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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낙하산에 멍든 한국거래소의 슬픈 운명

중앙일보 2017.09.04 01:00 경제 9면 지면보기
조현숙 경제부 기자

조현숙 경제부 기자

한국거래소는 공공기관이 아니다. KB증권(6.42%)에서 KR선물(0.07%)까지 34개 증권·선물회사가 한국거래소 지분을 나눠가지고 있다.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뽑는 절차도 그래서 여느 공공기관과 다르다.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금융위원장이 후보를 검토하거나 이사장을 임명하지 않는다. 한국거래소에서 자체적으로 구성한 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후보를 추려낸다. 한국거래소 지분을 가진 34개 증권·선물회사 대표가 모여 최종 후보를 이사장으로 선임한다. 형식상 나무랄 데 없는 민영회사다.
 
한국거래소가 지금의 위치에 오기까지 지난한 투쟁의 과정이 있었다. 2005년 증권거래소와 코스닥거래소, 선물거래소 3곳이 합쳐진 통합 증권선물거래소(현 한국거래소)가 출범한다. 당시 성격은 공공기관이었다. 거래소는 국내 증권시장을 열어 수수료를 받는 독점 사업권을 갖고 있다. 여기에 시장 감독이란 막강한 권한까지 쥐고 있다. 민간 기구지만 공공 성격이 뚜렷하다는 게 공공기관 지정의 이유였다.
 
이후 한국거래소는 공공기관 해제(2006년), 재지정(2009년), 해제(2016년)를 반복했다. 두 논리가 충돌했기 때문이다. ‘독점 기관으로서 방만 경영을 막아야 한다.’ ‘민간 회사로서의 자율·독립이 중요하다.’
 
이런 역사 속에서도 절대 변하지 않은 게 있다. 낙하산 이사장이다.
 
정찬우 이사장은 지난달 휴가 중에 갑자기 출근해 임원회의를 열어 사의를 표명했다. 곧바로 신임 이사장 선출 절차가 시작됐지만 후보자 접수 기간도 끝나지 않았는데 이미 ‘대선 캠프 출신 누가 유력하다더라’ ‘관료 출신 누구, 정치인 출신 누가 경쟁한다더라’ 같은 뒷말이 흘러나온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낙하산 투하가 임박했다는 신호다.
 
2004년 존 테인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대표가 메릴린치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된다. 존 테인은 골드만삭스 CEO까지 역임한 인물이다. 이 전문가는 이후 민간 금융회사 CEO로 옮겼다. 정부의 낙하산은 얼씬도 못했다.
 
한국 증시를 대표하는 한국거래소 이사장의 위상은 어떤가. 정부와 거래소, 증권업계 안팎의 얘기를 들어보면 낙하산 고리가 이번에도 끊어지지 않을 것 같다. 임명 때 낙하산 논란을 일으켰던 정 이사장은 11개월 최단기 임기란 기록만 세우고 떠나게 됐다. 낙하산은 또다른 낙하산을 부를 뿐이란 교훈만 남긴 채 말이다.
 
조현숙 경제부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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