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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해져라, 감춰라, 첨단 기술로 무장하라”

중앙선데이 2017.09.03 02:00 547호 22면 지면보기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10회 부산국제광고제에서 가브리에 아라우조 심사위원이 심사평을 하고 있다.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10회 부산국제광고제에서 가브리에 아라우조 심사위원이 심사평을 하고 있다.

광고계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광고주인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제품을 사라고 광고로 권하는 시대(B2C)가 저물고, 소비자가 다른 소비자에게 제품을 추천하는 시대(C2C)가 이미 도래한 것이다. 화장품 분야를 보자면, 관련 모바일 앱을 깔면 연령대와 피부 타입이 비슷한 소비자들이 남긴 사용 후기를 보며 화장품을 구매할 수 있다. 매체도, 형태도 다양해져서 광고가 무엇인지 쉽게 정의하기 힘든 시대가 된 것이다. 일본 최대의 광고회사 덴츠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던 아키라 카가미의 일갈대로, “이제는 광고 같지 않은 광고, 광고가 아닌 광고의 시대”다.
 

올해 10회 맞은 부산국제광고제로 보는 광고계 최신 트렌드

지난달 24~26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국제광고제의 주요 수상작을 통해 요즘 광고계의 트렌드를 살펴봤다. 올해 10회를 맞은 이번 행사는 56개국에서 출품된 2만1530편을 통해 급변하는 세계 광고계의 오늘과 내일을 함께 고민하는 자리였다.

 
수상작 중 ‘올해의 그랑프리’로 두 작품이 뽑혔다. 공익광고 부문(PSA)에서 영예를 안은 ‘그레이엄을 만나다(Meet Graham)’에 대해 심사위원장이자 광고회사 그레이 그룹 캐나다의 대표인 헬렌 박은 “광고 이상의 것”이라고 호평했다. 작품이 애초부터 영상이나 인쇄물로 제작된 것이 아니어서다. 호주의 광고 회사인 클레멘저 비비디오(Clemenger BBDO)는 그레이엄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냈다. 어떠한 외부 충격에도 장기 손상이 없는, ‘교통사고 프리 인간’이었다. 가슴이 여러 개인데다가 목과 턱의 구분이 없는 그레이엄은 실제 외과 전문의와 교통안전 박사의 조언 및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광고주는 호주의 교통사고위원회였고, 광고라기보다 교통사고를 막기 위한 캠페인으로 출발한 프로젝트다.
 
조각가 덕분에 실물처럼 제작된 그레이엄은 미술관 및 박물관에 전시됐다. 그레이엄처럼 기형적으로 생기지 않고서야 인간은 교통사고가 나면 다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가 직관적이었다. 실제로 그레이엄은 호주의 학교 커리큘럼에 교통안전을 가르치는 생생한 교재로 반영되기도 했다. 그레이엄은 ‘착한’ 캠페인이었고, 아이디어가 빛났으며, 수년 전만 해도 제작하기 어려웠을 법한 기술이 집약됐다. 이는 최근 광고계 트렌드를 설명하는 세 가지 키워드이기도 하다. 바로 ‘착하고, 브랜드 대신 재미를 앞세우며, 첨단 기술을 탑재할 것’이다.
 
애견 사료회사의 휴머니즘 내세운 유기견 입양 캠페인
또 다른 그랑프리 수상작(상업 부문)은 부모와 아이들이 뛰어노는 빛 바랜 영상을 보여주며 이 같은 나래이션으로 시작한다. “부모는 아이들이 태어나면 깊은 유대감을 갖고, 아이들의 유년기에 오랫동안 집중합니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성장해서 떠나면 공허감이 큽니다.”
 
‘빈둥지 증후군’ 캠페인일까. 그런데 이어 나오는 메시지와 영상에 반전이 있다. 탁자 위에 놓인 아이 사진을 치워버리고 대신 개 사진을 놓는다. “애들이 나가면 데리고 오세요. 개를 입양하세요!”
 
