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백건우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 첫공연 리뷰

중앙일보 2017.09.03 12:31
백건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 리사이틀 첫 회 공연 리뷰
 

"현재 들을 수 있는 세계최고의 베토벤 연주"
음악평론가 타카쿠 사토루(일본대학예술학부교수) 특별기고

백건우

백건우

 
현재 들을 수 있는 세계 최고의 베토벤 연주다. 지난 1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 전곡 연주가 시작되었다. 백건우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는 2007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이다. 그리고 이번 전곡 연주는 올해 올 3월 말부터 10월 중순까지 한국의 크고 작은 도시에서 소나타 곡 수에 따라 32번 열리고 있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연속 공연의 절정을 이루는 공연이기도 하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를 2번이나 가능하게 하는 피아니스트는 많지 않다. 그것은 피아니스트의 재능과 역량은 물론, 끊임없는 견실한 연구와 작품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비로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백건우의 이번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회는 한국을 넘어 세계 클래식 피아노계의 큰 이벤트이자 사건이다. 필자 또한 도쿄에서 서둘러 가기로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연장에 도착하니 연주회 시작 10분 전, 객석을 바라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나 많은 청중이 모이다니!
 
 
첫날의 프로그램은 총 8회 연주회 중에서도 가장 ‘교육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 구성은 10년 전 전곡 연주회 첫날 공연과도 일부 달랐다. 연주회 전반부에서는 초기 소나타 3곡(20번 G장조 작품번호 49-2, 1번 f단조 작품번호 2-1, 19번 g단조 작품번호 49-1)이 연주되었다. 베토벤이 태어나고 자랐던 본을 떠나 비엔나로 진출해 음악계의 총아(寵兒)가 되어 1794년부터 1797년까지 3년에 걸쳐 작곡한, 스승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영향이 짙은 작품들이다. 피아노를 배울 때 첫 걸음 단계에서 절대적으로 공부하게 되는 필수 교재이지만, 백건우와 같은 거장 피아니스트가 연주회에서 이 곡을 다룬다는 것은 소나타 전곡 연주와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세 곡의 소나타를 거장의 연주로 듣는다는 것은 베토벤 마지막 세 개의 소나타 연주를 듣는다는 것보다도 더 귀중한 기회 일지 모른다.
 
 
백건우

백건우

후반부에서는 15번 D장조 작품번호 28 '전원'과 8번 c단조 작품번호 13 '비창'이 연주되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는 다양한 관점에서 작품을 다르게 구분 할 수 있지만, 어떠한 관점으로 보더라도 '전원'은 베토벤 창작활동의 ‘초기’ 마지막 소나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초기’ 소나타의 최고 걸작이 '비창'이다. 즉, 첫째 날 프로그램에는 초기 소나타의 출발점(전반부 3곡)과 도착점(후반부 2곡)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와 동시에 음악적 다양성 또한 어필하고 있다(이 5개의 소나타에서는 베토벤이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악장 수 에 따른 다양한 구성 ―2악장 구성, 3악장구성, 4 악장구성 총 3가지―을 보여주고 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의 전곡 연주에서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32곡의 배열, 말하자면 프로그램 빌딩인데 그가 만들어내는 소나타 조합(회차별 프로그램)에는 백건우의 두드러진 음악적 통찰의 깊이와 숙려가 돋보인다.  
 
 
그렇다면 백건우는 연주회 첫 날, 이 다섯 곡의 소나타를 어떻게 연주했을까? 어느 소나타, 어느 부분에서도 백건우는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표현을 아주 자연스럽게 일절의 작위적 표현 없이 연주해 나아갔다. 그래서 일단 백건우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그 연주법 이외의 표현을 떠올릴 수 없게 되어버린다. 음악적 설득력의 극한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성부의 모든 소리가 매우 깨끗하게 또 둥그스름하고 아름다운 소리로 연주되었으며 한 음이라도 들리지 않는 부분이 없다.
 
