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운동은 나를 찾는 과정… 워킹맘이든 주부든 힘들어도 꼭 해야죠

중앙선데이 2017.09.03 01:40 547호 25면 지면보기
[2017 스포츠 오디세이] 미스 피트니스 코리아의 건강한 수다
김윤경 대표가 자신이 운영하는 피트니스센터에서 제자인 송리라씨의 운동 자세를 잡아주고 있다. 성남=김경록 기자

김윤경 대표가 자신이 운영하는 피트니스센터에서 제자인 송리라씨의 운동 자세를 잡아주고 있다. 성남=김경록 기자

‘제1회 미스 피트니스 코리아 선발대회’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건 내게 행운이었다. 프로급 선수들이 아름다운 몸매와 단련된 근육을 자랑하는 대회는 많다. 그런데 ‘2017 세계 다이어트 엑스포’ 프로그램의 하나로 열린 이 대회는 운동을 좋아하는 일반인들이 출전하는 무대였다. 이들은 자신만의 운동 방법을 시연하고, 실제 피트니스 과제(캐틀벨 들기, 윗몸 일으키기, 러닝머신 달리기 등) 수행 능력을 겨뤘다. 필라테스 강사부터 두 아이의 엄마에 대학생까지, 다양한 경력의 참가자가 저마다 간직한 ‘운동의 정석’을 펼쳐 보일 참이었다.

[43세 ‘여전사’ 김윤경 대표]
합기도 26년 수련, 장애아 8년 돌봐
‘내가 아프면 가정도 없다’ 명심을

[24세 대학생 송리라씨]
살 빼려 시작, 이젠 최고의 취미
하루 2만 보 걸으면 뱃살·체중 잡아

 
지난 8월 1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D홀 특설무대. 본선에 오른 19명이 각자 편안한 복장을 하고 관객 앞에 섰다. 이들은 아령·역기·트램펄린에 심지어 생수병까지, 다양한 소품을 활용한 운동 비법을 2분 안에 소개했다. 이어 1분 동안 피트니스 과제를 얼마나 정확하게 많이 해내는가를 겨루는 경연이 시작됐다. 종목마다 40초 정도 지나자 참가자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동작이 흐트러지고 땀이 비오듯 쏟아졌지만 포기하는 선수는 없었다.
 
내 눈에는 2번과 7번 선수가 들어왔다. 큰 키에 시원시원한 동작이 돋보인 2번은 아무런 도구 없이 요일별로 하는 자신만의 운동법을 시연했다. 7번은 ‘아마조네스 여전사’ 같았다. 그는 압도적인 근육량을 자랑하며 피트니스 과제를 정확하게 수행했다. 더욱 놀라운 건 그가 만 43세라는 사실이었다.
 
심사위원들의 눈은 비슷했다. 2번 송리라씨(24·홍익대 글로벌경영)는 2등에 해당하는 금상을 받았다. 7번 김윤경씨는 동상을 수상했다. 두 사람이 사제지간이라는 사실이 시상식 후 인터뷰를 통해 알려졌다. 대회가 끝난 뒤 김윤경씨가 대표로 있는 경기도 성남의 피트니스센터를 찾았다. 이들에게 ‘여자는 무엇으로 운동하는가’를 묻고 싶었다.
 
“애플힙은 내가 만든 옷 같아”
미스 피트니스 코리아 선발대회에서 2위인 금상을 받은 송리라씨.

미스 피트니스 코리아 선발대회에서 2위인 금상을 받은 송리라씨.

김윤경씨는 대회 때 본 모습과 딴판이었다.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머리를 질끈 동여맨 그에게 “열 살은 더 젊어 보입니다” 했더니 싫지 않은 듯 깔깔 웃었다.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저는 중학교 때부터 26년간 합기도를 수련했어요. 보디빌딩 대회에서 입상한 적도 있어요. 과체중 여성의 다이어트를 돕는 ‘아놀드홍의 백일간의 약속’에 지원한 리라씨를 도와주다가 미스 피트니스 코리아라는 대회가 있다기에 같이 나가 보자 했죠.”
 
송리라씨는 “점심을 너무 많이 먹었어요. 사진이 잘 나와야 할 텐데”라며 화장을 고쳤다. 그는 “작년까지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았어요. 통통한 편이었는데 재수를 하면서 살이 급속도로 쪘죠. 올해 초 우연히 ‘백일간의 약속’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고 도전하게 됐어요” 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김 대표는 “여자들은 나이 들어 살이 찌면 자신감이 사라지고, 도전을 안 하려고 합니다. 저는 나이가 들어도 도전할 수 있고, 나라는 존재를 찾고 빛낼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어요. 제가 합기도 국제 시범단 활동을 오래 해서 무대에 서는 건 자신 있거든요” 라며 다양한 포즈를 보여 줬다.
 
송씨는 “대표님이 무대 매너와 포즈 잡는 법을 꼼꼼히 가르쳐 주셨어요. 대회 앞두고 정말 힘들게 연습했지만 금상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시상식 끝나고 기자들이 인터뷰 요청하고 많은 분들이 사진 찍자고 하는 게 새로운 경험이었죠”라고 말했다.
 
