 발육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대한축구협회의 소극적 대처도 문제다. 그동안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선 잔디 생육에 악영향을 미치는 대규모 행사가 자주 열렸다. 축구협회는 최소한 월드컵 최종예선을 앞두고선 잔디 보호를 위해 관리 주체 측과 적극 협상에 나서야 했다. 축구협회는 경기가 끝난 뒤에도 “경기장 관리 권한이 없어 어쩔 수 없다”는 앵무새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건설된 월드컵 경기장의 잔디 논란은 해마다 반복되는 레퍼토리다. 한준희 아주대 스포츠레저학과 겸임교수는 “월드컵 경기장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대한축구협회나 K리그 팀들이 잔디 유지 관리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송지훈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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