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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대담해지는 김정은의 핵 도박 노림수는

중앙일보 2017.09.03 18:29
 북한, 아홉 번째 핵 보유국 될까
  

북한,아홉번째 핵 보유국 될까...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과 다른점은

 북한이 결국 6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김정은은 지난 7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의 발사에 이어 3일 ICBM장착용 수소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핵 도발의 강도와 수위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핵 위협을 구실로 자국의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핵무기·미사일을 개발한다고 주장하며 아홉번째 '핵 보유국'의 지위 인정을 기대하고 있다.
 
 현재 공식적인 핵 보유국은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중국등 5개국이다.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 등은 안보 문제로 핵무기·미사일을 개발한 비공식 핵 보유국이다. 
 북한의 주장대로 이번 6차 핵실험이 성공한 것으로 판명되면, 김일성이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했던 핵 개발 프로그램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김일성은 한반도 비핵화를 유훈으로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일성이 1964년 10월 중국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에게 보낸 서한에서 “북한은 핵무기의 전면적 금지와 핵무기 폐기를 지금까지도, 또 앞으로도 계속 지지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2007년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우리는 핵무기를 가질 의사가 없다. 유훈이다. 우리의 이러한 의지는 확고하다”면서 김일성의 유훈을 확인시켜줬다. 하지만 유훈은 공염불이 됐다. 김정일은 핵무기를 유산으로 물려줬다. 북한은 김정일의 가장 큰 업적으로 핵 강국의 지위에 올려놓은 것을 내세우고 있다. 
 
 비공식 핵 보유국인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 등도 북한처럼 핵을 보유하기 이전까지는 자신들의 속내를 철두철미하게 감췄다. 자와할랄 네루(1889~1964) 전 인도 총리는 “우리는 전쟁과는 거리가 먼 원자력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다른 목적에 쓰이도록 인도가 강요를 받게 된다면, 어느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권한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네루의 애매모호한 성명이 인도의 원자력 개발에 중요한 원칙이 됐다. 중국·파키스탄을 견제하려던 인도는 그동안 숨겨왔던 욕망을 74년 5월 15일 부처님 탄신일에 핵실험을 통해 드러냈다. 이때 붙여진 코드명이 ‘미소 짓는 부처’였다. 
 
 이스라엘은 핵실험을 하지 않았고 핵 보유국도 선언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적대적인 아랍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어 영토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 개발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골다 메이어(1898~1978) 전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이 지역에서 사용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두 번째 국가도 되고 싶지도 않다”며 애매모호한 입장을 천명했다. 모세 디얀(1915~1981) 전 이스라엘 국방장관도 “우리가 원자 핵폭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없다. 단지 우리는 그러한 무기를 사용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을 뿐”이라고 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이처럼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이 핵무기 보유에 관한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말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 NPT 가입 안 해 
국제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핵무기 보유가 확산되자 이를 금지하기 위한 국제적 합의로 1968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은 NPT에 가입하지 않았다.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는 국제법에 적용받고 있지 않는다는 구실을 들어 '떳떳하게' 핵을 보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다르다. 북한이 이미 1985년 NPT에 가입했기 때문에 규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북한이 ‘멋모르고’ NPT에 가입한 것은 러시아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조건으로 경수로 핵 발전소를 제공하겠다고 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북한은 전력난 해소를 위해 핵 발전소가 필요했다. 나중에 이 가입으로 인해 많은 갈등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결국 사달이 난 것은 2002년 10월이다. 켈리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으로 북한의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이 발각돼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갈등을 빚었다.  
 
북한의 핵 개발은 NPT 위반
북한은 이에 대한 반발로 2003년 1월 NPT를 탈퇴했다. 북한은 이를 계기로 더 이상 NPT의 의무를 준수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제사회는 북한이 NPT에 가입한 기간에 이를 어기고 핵 개발을 진행한 것을 따지고 있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통해 핵무기를 개발한 것은 NPT 제2조를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제2조는 핵무기 비보유국이 핵무기 또는 기타 핵폭발 장치를 제조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획득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북한이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과 다른 결정적 차이점은 미국과의 관계다. 유엔 안보리나 IAEA가 이들 비공식 핵 보유국의 지속적인 핵 보유에 대해 아무런 규제를 못하고 있는 건, 미국과의 관계에 따라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전략적·국내 정치적 이유로 미국의 어느 정부도 손댈 수 없는 ‘성역’으로 간주되고 있고, 인도는 미국의 핵 협력 파트너로 공식화됐다. 파키스탄은 알 카에다 소탕의 명목으로 미국으로부터 다양한 지원을 받고 있다. 결국 핵 보유가 미국과의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북,미국과 평화협정 체결 원해 
 북한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43년 전부터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했다. 1974년 3월 최고인민회의(한국의 국회) 제5기 3차 회의에서 채택한 미국 상·하 양원에 보내는 공개서한에서다. 북한은 당시 “7·4 남북 공동성명이 발표된 이후 2년이 지났지만 군사적 대결과 전쟁 위험이 지속된다”며 미국과 직접 담판을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의 대답을 듣지 못한 채 40년이 넘도록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핵 문제는 남조선 당국이 끼어들 명분이 없다”며 “한반도 핵 문제는 철저히 우리와 미국 사이에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면서 핵무기를 포함한 안보 문제를 통미봉남(通美封南, 한국은 무시하고 미국과 대화)으로 풀려고 한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 회의를 열어 "북한이 우리와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하고 과거보다 더 강한 위력을 핵실험을 했다"고 비난했다.정의용 안보실장은 "문 대통령이 북한의 연이은 도발에 대해 국제사회와 함께 최고의 강한 응징 방안을 지시했다"며 "북한이 핵미사일 계획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방법으로 포기하고, 북한을 완전히 고립시키기 위한 안보리 결의 추진 등 모든 외교적 방법을 강구키로 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북한이 ‘레드 라인’(금지선)에 접근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화성-14형 발사 이후 “아주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다”며 “혹독한 조치를 생각하고 있다”며 강경 대응을 시사했었다.점점 대담해지는 김정은의 핵 도발에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대응 카드를 내놓을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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