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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드론 레이싱이 스포츠냐고 묻는다면

중앙일보 2017.09.04 02:03 종합 34면 지면보기
장혜수 스포츠부 차장

장혜수 스포츠부 차장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을 앞둔 그해 10월 초 바둑 국가대표팀의 태릉선수촌 입촌이 화제가 됐다. ‘투 톱’ 이창호·이세돌 등 대표팀은 입촌 직후 복싱·역도 선수와 함께 ‘밸런스 테스트와 도핑 테스트’를 했고 ‘전문 트레이너와 함께 체력 훈련’도 했다. 강동윤은 입촌 도중 택시에 발을 밟혀 첫 ‘부상 선수’가 됐다. 대표팀의 3박4일 태릉 생활이 화제가 된 데는 ‘바둑이 스포츠인가’라는 의문과 ‘어떻게 훈련할까’ 하는 호기심이 한몫했다. 한국 바둑은 광저우에서 금메달 3개를 석권했다.
 
스포츠란 무엇인가. 국제스포츠과학·체육협의회(ICSSPE)의 ‘스포츠 선언(Declarations about Sport)’에 따르면 ‘플레이의 성격을 가지면서, 자신 또는 타인과 경쟁하거나 자연적 장애에 맞서는 것과 관련된 모든 신체 활동’이다. 스포츠가 될 수 있는 ‘신체 활동(physical activity)’이 어디까지인지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 사람의 움직임(심지어 움직이지 않는 것조차)에 신체적 활동 아닌 게 어디 있겠나. 따라서 땀 한 방울 나지 않더라도 ‘타인과 경쟁’하고 ‘플레이의 성격’을 가진 바둑은 스포츠다.
 
바둑을 물고 들어간 건 기술 발전에 따라 생겨난 신종 스포츠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국제항공연맹(FAI)이 주최한 ‘제1회 국제드론콘퍼런스·엑스포’가 2~3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렸다. 1905년 창립한 FAI는 항공기·열기구·낙하산·모형항공기·행글라이더·패러글라이더 등 공중을 나는 것과 관련된 스포츠를 총괄하는 국제기구다. FAI가 핫이슈인 드론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FAI가 ‘드론도 스포츠’라고 말할 수 있는 연결고리는 ‘드론 레이싱’이다.
 
드론 레이싱은 선수가 FPV(원뜻은 ‘1인칭 시점’)라 부르는 고글을 쓰고, 시속 100㎞ 이상의 속도로 나는 드론을 조종해 기록을 겨루는 스포츠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보니 경기를 마친 선수는 치열한 대국을 끝낸 바둑기사처럼 진빠진 표정이다. 이번 행사가 열린 로잔연방공대에선 드론 레이싱 대회도 함께 열렸다.
 
무주공산인 이 신종 스포츠를 놓고 FAI 등 여러 단체가 주도권 경쟁을 시작했다. 한국도 그중 하나다. 바둑처럼 드론 레이싱도 스포츠의 ‘제도권’에 들어오려 할 것이다. 제도권 스포츠는 바둑에 그랬듯 견제하고 반발할 것이다. 농반진반으로 ‘미국 스포츠 채널 ESPN이 중계하면 스포츠’란 말들을 하는데 ESPN은 이미 드론 레이싱을 중계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온 콘퍼런스 참석자들은 겉으론 웃었지만 돌아서선 유리한 위치에 서기 위한 합종현횡을 모색했다. 논쟁은 무주공산에 오른 뒤 해도 늦지 않다.
 
장혜수 스포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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