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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가진 사람을 ‘높은 사람’이라 부르는 까닭

중앙선데이 2017.09.03 01:37 547호 23면 지면보기
[도시와 건축] 계단 이야기
멕시코에 위치한 마야문명의 꽃인 치첸이트사 피라미드.

멕시코에 위치한 마야문명의 꽃인 치첸이트사 피라미드.

계단은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한 건축 장치이다. 재미난 사실은 그리스부터 잉카문명까지, 수천 년의 건축역사 동안 계단 한 단의 높이는 대략 18㎝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필자가 경험해 본 가장 높았던 계단 한 단의 높이는 마야 피라미드 신전의 계단이다. 하지만 이들도 사람이 걸어서 올라가지 못할 정도의 계단은 아니었다. 이처럼 계단의 높이가 비슷한 것은 인체의 크기가 지난 수천 년간 거의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단은 골반, 무릎, 발목, 발가락이라는 관절을 가지고 직립보행하는 인간이 좁은 면적 안에서 다른 높이의 공간을 가기 위해 고안된 장치이다. 인체의 모양이 극단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계단의 모양과 크기는 유지될 것이다.  

수천년간 계단 높이는 18㎝ 정도
인간의 키가 변하지 않은 때문

자신은 감추고 남 볼 수 있어
높은 곳은 권력 더 갖는 공간
신전·법원건물도 계단 선호

자동차 중심 도시 만들다보니
비상계단 외 계단은 멸종 위기

 
산 정상 올라가는 것은 권력 추구 본능  
계단은 높은 곳을 가게 해 주는 장치인데 건축에서 높은 곳은 권력을 더 가지는 공간이다. 높은 곳이 권력의 자리인 이유는 높은 곳에 있으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사람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남을 볼 수 있을 때 권력을 가진다는 원리는 팬옵티콘이라는 감옥에서 잘 나타난다. ‘팬옵티콘’은 원의 평면 가운데 간수탑이 위치하고 360도로 주변에 수백 개의 죄수들의 방이 있다. 특징적인 점은 간수탑의 창문이 작다는 것이다. 창문이 작기 때문에 주변의 죄수들은 간수를 볼 수 없지만 간수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죄수들을 감시할 수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고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는 자리는 권력을 가진다. 그런데 건축에서 가장 확실하게 다른 사람을 관찰할 수 있는 자리는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자리이다. 그래서 우리는 권력을 더 가진 사람을 ‘높은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높은 곳이 권력의 자리라는 것은 면적과도 관련이 있다. 대체적으로 높은 곳은 좁다. 구조적 안정성을 위해서 높은 곳보다 낮은 곳이 넓다. 산을 보더라도 높은 정상부위로 갈수록 점점 좁아진다. 상대적으로 희귀한 공간인 높은 곳은 희소성의 가치를 가진다. 그래서 권력이 있는 사람은 높은 곳을 차지하려고 한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우주 어느 곳을 가든지 중력의 지배를 받는다. 중력 때문에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가만히 있으면 낮은 곳으로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거슬러서 높은 곳으로 간다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다. 당연히 힘이 남는 권력자들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이유도 이러한 권력추구의 본능이 반영된 행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계단을 장악하는 사람이 권력자
해방촌이 시작되는 108하늘계단.

해방촌이 시작되는 108하늘계단.

건축역사에서 의미 있는 최초의 계단은 지구라트의 계단이다. 지구라트는 지금의 이라크에 위치한 과거 수메르 문명 시절 만들어진 신전건축이다. 지구라트는 성경 창세기에서 바벨탑이라고 묘사가 되기도 한 건축물이다. 성경에 나오는 주요인물 중 야곱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하나님과 씨름을 해 비겨서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야곱은 지금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시작되게 한 주인공이다. 그와 관련된 일화 중, 야곱이 꿈을 꾸는데 하나님의 사람이 사다리를 타고 하늘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유명한 ‘야곱의 사다리’라는 일화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사다리가 번역이 잘못된 것이라는 학설이 있다. 히브리어 원문을 살펴보면 사실은 사다리가 아니라 ‘단’이라는 것이다. 꿈에서 야곱이 본 것은 공중에 놓인 사다리가 아니라 그 지역의 신전인 지구라트의 계단이라는 얘기다.  
 
수메르 문명의 권력자들은 엄청난 노동력, 경제력, 정치력을 동원해서 벽돌로 거대한 산 같은 지구라트를 만들어 놓고 그 곳으로 올라가는 높은 계단을 만들었다. 그들은 경외심이 들게 하는 신들의 이야기를 만들고 신을 위한 공간인 신전을 지구라트 꼭대기기에 안치시켰다. 그 성스러운 꼭대기 신전 공간에는 신이 임재한다고 했다. 그곳에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은 제사장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권력을 가지는 자는 신인가? 아니면 제사장인가? 신은 우리가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으니 자연스럽게 대변인인 제사장이 권력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제사장은 신전을 건축해 준 왕에게 하늘에서 내려 준 적통성을 부여해 준다. 신전건축을 통해서 정치적 왕과 종교적 제사장이 상호인증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몇 가지 알 수 있다. 높은 것은 권력을 창출한다. 높은 곳을 만든 다음에 그곳에 가게 해 주는 건축 장치는 계단이다. 그리고 그 계단을 장악하는 사람은 권력자이다. 지구라트를 지은 사람들은 계단을 통해서 권력을 창출하고 그 권력을 통해서 나라를 통치하는 힘을 만들어 낸 것이다.  
 
