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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트럼프의 한·미 FTA 폐기 발언, 1%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중앙일보 2017.09.04 02:00 종합 34면 지면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과 미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미 주요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좌진에게 다음 주 검토작업을 시작하라고 지시했다는 구체적 내용까지 나왔다. 허리케인 수해 현장을 방문한 트럼프는 “그 문제(한·미 FTA 폐기 여부)를 자주 생각하고 있다”며 보도 내용을 인정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후 미 정부 차원에서 한·미 FTA 수정이나 재협상 아닌 폐기를 언급한 건 처음이다.
 
트럼프의 발언은 일단 내년 중간선거를 겨냥한 국내 정치용으로 볼 수 있다. 여러 후유증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를 없던 일로 하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분명히 드러낼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더구나 지금은 미 교역 비중의 절반을 차지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이 진행 중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재협상에 미온적인 캐나다와 멕시코를 압박하려고 한·미 FTA 폐기라는 깜짝 카드를 던졌을 수 있다.
 
물론 한·미 FTA 폐기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계속하는 상황에서 한·미 동맹을 파탄에 빠뜨릴 수 있는 위험성을 지녔다. 이 때문에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같은 핵심 측근조차 강하게 반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경제계의 반발도 만만찮다. 미 상공회의소는 “한·미 FTA 폐기는 농업 등 산업계와 백악관 사이의 관계를 파열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미제조업자협회도 “되도록 빨리 정부 고위 관리, 의회 의원, 주지사들이 만나 대책을 논의하라”고 촉구했다.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집권 공화당에서도 한·미 FTA 폐기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아 의회 통과라는 문턱을 넘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로선 협상 전략의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미국 측이 FTA 폐기를 들고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 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 측에 유리한 결과물을 어떻게든 챙기겠다는 트럼프와 미 정부의 의지가 만만치 않음이 드러났다. FTA 효과에 대한 양측 공동조사 등 재협상 프로세스를 서둘러 진행해 미국이 협정 폐기를 공식화할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 우리 정부 통상교섭본부 쇄신도 서둘러야 한다. 정권교체와 소속 부처를 둘러싼 혼선으로 교섭인력을 제대로 짜지 못했다. 미 의회와 재계 등 잠재적 우군의 설득에도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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