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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치고, 난 막고… 달튼과 에반스의 우정

중앙일보 2017.09.04 01:00 경제 10면 지면보기
미국인 야구선수와 캐나다 출신 아이스하키 선수가 한국에서 절친한 친구가 됐다. 잠실구장에서 만난 에반스(왼쪽)와 달튼. 달튼은 “친구 덕분에 시구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에반스는 “달튼을 응원하러 아이스하키 경기장을 방문하겠다”고 화답했다. [김춘식 기자]

미국인 야구선수와 캐나다 출신 아이스하키 선수가 한국에서 절친한 친구가 됐다. 잠실구장에서 만난 에반스(왼쪽)와 달튼. 달튼은 “친구 덕분에 시구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에반스는 “달튼을 응원하러 아이스하키 경기장을 방문하겠다”고 화답했다. [김춘식 기자]

“요즘 두산 잘하던데?” “아이스하키 대표팀도 잘하더라.”
 

야구·아이스하키 동갑 스타들의 수다
미국서 온 두산 내야수 에반스
“다른 운동 소질 없어 야구 전념
달튼 이름, 내 별명 ‘빤스’보다 좋아”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수문장 달튼
“에반스 덕에 꿈에 그리던 시구도
평창서 모국 캐나다와 맞대결 설레”

최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만난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 골리(골키퍼) 맷 달튼(31·안양 한라)과 프로야구 두산의 내야수 닉 에반스(31)의 대화 내용이다. 두 선수는 국적도, 종목도 다르다. 캐나다 출신의 달튼은 아이스하키, 미국 출신의 에반스는 야구 선수다. 그렇지만 동갑내기인 둘은 한국에서 진한 우정을 키우고 있다.
 
한국에 먼저 온 건 달튼이다. 달튼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보스턴 브루인스를 거쳐 세계 2위 리그인 러시아대륙간리그(KHL)에서 활약했다. 그러다 2014년 7월 실업팀 한라에 입단했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와 한라는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전력 강화를 위해 달튼을 데려왔다. 달튼은 “돈을 원했다면 러시아에 남았을 것이다. 평창 올림픽에서 한국대표로 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두산 베어스 내야수 닉 에반스와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골리 맷 달툰. 김춘식 기자

두산 베어스 내야수 닉 에반스와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골리 맷 달툰. 김춘식 기자

에반스는 한국 생활 2년차다. 2004년 뉴욕 메츠에 지명된 에반스는 2008년 빅리그에 데뷔했다. 2014년 일본 라쿠텐에서 잠시 뛰었던 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2015년 마이너리그에 머물렀던 에반스는 그해 겨울 두산과 계약했다. 에반스는 "난 다른 외국인선수들보다 쉽게 한국행을 결정했다. 미국에서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에 온 뒤 매일 야구를 할 수 있어 정말 기쁘다"고 했다.
 
둘이 친해진 건 지난해 달튼이 잠실구장을 찾으면서부터다. 달튼은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 두산 직원의 초청을 받았고, 두산의 팬이 됐다. 마침 나이가 같은 에반스와 한국 생활과 운동 이야기를 하면서 가까워졌다. 달튼은 "난 야구를 정말 좋아한다. 내 고향인 온타리오주 클린턴이 디트로이트와 토론토 사이에 있어 (디트로이트)타이거스와 (토론토)블루제이스 경기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그는 "쉬는 날에 야구장에 틈틈이 온다. 에반스는 정말 파워가 대단하다. 공을 부셔버린다"고 했다. 달튼은 "에반스 덕분에 시구도 하게 됐다"고 기뻐했다. 두산 통역 김용환씨는 "달튼이 야구를 좋아하다 보니 궁금한 걸 에반스에게 많이 물어보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달튼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야구와 아이스하키를 병행했다. 그는 “포지션은 내야수와 포수였다. 야구를 통해 눈과 손의 협응 능력을 키웠다. 야구를 한 게 아이스하키 골리를 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지금도 시즌이 끝나고 캐나다에 돌아가면 취미로 야구를 한다”고 말했다. 사막지역인 미국 애리조나주 글렌데일 출신 에반스도 아이스하키 경험이 있다. 에반스는 "야구 말고도 풋볼이나 골프 등 여러 가지 스포츠를 했다. 아이스하키도 10~12살 때 해봤다. 골리는 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운동엔 소질이 없어 빨리 야구에 전념했다"고 웃었다. 
지난해 3월 특별귀화를 통해 한국인이 된 달튼은 현재 태극마크를 달고 뛰고 있다. 아이스하키에서 골리는 전력의 60% 이상을 차지한다는 분석도 있다. 달튼은 지난 4월 우크라이나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디비전1 그룹A(2부리그)에 한국대표로 출전해 선방쇼를 펼쳤다. ‘동네북’ 신세였던 한국은 그 덕분에 준우승을 차지하며 처음으로 1부리그 월드챔피언십에 진출했다. 에반스는 “달튼의 귀화 결정을 존중한다. 인생에 한 번뿐인 기회를 잘 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똑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엔 "야구는 그러기 어렵다는 걸 안다. 물론 만약이지만 기회가 생긴다면 영광"이라고 했다.
 