 
19번과 20번은 아름다움과 자애로움으로 가득 찬 연주였다. 1번 소나타의 1악장에서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백건우만의 연주법이 아주 흥미로웠다. 이 소나타는 단조의 주요 화음이 분산되며 치닫고 올라가는 모티브로 시작된다. 18세기 후반에 독일 만하임 궁정에서 활약한 작곡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음형으로 ‘만하임의 외침’ 또는 ‘만하임의 로켓’이라고도 불려진다. 보통은 오른손만으로 치는 이 모티브를 백건우는 첫 음 만을 왼손으로 잡고 나머지를 오른손으로 잡아 이상적인 표현을 주고 있었다. 이 모티브의 표현은 1번 소나타의 이를 테면 ‘생명’과도 같은 부분이기에 백건우는 공을 들여 이 연주법을 연구한 것이리라 필자는 생각한다. 백건우는 자신의 레퍼토리에 대해 운지(핑거링)나 페달링, 손의 배분이나 템포 등 자신만의 연주법에 관련한 세부 사항들을 기록하는 ‘백건우 연주법 에디션’을 출판해야 할 시기에 온 것은 아닐까.
 
 
백건우

백건우

후반부의 소나타 두 곡은 이날 연주회의 백미였다. '전원'에서는 전반 세 곡에서 의도적으로 억제되어 있던 백건우의 다이나믹한 피아니즘이 진가를 발휘. 4개 악장의 성격이 정확하게 그려졌다. 특히 훌륭했던 것은 베토벤이 가장 연주하기 좋아했다고 전해지는 2악장이었다. 우울함을 가득 채운 주선율을 연주해 가는 가운데 백건우는 베토벤 그 자체로 변해갔다.
 
 
그리되면 이어지는 '비창'이 명연주가 되지 않을 리가 없다. 1악장은 엄숙하고 힘차게 연주되고, 2악장에서는 아름답고 기품 있는 선율이 깊은 감정으로 채워져 연주되며 피날레에서는 우아하게 곡이 마무리되었다.
 
 
이 다섯 곡의 소나타를 꼼짝달싹 못하고 경청하고 있던 청중들에 관해서도 특필해야 할 것이다. 전반부를 마칠 즈음에 이미 환호성이 튀어 나왔지만, '비창' 연주를 마칠 때는 그 환호가 대폭발하였다. 연주 첫날 이렇다면 8일 마지막날에는 청중들의 환호성으로 콘서트홀이 부서질지도 모른다고 필자는 생각했다. 겸손히 행동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거나 대가의 명연주 조차 흠 내고 싶어 안달하는 시끄러운 ‘비평가형 매니아’가 많은 일본의 클래식음악 연주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의 연주회가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마음 · 기술 · 몸 전부가 성숙의 극치를 맞이한 현재의 백건우는 현역 연주자들 사이에서도 최고의 거장 중 한 명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백건우와 비슷한 예술적 수준을 갖춘 피아니스트들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연주를 떠올릴 수는 있지만 그들은 전곡 연주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백건우의 베토벤에 국한되지 않은 방대한 레퍼토리와 그의 연령을 감안한다면 이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는 더 이상 없을 지도 모른다.
 
백건우

백건우

 
때문에 3일부터 8일까지 남은 6회의 리사이틀은 세계 피아노 연주사가 만들어지는 시간이 될 것이며 그 현장에 우리를 마주 서게 하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다행히도 백건우의 피아니즘이 종횡으로 발휘되는 중기소나타(18번, 23번 「열정」, 21번 「발트슈타인」 외)나 후기 소나타는 이제부터 연주될 예정이다. 한국의 클래식음악 팬들은 온갖 장애물을 물리치고 고난을 무릅쓰고서라도 백건우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회에 발길을 옮겨 그의 연주에, 그 연주사가 생성되는 현장에 마주서길 바란다.  
 
 
글: 타카쿠 사토루(高久 暁)
음악 평론가・일본대학예술학부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