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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빛 가을 하늘 같은 목소리

중앙선데이 2017.09.03 02:00 547호 25면 지면보기
1976년 중앙일보사가 발매한 김소희의 '춘향가' 음반. 7장의 LP 전집이다.

1976년 중앙일보사가 발매한 김소희의 '춘향가' 음반. 7장의 LP 전집이다.

여름도 서서히 짐을 싸고 있다. 가을 입구에서 옛 명인을 생각한다. 그녀의 고향은 선운사가 있는 전북 고창이다. 호는 만정(滿庭). 판소리 ‘심청전’에 나오는 느린 가락의 ‘가을 달빛은 뜰에 가득 차고’에서 유래했다. 귀 밝은 이는 그녀의 소리를 두고 “가을밤 흰 기러기 우는 소리 같다”고 했으니, 그녀의 목소리와 호가 너무도 잘 어울린다. 바로 고(故) 김소희 명창이다.
 

WITH 樂: 김소희의 ‘춘향가’

‘만정’이라는 호는 음악 인생의 출발점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그녀가 소리를 하게 된 것은 일본강점기 최고의 여류 명창인 이화중선의 노래를 듣고 나서다. 당시 이화중선의 대표적인 레퍼토리가 바로 ‘추월만정’이었다. 이화중선은 부산 동래 사람인데, 남원으로 시집을 갔다가 협률사 공연을 보고 집을 나와 광대가 됐다. 김소희 역시 이화중선의 소리를 듣고 광대의 길을 선택했으니, 예술이 주는 강렬한 전염성이 세대 유전된 셈이다.
 
해방 전 ‘추월만정’을 가장 잘 불렀던 이가 이화중선이라면 해방 후에는 김소희라는 평가를 듣기에 이른다. 김소희와 동향의 시인은 그녀의 소리를 “고려청자의 쑥물 든 하늘빛과 조선백자의 희다 겨운 왕옥빛, 안 끝나게 안 끝나게 어려 있도다”라고 표현했다. 만정의 청아하고 힘 있는 목소리를 이보다 예술적으로 표현한 문장은 당분간 나오지 않을 성 싶다.
 
음반으로나마 김소희의 ‘춘향가’를 듣고 있으면 소름 돋는 경험을 몇 번이고 하게 된다. 초입의 ‘적성가’ 대목부터 그렇다. “적성의 아침 날은 늦은 안개 띠어” 하고 소리가 도약을 하는데, 청아함을 유지하며 자연스럽게 내지르는 가창을 듣고 있으면 뒷목이 서늘하다. ‘오리정 이별’ 대목은 춘향이 몽룡과 헤어지는 장면이다. “치마 자락 끌어다 눈물 흔적”으로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헤어지기 싫어하는 춘향의 속내를 구체적인 사물 묘사를 통해 그려내고 이에 화답하는 몽룡의 마음을 애간장 끊어지게 표현한다. 소리 하나에 기대어 슬픈 정경을 눈에 보이듯 그려내는 것이 명창의 능력이다.
 
그녀의 소리에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거친 맛이 약하다는 것과 귀족적 소리라는 것이다. 전자는 상대적인 것이고 후자는 판소리가 서민의 음악이며 동시에 조선말 양반층이 사랑했던 음악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리 낯선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기품 있고 똑 부러지는 성음이 SP시대부터 CD시대까지 대중적인 인기를 끌 수 있는 비결이 아니었나 싶다.
 
김소희의 판소리가 귀족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비단 소리에서만은 아니었다. 판소리를 대하는 자세와 판본을 선택하는 태도에서도 이런 기질은 드러난다. 그녀가 채택한 사설은 점잖고 아니리들 역시 불필요한 것들은 과감히 삭제한다. 인분을 마시고 득음했다는 둥의 판소리에 얽힌 미신 같은 이야기를 김소희는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판소리를 신비화하거나 미신화한다고 생각하여 품위 없는 짓이라고 여긴 것이다. 박경리의 『토지』에 나오는 종가집 서희처럼 판소리계 종부로서의 꼿꼿한 자긍심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주목받는 천재였으며 훌륭한 선생들에게 소리를 익혔다. 본인 역시 천재성과 노력으로 ‘나라의 소리’라는 말을 들을 만큼 존경과 신뢰를 쌓았다. 그녀는 쓰러져가는 종가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짐을 자신의 어깨 위에 스스로 올렸다.
 
흥미로운 것은 김소희와 더불어 판소리계의 스타였다고 할 만한 박동진 명창은 다른 방향으로 이를 이루어낸다는 것이다. 김소희가 주목받는 ‘천재형’이었다면 박동진은 ‘대기만성형’이다. 둘의 나이는 비슷했다. 그러나 김소희가 1930년대부터 천재소녀 소리를 들었다면, 박동진은 1968년 판소리 완창을 시작으로 뒤늦게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 박동진은 재담과 욕, 그리고 임기응변에 능했다. 그의 ‘춘향가’를 듣다보면 몽룡과 방자, 방자와 춘향, 또는 조연들 사이에 벌어지는 사설들에 웃음이 터진다. 반면 김소희의 ‘춘향가’에서는 허튼 소리들이 가급적 축소된다. 이렇듯 기품 있는 소리와 판소리에 대한 철학이 결합되면서 김소희표 판소리가 만들어진 셈이다.
 
김소희의 ‘춘향가’는 70년대 후반에 녹음됐다. 가장 좋은 소리를 냈던 시절을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하지만 김소희는 역시 김소희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국악 녹음에 대한 당시의 기술력이다. 창과 아니리가 이행되는 부분에서 인위적 울림이 커졌다 작아졌다하는 경우를 종종 듣게 된다. 그래도 과거 명창들이 남긴 음반들 중에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감사하며 듣는다.
 
남은 여름의 열기로 오는 가을이 아직 미덥지 않다면, 맑게 솟구쳤다 떨어지는 시원한 김소희의 판소리로 가을을 앞당겨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올해는 만정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
 
 
글 엄상준 TV PD 90emper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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