에반스는 지난해 초반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1할대 타율에 그쳐 2군에 내려갔다. 그러나 적응을 마친 뒤부터는 장타를 펑펑 터트려 타율 0.308, 24홈런·81타점을 기록했다. 올 시즌엔 타율 0.300, 23홈런·77타점(4일 현재)을 기록 중이라 더 좋은 성적이 기대된다. 에반스는 "지난해 경험이 도움이 된다. 똑같은 동료, 코칭스태프와 뛴다는 점도 좋다. 두산에서 뛰는 것은 내게 큰 축복"이라고 말했다.
 
달튼에겐 ‘한라성(漢拏城)’이란 근사한 한국이름이 있다. 한라의 골문을 철옹성 같이 지킨다는 뜻이다. 두산 동료들과 팬들이 부르는 에반스의 별명은 ‘빤스’다. 에반스가 맹활약을 펼칠 땐 ‘황금빤스’ ‘수퍼빤스’로 업그레이드 된다. 에반스는 "내 별명보다 좋다. 나도 달튼처럼 '요새'같이 멋진 별명이 있으면 좋을텐데…"라고 했다. ‘빤스’가 속옷을 의미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달튼은 “멋지다. 스토리가 있는 별명 아니냐”며 껄껄 웃었다.
 
한국 생활도 완전히 익숙해졌다. 달튼은 "나는 서울을 좋아한다. 멋진 도시다. 부산과 제주도도 가봤는데 정말 좋았다. 볼 것도 많았고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에반스도 "나도 이 나라 모든 곳이 좋다.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사우나다. 지금도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싶다"고 말했다. 둘은 좋아하는 음식으론 나란히 '불고기'를 꼽았다. 에반스는 한국말로 "돼지(고기) 팬"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맷 달튼의 시구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맷 달튼의 시구

최근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으로 남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두 선수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에반스는 “처음엔 걱정을 좀 했다. 그러나 정작 한국인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더라. 미국의 가족들이 걱정스럽게 안부를 물어도 ‘괜찮다’고 답한다”고 말했다. 달튼도 "가족들이 걱정스럽게 안부를 물어도 '여긴 항상 그렇다. 괜찮다'고 답한다.
 
에반스와 달튼은 각각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있다. 포스트시즌 진출을 예약한 두산은 사상 첫 한국시리즈 3연패(連覇)에 도전한다. 달튼은 내년 2월 평창에서 모국 캐나다를 상대로 올림픽 데뷔전을 치른다. 달튼은 "캐나다는 정말 강하다. 하지만 정말 기다려지는 경기”라고 말했다. 달튼은 “지금처럼만 한다면 두산은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마무리를 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에반스는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올림픽 첫 승을 기도한다”며 “스프링캠프 기간이라 어렵지만 비행기표를 준다면 평창에 가서 응원하겠다”는 농담을 던졌다.
 
김효경·박린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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