계단은 이처럼 권력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장치이다. 따라서 우리는 권력을 나타내는 다양한 건축물에서 계단을 볼 수 있다. 파르테논 신전의 하단부에도 계단이 있고, 자금성에도 황제가 있는 건물은 수십 개의 계단 위에 위치한다. 우리나라의 법원이나 검찰건물도 계단을 선호한다.    
 
우리는 지형을 극복하기 위한 계단이 주류
중국 베이징에 있는 자금성의 오문 쪽에서 바라본 태화전. [중앙포토]

중국 베이징에 있는 자금성의 오문 쪽에서 바라본 태화전. [중앙포토]

지금까지 초기 건축에서 나타나는 권력창출을 하는 계단의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우리의 계단은 어떤가? 우리나라는 중동지역과는 달리 주변에 산이 많다. 그러다 보니 건축적으로 계단을 만들어서 높이 올라가는 식의 건축으로는 권력이 창출되기 어려웠다. 힘들여서 지구라트를 만들지 않은 이유는 아무리 높이 건축을 해서 올라가 봐야 주변에 북한산이 훨씬 더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구라트나 피라미드 같이 높은 계단을 가진 건축은 주변에 높은 산이 없는 사막 지형에 지어졌다. 주변에 산이 있다면 그것과 경쟁하는 건축은 무의미하다.  
 
산이 있으면 대신 그 꼭대기에 지은 경우는 있다. 아테네에서 제일 높은 언덕은 주변에서 잘 보이고 특이하게도 꼭대기가 평평해서 건물을 짓기 적당했다. 그래서 힘들게 대리석을 끌고 올라가서 지은 것이 파르테논 신전이다. 여기서 이 높은 언덕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계단인 것이다. 우리는 70%의 산악지형 때문에 건축물의 구축술이 크게 발전하지 않은 이유도 있다. 성을 보더라도 대부분이 ‘산성’으로 되어 있다. 힘들게 평지에 해자를 파고 성을 짓기보다는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악지형을 이용해서 대충 토성만 쌓아도 방어가 되니 성을 짓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권위를 나타내는 건축물을 만들지 않다 보니 중앙집권적인 권력이 창출될 가능성도 적었다. 이러한 지리적 환경 때문에 한반도에 대형 제국이 형성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계단은 권력을 창출하기 위한 계단 보다는 지형을 극복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계단이 주를 이룬다. 과거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주요산업은 농업이었다. 주거 역시 농경지에서 가까운 평지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거에서는 계단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온돌이라는 난방시스템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모든 주거는 단층이었다. 그러다 보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없었다. 집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계단은 마당에서 대청마루에 올라갈 때 밟는 디딤돌 정도였다.  
 
우리나라는 계절풍의 영향으로 장마철이 있는 몬순기후였기 때문에 땅이 습했고, 그래서 주거공간의 높이는 땅의 습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약간 들려진 형태를 띠고 있다. 그래서 몇 개의 단을 올라서 방으로 들어가는 구조를 가진다. 조선시대 건축에서 계단을 볼 수 있는 곳은 사찰건축이다. 억불정책으로 대부분의 사찰들이 산속으로 들어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사지건축에서 나타나는 계단이 여기저기 보이게 된다. 일반주거에 계단이 많이 보이게 된 것은 현대에 와서 도시로 인구가 집중하게 되면서부터다. 한국전쟁이후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서 평지만으로는 주거가 해결되지 않자 경사지에 주거가 들어가는 달동네가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주거공간 속에 계단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보일러 덕분에 2층에도 온돌을 깔 수 있게 되면서 이층 양옥집이 유행했다. 집집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생겨난 것은 이때부터이다.  
 
계단이 건축적으로 힘을 잃게 된 것은 엘리베이터의 발명 때문이다. 엘리베이터가 도입되면서 고층건물이 가능해졌고 사람들은 비상시를 제외하고는 거의 계단을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자동차중심의 도시를 만들다 보니 경사지 지형을 극복하는 방식이 계단에서 축대로 바뀌었다. 달동네에는 사람들이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지만 계단이 있는 곳은 자동차가 진입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대형토목공사를 통해서 축대를 쌓고 건물을 짓게 되었다. 우리의 외부환경에서 계단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무장애 설계라는 시대적인 요구에 의해서 비상계단 이외의 계단은 멸종위기에 처했다. 오히려 지금은 강북 등지에 남아 있는 계단이 자동차를 막는 파수꾼 역할을 한다. 자동차 중심의 도시에서 계단이 있는 곳은 사람이 보호받는 장소가 된 것이다. 그래서 계단이 많은 이화동, 경리단길 등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계단은 시대에 따라서 권력을 창출하여 사람을 억압하기도 했고, 때로는 사람을 보호하기도 하면서 사람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온 건축요소이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젊은 건축가상 등을 수상했고 『현대건축의 흐름』『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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