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트럼프의 협상술, FTA 재협상 고지 선점 위한 엄포 가능성”

중앙일보 2017.09.04 01:11 종합 10면 지면보기
시한폭탄의 시계가 켜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여부를 다음주부터 논의하겠다고 한 것은 단순한 무역전쟁 선포가 아니다. 실제 실행에 옮길 경우 향후 대북 공조는 물론 기존 한·미 동맹의 구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한·미 FTA 폐기 논의” 강수 왜
WP “이미 많은 준비 진척된 상태”
미사일 지침 개정 허용하는 대신
FTA 양보 원하는 메시지일 수도

워싱턴포스트(WP)는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등 백악관과 행정부 고위 인사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협정 폐기 움직임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위협이 점점 고조되는 상황에서 한·미 FTA를 개정이나 재협상도 아닌 폐기로 갔을 때의 한·미 양국 관계에 생길 심각한 균열을 우려해서다. 하지만 협상 대표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폐기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소식통을 인용,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들과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5일 백악관에서 회의를 열 것”이라고 보도했다. 통상 전문지 ‘인사이드 유에스 트레이즈’는 “5일 폐기 절차를 개시할 것”이라며 ‘폐기’ 쪽에 무게를 뒀다. WP는 “(최종적으론) 재협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협정은 남겨 두는 결정을 할 수도 있지만 FTA 폐기를 위한 준비는 이미 많이 진척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그러나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아직은 ‘한·미 FTA 개정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엄포’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달 22일 서울에서 열린 FTA 개정 특별회의에서 한국 측이 미국 측의 주장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향후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헤어진 데 대해 분노한 트럼프가 폐기 검토를 참모들에게 지시한 것으로 안다”며 “한국의 협상 강공에 더 큰 강공으로 맞서야 한다는 트럼프식 협상술로 보인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달 시작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에 힘을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FTA 폐기라는 카드를 당장 내놓기는 물리적으로 힘들 것이란 분석도 있다. “당장이라도 폐기를 검토할 것”이란 정도의 ‘경고’선에서 협상의 긴장도를 높게 유지해 갈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NAFTA 재협상의 진도가 나가지 않거나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면 자신의 지지 기반인 백인 노동자를 의식해 FTA 폐기를 심각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1일 밤 트럼프가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한·미 간 미사일 지침에 대해 한국 측이 희망하는 수준으로 해 주겠다”고 통 큰 선물을 던진 것과 연계해 분석하는 목소리도 있다. 미사일 지침(탄두 중량을 현행 500㎏에서 1t 이상으로 증량)에선 한국에 양보안을 던지면서 같은 시기에 진행되는 한·미 FTA 개정 협상에선 강하게 양보를 촉구하는 ‘바터(교환)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 면에서 ‘폐기’ 거론은 문 대통령에게 선물을 내놓으라는 메시지일 수 있다.
 
한편 일본은 트럼프 행정부가 NAFTA와 한·미 FTA에서 특별한 성과를 올리지 못할 경우 미·일 FTA 체결을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대책 마련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트럼프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하긴 했지만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미국과의 양자 FTA에는 반대하고 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