애플힙·섹시백 등의 이름을 내건 대회가 늘어나고 있다. 정성 들여 가꾼 몸을 보여 주는 건 좋지만 여성 몸의 특정 부분을 부각하고, 지나친 상업화로 몰린다는 우려도 있다. 송씨는 “처음 그런 대회 구경 갔을 때 선수들이 엉덩이 내밀고 하는 게 부끄럽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그 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게 되니까 마음이 바뀌었어요. 나중에는 더 멋진 포즈 취해서 스포트라이트 받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지나친 상업화는 경계해야겠죠. 그런데 그런 대회 출전한 선수들이 노출하는 근육 자체가 자신들이 만든 옷 같은 거예요. 디자이너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옷을 사람들 앞에 내놓듯이 내가 내 몸을 멋지게 만들어 보여 주는 겁니다. 수영장에서 수영복 안 입고 바지 입고 돌아다닐 수는 없잖아요” 라고 했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
김윤경 대표는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해 입상한 경력도 있다. [사진 김윤경]

김윤경 대표는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해 입상한 경력도 있다. [사진 김윤경]

“운동보다 더 좋은 남자를 찾지 못해 결혼을 못 했다”는 김 대표는 중증 장애아동 시설에서 8년간 일한 경력이 있다. 김 대표는 “거기서 혹독한 엄마 체험을 했어요. 갓 태어난 아기들 안고 업고 씻기고 요람 흔들어 재우다 보면 반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잠이 들어요. 그렇게 24시간 일하고 하루 쉬는 2교대 근무였는데, 쉬는 날에도 몽롱한 상태로 운동을 했어요. 꾸준히 운동하는 패턴을 잃어버리면 더 힘들다는 걸 아니까요” 라고 지난 시절을 회고했다.
 
그는 “처녀 때는 운동도 하고 몸매 관리도 하다가 결혼해서 아이 낳고, 뱃살이 불어나면서 포기하는 여성들이 많아요. 워킹맘이든 전업주부든 시간 내기가 쉽지 않겠지만 운동은 해야 합니다. ‘나를 찾는 과정’이니까요”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잠실에서 성남까지 두살배기 아이를 안고 온 고도비만 주부 얘기를 들려줬다. “제 인스타그램의 무료 레슨 공지를 보고 온 그분이 ‘20kg 빼고 싶다’고 간절하게 말했어요. ‘목표를 너무 높게 잡지 말고 현실적으로 조금씩 해 보자. 앉고 일어서고, 들고 놓고 하는 생활 속 움직임을 조금만 응용하면 좋은 운동이 될 수 있다. 간절히 원하면 집에서 아기를 안고도 할 수 있는 동작이 있다’고 말해 줬어요. 주부님들은 ‘내가 없으면 애도 없고 가족도 없다. 내가 아프면 좋은 엄마, 좋은 아내도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김 대표에게 운동을 배우는 주부 정지희씨도 격한 공감을 표현했다. “여자들은 결혼한 뒤에 처녀 때 입던 옷이 안 맞으면 엄청나게 스트레스 받아요. 친구들도 만나기 싫고, 우울증이 옵니다. 그런데 운동을 하면서 달라지는 내 모습을 보면서 자신감이 생기고, 몸에 꽉 끼던 옷이 헐렁해지면 희열을 느끼게 돼요.”
 
트램펄린 강사인 임효원씨가 세살배기 딸을 안고 스트레칭 시범을 보이고 있다. [사진 임효원]

트램펄린 강사인 임효원씨가 세살배기 딸을 안고 스트레칭 시범을 보이고 있다. [사진 임효원]

미스 피트니스 코리아 대회에 출전했던 임효원씨는 다섯 살, 세살 난 딸을 둔 엄마다. 입상은 못 했지만 힘든 미션을 끝까지 웃으면서 해내 큰 박수를 받았다. 트램펄린 강사로 일하고 있는 임씨와는 전화 통화를 했다. 그는 “주부들이 운동을 꾸준히 하려면 강한 의무감이 있어야 해요. 아이와 같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미혼 여성들은 어떨까. 송리라씨의 말이다. “처음에는 다이어트 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는데 이젠 내가 정말 좋아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평생 친구를 만났구나 싶어요. 취업준비·직장생활에 바빠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 운동은 시간을 내서 해야 하는 거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제가 대회에서 보여 드린 것처럼 아무런 기구 없이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만보계 차고 하루 2만 보를 걸으면 체중·뱃살 다 뺄 수 있죠.”
 
‘건강한 몸’ 열풍이 불면서 애플힙과 초콜릿 복근이 넘쳐 나는 세상이 됐다. 부럽고 따라 하고 싶기도 하지만 지레 겁을 먹거나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김 대표는 “요즘 세상이 몸매에 대한 환상을 갖게 하는 것 같아요. 눈에 보이는 것만 강조하는 게 안타깝죠. 운동할 때 그렇게 예쁜 표정이 나오나요? 오만상을 찌푸리고 헉헉거리고, 이게 리얼리티고 더 인간미 있는 거죠”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지하철 모란역까지 30분 정도를 걸어갔다. 새벽 수영강습에서 만나는 회원들 모습이 떠올랐다. 호리병 몸매를 자랑하는 20대도 있고, 장독대 몸매의 할머니도 계신다. 모두들 즐겁게, 때로는 힘겹게 물살을 가르는 모습이 아름답다. 송리라씨가 “아빠 카톡에 있는 문구”라며 보여준 게 생각났다. ‘오늘이 내 남은 인생에 가장 젊은 날이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