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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소나타 2악장 … 백건우는 베토벤으로 변해갔다

중앙일보 2017.09.04 01:00 종합 25면 지면보기
10년 만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에 도전한 백건우. 거장의 면모를 드러냈다. 세계 피아노 연주사가 만들어지는 시간이었다. ‘끝없는 여정’은 이번 전작 연주회의 타이틀이다. [사진 예술의전당]

10년 만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에 도전한 백건우. 거장의 면모를 드러냈다. 세계 피아노 연주사가 만들어지는 시간이었다. ‘끝없는 여정’은 이번 전작 연주회의 타이틀이다. [사진 예술의전당]

현재 들을 수 있는 세계 최고의 베토벤 연주였다. 지난 1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백건우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 전곡 연주가 시작됐다. 오는 8일까지 매일 열리는 백건우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는 2007년에 이어 두 번째이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 리뷰
매우 깨끗하고 둥그스름한 소리
한 음이라도 안 들리는 부분 없어
마음·기술·몸 모두 성숙의 극치
세계 피아노 연주사 새로 쓰는 시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를 2번이나 하는 피아니스트는 많지 않다. 피아니스트의 재능과 역량은 물론, 끊임없는 견실한 연구와 작품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비로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백건우의 이번 연주회는 한국을 넘어 세계 클래식 피아노계의 큰 이벤트이자 사건이다. 필자 또한 도쿄에서 서둘러 가기로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연장에 도착하니 연주회 시작 10분 전, 객석을 바라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나 많은 청중이 모이다니!
 
첫날의 프로그램은 총 8회 연주회 중에서도 가장 ‘교육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전반부에서는 20번·1번·19번 등 초기 소나타 3곡, 후반부에서는 ‘전원’과 ‘비창’을 연주했다. 전곡 연주에서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32곡의 배열, 말하자면 프로그램 빌딩인데 그가 만들어내는 소나타 조합(회차별 프로그램)에서는 음악적 통찰의 깊이가 돋보였다.
 
이날 백건우는 어느 소나타, 어느 부분에서도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표현을 아주 자연스럽게 일절의 작위적 표현 없이 연주해 나아갔다. 그래서 일단 백건우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그 연주법 이외의 표현을 떠올릴 수 없게 되어버린다. 음악적 설득력의 극한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성부의 모든 소리가 매우 깨끗하게, 또 둥그스름하고 아름다운 소리로 연주되었으며 한 음이라도 들리지 않는 부분이 없다.
 
19번과 20번은 아름다움과 자애로움으로 가득 찬 연주였다. 1번 소나타의 1악장에서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백건우만의 연주법이 아주 흥미로웠다. 이 소나타는 단조의 주요 화음이 분산되며 치닫고 올라가는 모티브로 시작된다. 18세기 후반 독일 만하임 궁정에서 활약한 작곡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음형으로 ‘만하임의 외침’ 또는 ‘만하임의 로켓’이라고도 불려진다. 보통은 오른손만으로 치는 이 모티브를 백건우는 첫 음 만을 왼손으로 잡고 나머지를 오른손으로 잡아 이상적인 표현을 주고 있었다. 이 모티브의 표현은 1번 소나타의 생명과도 같은 부분이다. 이제 백건우는 운지(핑거링)나 페달링, 손의 배분이나 템포 등 자신만의 연주법에 관련한 세부 사항들을 기록하는 ‘백건우 연주법 에디션’을 출판해야 할 시기에 온 것은 아닐까.
 
후반부의 소나타 두 곡은 이날 연주회의 백미였다. ‘전원’에서는 전반 세 곡에서 의도적으로 억제했던 다이나믹한 피아니즘이 진가를 발휘, 4개 악장의 성격이 정확하게 그려졌다. 특히 훌륭했던 것은 베토벤이 가장 연주하기 좋아했다고 전해지는 2악장이었다. 우울함으로 가득찬 주선율을 연주해 가는 가운데 백건우는 베토벤 그 자체로 변해갔다.
 
그리되면 이어지는 ‘비창’이 명연주가 되지 않을 리가 없다. 1악장은 엄숙하고 힘차게 연주되고, 2악장에서는 아름답고 기품 있는 선율이 깊은 감정으로 채워지다가 피날레에서는 우아하게 곡이 마무리됐다.
 
이날 청중들에 관해서도 특별히 언급해야 한다. 전반부를 마칠 즈음에 이미 환호성이 튀어 나왔지만, ‘비창’ 연주를 마칠 때는 그 환호가 대폭발했다. 연주 첫날 이렇다면 8일 마지막날에는 청중들의 환호성으로 콘서트홀이 부서질지도 모른다고 필자는 생각했다. 겸손히 행동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거나 대가의 명연주 조차 흠 내고 싶어 안달하는 시끄러운 ‘비평가형 매니아’가 많은 일본의 클래식 연주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의 연주회가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마음·기술·몸 전부가 성숙의 극치를 맞이한 현재의 백건우는 현역 연주자들 사이에서도 최고의 거장 중 한 명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백건우와 비슷한 예술적 수준을 갖춘 피아니스트들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연주를 떠올릴 수는 있지만 그들은 전곡 연주를 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8일까지 남은 리사이틀은 세계 피아노 연주사가 만들어지는 시간이 될 것이며, 우리에겐 그 현장을 마주 하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다행히도 백건우의 피아니즘이 종횡으로 발휘되는 중기소나타(18번, 23번 ‘열정’, 21번 ‘발트슈타인’ 등)나 후기 소나타는 이제부터 연주될 예정이다. 
 
타카쿠 사토루(高久 暁) 음악 평론가·일본대학예술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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