이것은 개 사료회사인 페디그리의 광고다. 제목은 ‘자식의 빈 자리를 채워주는 유기견’이다. 광고로 제작된 2분 여의 영상에 사료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없다. 외로운 부모와 버려진 개를 연결시키는 캠페인이 마치 공익 광고처럼 보인다. 실제로 웹사이트를 통해 아이들의 성격과 비슷한 개를 선택해 입양할 수 있게 했다. 청주대 정상수(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직접적인 제품 광고 대신 애견 산업의 파이를 키우자는 취지의 스토리텔링을 재밌게 한 것이 참신했다”며 “브랜드는 뒤로 숨고 선한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광고를 하는 게 요즘 트렌드”라고 덧붙였다. 헬렌 박 심사위원장은 “심사하면서 심사위원 모두가 웃었다. 진실성과 휴머니즘을 유머로 잘 풀어낸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디지털 시대라지만 휴머니즘을 앞세운 착한 광고의 인기는 꾸준한 모양새다.
 
태국의 부동산 개발회사 ‘에이피 타일랜드(AP Thailand)’의 ‘불규칙한 축구장 프로젝트’도 직접적으로 회사 홍보를 하지 않는다. 다만 도시 내 작고 버려진 땅을 불규칙한 모양의 축구 경기장으로 바꿔가는 것을 보여줄 따름이다. 불규칙한 대신 경기장의 좌우 대칭을 유지해 페어 플레이를 할 수 있게 했다. 부산국제광고제 측은 “타임지에서 지난해 꼽은 최고의 발명품 25개 중 하나로 이 프로젝트가 꼽혔다”고 설명했다. 프로젝트를 엮어 광고 영상이 만들어졌고, 올해 부산국제광고제 디자인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경쟁자는 바로 나 … 아바타와 함께 뛰게 한 나이키의 광고
그렇다면 휴머니즘만이 요즘 광고의 대세일까. 부산국제광고제 최환진 집행위원장(한신대 교수)은 “공익광고 부문의 그랑프리를 차지한 ‘그레이엄을 만나다’도 인간의 창의성과 테크놀로지가 합쳐진 하나의 발명품”이라며 “교통사고 관련 무수한 빅데이터를 통해 신체 변화를 낱낱이 분석한 결과 그레이엄을 만들 수 있었고, 이는 수년 전만 해도 제작할 수 없었던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부산국제광고제 컨퍼런스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테마도 ‘애드테크(AD TechㆍIT를 적용한 광고 기법)’였다. “광고는 죽었다. 테크하라”는 문구가 강의 주제로 나올 정도로 디지털 기술자들의 노하우를 배우려는 광고인들로 성황을 이뤘다.
 
예를 들어 나이키의 ‘무제한의 스타디움’은 첨단 기술이 집약된 대표적인 이벤트이자 광고였다. 나이키는 신제품 발매를 기념해 필리핀 마닐라에 200m 길이의 러닝트랙을 만들었다. 신발 밑창 모양 같기도, 뫼비우스 띠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트랙의 벽면은 LED 화면이었다. 달리기 전에 자신의 랩타임(트랙을 한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과 같은 기록을 입력하면 주자의 디지털 아바타가 만들어져 LED 화면 속에서 같이 뛰게 된다. 첨단 기술 덕에 소비자는 트랙 위에서 나 자신과 경쟁하는 이색적인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찍은 영상은 혁신의 메시지를 담은, 새 상품 출시를 위한 광고가 됐다.
 
디자인 부문에서 금상을 받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의 ‘점자 스마트시계 닷(DOT)’ 광고도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일반 손목시계와 모양이 같은데, 시계 화면에 손을 대면 올록볼록 점자가 올라온다. 4개로 배열된 24개의 돌기가 시간부터 날씨 등 각종 정보를 알려준다. 헬렌 박 심사위원장은 “디자인도 훌륭하고 문제 해결 방식도 독특했다”며 “광고의 주요 역할이 사회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라고 할 때 ‘닷’의 점자시계는 시각 장애인의 문제를 해결해줬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
 
 
부산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부산국제광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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