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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 ‘나뭇잎 사이로’ 떠나다

중앙선데이 2017.09.03 02:00 547호 6면 지면보기
유희열과 이소라가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아들과 함께 보다가 조동진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조동진이 누구야?” “그러니까, 지금 니가 보고 있는 저 가수들의 음악적 시조 아니 근원이라고 해야 하나. 유희열, 이소라도 조동진이 이끌었던 하나음악에서 데뷔했고 그곳을 중심으로 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이 한 단계 더 세련되어졌고, 한국의 포크 혹은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대부로 불리며 뮤지션들의 절대적인 존경을 받았던 거장으로서….” “그런데 내가 잘 모르는 걸 보니 대중적인 스타는 아니었나 봐.”
 

별세한 포크 음악의 대부 조동진

맞다. 우리는 그에게 열광한 적이 없었다. 열광이란 뜨거운 감정은 그의 음악엔 어울리지 않았다. 그 역시 ‘대부’니 ‘거장’이니 ‘한국의 ○○’같은 거창한 일컬음과 화려한 찬사로 자신을 기리는 일을 썩 반겨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그는 나뭇잎과 별빛과 강과 바다를 나지막하게 부르며 우리 세대의 삶에 스며들었고 그 깊이는 잊기 어려울 만큼 깊다.
 
1979년 1집 ‘행복한 사람’으로 데뷔한 이래 ‘포크’가수로 불렸지만, 그의 음악은 저항이나 자유분방함의 메시지를 담은 일반적 의미의 포크와는 확연히 달랐다. 또 비탄이나 감상이 주조를 이룬 마이너 풍의 당시 주류 인기 가요와도 거리를 둔 모습이었다. 8비트의 잔잔한 메이저(장조) 곡 ‘행복한 사람’이나 ‘제비꽃’ ‘나뭇잎 사이로’ 등 초기 대표곡으로 그는 한국의 포크 혹은 발라드에 모던함의 새 옷을 입혔다. 한 옥타브를 여간해서는 넘지 않는 음정들과 슬픔과 기쁨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절제된 감정을 실은 노래들로 그는 가요계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대번에 확고히 했다.
 
조근조근 속삭이는 듯하지만 그의 노래는 회화적 이미지와 위안을 담고 있는 노랫말로 큰 울림을 남긴다. 나뭇잎 사이로 비친 가로등과 여린 별빛, 지붕들 사이로 보이는 좁다란 하늘, 그 아래 수줍게 빛나는 젊은 사랑과 꿈, 하지만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멀리 새처럼 날고 싶은’ 어쩔 수 없는 그리움과 동경, 혹은 ‘계절은 이렇게 쉽게 오가는데 우린 또 얼마나 어렵게 사랑해야 하고 얼마나 먼길을 돌아가야 하는지’ 같은 서늘한 삶의 진실, ‘울고 있지만 아직도 남은 별 느낄 수 있는 두 눈이 있기에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라며 던지는 따뜻한 위로. 유난히 섬세하게 갈고 닦은 그의 노랫말 속에서 서경과 서정은 아름답게 얽혔다. 그러면서도 한국 대중가요가 흔히 가졌던 자기도취적인 감상 같은 통속과 전형의 틀에 결코 빠지지 않았다.
 
미니멀리즘적인 가사와 음악처럼 그의 음악 인생 역시 간결했다. 70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38년 동안 단 여섯 장의 정규 앨범만을 남긴 그는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음악계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느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내 안의 잔이 차올라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적실 수 있다”는 엄격함으로 자신에게 쉽게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 아니었을까. 하지만 은둔 속에서 그의 눈길은 강과 바다와 나무를 향하며 더 깊어졌고, 거장의 길이 늘 그러하듯 음악적으로는 더 넓어졌다.
 
오랫동안 그의 이름을 잊은 채 살아왔다면, 그가 지난해 20여 년 만에 내놓은 마지막 앨범의 ‘나무가 되어’는 반드시 들어볼 필요가 있다. 젊은 시절 나뭇잎 사이의 별빛과 꿈을 노래하던 젊었던 그는 일흔이라는 나이 앞에서 이제 “나는 하늘 가린 나무가 되어 예전처럼 움직일 수도 노래할 수도 없어” “끝이 없는 그리움도 흙속으로”라며 덧없는 시간의 흐름을 말한다.
 
하지만 발라드 혹은 일렉트로닉 혹은 앰비언트 음악의 분위기 모두를 담고 있는 이 노래는 포크라는 한 장르로 그의 이름을 말하기 힘들 정도로 실험적이다. 그의 음악이 오랜 세월동안 하나도 늙어지지 않았음을, 그가 마지막까지 조용하면서도 치열하게 쌓아온 투명한 지혜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나무가 된 그는 자신이 한국의 대중음악에 내린 뿌리로, 뻗어올린 가지와 잎으로, 그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는 먼 훗날까지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
 
 
글 이윤정 대중문화평론가 filmpool@gmail.com ,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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