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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혁명 이끌어가는 ‘냥투’ 자매

중앙선데이 2017.09.03 02:01 547호 31면 지면보기
홍은택 칼럼
“임신 중에 심심해서 좋아하는 고양이를 화투에 그려 넣었어요. 근데 그게 대박이 났지 뭐에요. 까르르르.”

크라우드펀딩 통한 소량 생산이
산업혁명 이후의 대량 생산 대체
뭘 만들지 소비자가 정하는 세상
1인, 2인 기업 늘며 가속화될 것

 
사업을 하다 보니 별의별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 눈에 나도 유난히 별스러울 게다) 얼마 전 만난 김정은(27)씨는 동생 소희(23)씨와 함께 노란색 옷을 유니폼처럼 맞춰 입고 나왔다. 당장 무대 위에 올라가서 김시스터스라고 하고 마이크를 잡아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이다. 카카오가 노란색이어서 나름 신경 쓴 거라나. 다시 보니 유모차에 있는 아이까지도 노란색 옷을 입혔다. (이런 센스쟁이들 ㅋ) 김씨 자매가 고양이 그림 화투인 ‘냥투’의 성공담을 들려주는데 리액션도 쩐다. 좋은 얘기를 들었다 치면 함께 가늘고 높은 목소리로 ‘야아아’ 소리를 내면서 분당 150회 박수로 화답한다. 그들이 처음 냥투의 도안을 만들어 크라우드 펀딩사이트에 “1000개는 주문해야 공장에서 생산해 준대요”라고 후원을 요청할 때도 절절한 호소라기보다는 귀엽게 푸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애교가 통했는지 목표금액 200만원을 921%나 초과한 1800여만원을 모아 생산에 성공했다. 이어 개를 그려 넣은 ‘멍투’를 내놨다. 역시 성공. 공장도 없고, 직원도 없는 젊은 자매가 디자인 하나로 사업할 수 있는 시대다.
 
남편이 머리에 땀이 많아 배개 속통까지 빨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만든 베개로 수출까지 하고 있는 코튼 샤워의 윤주영 이사는 40대 중반까지 그냥 주부였다. 당뇨병에 걸린 엄마를 위해 팥차를 만들었는데 그게 그 까다롭다는 식품 분야에서 특허를 받게 되자 사업에 나선 레드로즈빈의 한은경씨는 그냥 효도를 하고 싶었을 뿐이고, LABO의 김영혜씨는 두드러기와 알레르기로 고생하다가 직접 천연성분 비누, 주방 세제, 빨래용 세제를 만들어 쓰면서 사업하게 된 케이스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기 공장이 없다. 다른 공장에 주문하거나 공장을 빌리거나 아니면 스스로 직접 만든다.
 
예전에는 치약에서부터 침대에 이르기까지 내가 쓰는 모든 제품들은 대부분 아는 브랜드의 것이었다. 원래 우리나라의 소비재 산업은 1950년대 이른바 밀가루·설탕·면화의 삼백으로부터 시작했다. 원료 수입자금도 정부가 대 주고, 아무나 수입하지 못하도록 해서 소수가 기회를 얻었다. 지금 이름만 대면 아는 대기업들은 이때 자본의 원시적 축적을 이뤘거나 이후 60년대말 경부고속도로의 고속버스 지역별 독점운행권을 받아서 성장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유독 한국에서는 제조회사들의 수가 많지 않고 우리는 이들이 매스 미디어를 통해 광고한 제품들을 소비해 왔다.
 
정은씨와 같은 생산자들의 등장은 이런 생태계에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미디어에서 일어난 변화가 서곡이었다. 파워블로거들이 등장해 지식생산 과점체제에 균열을 일으켰다. 자신의 이야기를 알리려면 독자 투고를 해야 했던 사람들이 자유롭게 인터넷에 ‘출판’할 수 있게 됐다. 때론 매스 미디어에 못지않은 주목을 받는다. 아주 길게 보면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발명 이후 500년 만에 겪는 변화였다. 인쇄는 지식의 독점에 종지부를 찍었다. 성직자만 필사본으로 읽던 성경에 면죄부라는 말이 없다는 게 알려지면서 종교개혁이 촉발됐다. 인터넷 시대 이후  인쇄소와 방송국을 소유한 사람들이 과점하고 있던 지식의 생산 자체도 민주화되는 과정에 있다.
 
인쇄혁명으로 지식이 보급되자 다방면에서 변화가 생기는데 그 중 하나가 산업혁명이었다. 물건을 대량보급한 산업혁명은 소비의 독점에 종지부를 찍었다. 왕이나 귀족, 양반들만 누릴 수 있었던 물건이 대중소비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생산은 여전히 공장을 가진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으로 남아 있었다. 이제 누구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돼 가고 있는 것. 매스 미디어에 이어 이제 매스 프로덕션의 차례다.
 
이런 변화의 선두에 있는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 같은 거물이 아니다. 미국에서 목수의 아들 로버트 칼린은 나무로 컴퓨터를 만들어 팔아 보려고 했다. 아무도 받아 주지 않자 2005년 친구들과 브루클린의 한 아파트에서 뚝딱 핸드메이드 쇼핑몰을 만들었다. 11년 뒤인 2016년 한 해에만 18만 명의 생산자들이 참여해 연매출 3조5000억원을 기록하는 엣시(etsy.com)가 될지 상상이나 했을까. 엣시가 평범한 제작자들의 유통을 해결해 준다면 자본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는 게 크라우드펀딩이나 주문생산 방식이다. 2009년에 문을 연 미국의 킥스타터는 지금까지 12만7000개의 공연이나 제품 개발 프로젝트에 3조6000억원을 걷어 줬다. 누적 후원자만 해도 1300만 명.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스마트폰 연동시계 페블 와치는 20만 달러의 모금을 목표했다가 2000만 달러가 걷혔다. 물건을 만들기 전부터 200억원을 수중에 넣고 시작한 셈이다. 킥스타터를 만든 페리 첸도 정보기술(IT)과 거리가 먼 예술가였다. 호주의 디스크자키 두 명을 미국으로 초청해 공연을 개최하려다 후원자가 없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직접 후원자를 모집하는 사이트를 만든 것이 크라우드펀딩의 붐을 일으켰다.
 
한국에서도 공장과 자본 없이 생산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지면서 1인, 2인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광고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반응이 절대적이다. 선택되지 않으면 아예 제품을 생산할 수 없다. 근데 소비자들은 갈수록 입맛이 까다로워져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제품을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내 입에 넣고 내 몸에 닿는 것인데 누가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성분을 써서 생산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생산 결정권이 소비자에게 이전되고 있다. 이 현상은 이런 소비자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 가속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산업혁명이 생산의 혁명이었다고 한다면 지금의 변화는 소비의 혁명이라고 부르는 게 맞지 않을지. 그 혁명의 전사들 중에는 냥투 자매처럼 명랑하고 재기발랄한 사람들도 있을 테니 기분 좋은 변화가 아닐까.
 
 
홍은택
카카오메이커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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