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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이 된 서점, 그곳서 책 향기에 취하다

중앙선데이 2017.09.03 01:31 547호 14면 지면보기
『세계서점기행』 저자 김언호 대표와 함께한 유럽서점기행
런던 ‘돈트 북스’ 1층에서 지하서가를 내려다본 풍경. 광고판이나 포스터 등이 없어 마치 도서관 같은 느낌이다.

런던 ‘돈트 북스’ 1층에서 지하서가를 내려다본 풍경. 광고판이나 포스터 등이 없어 마치 도서관 같은 느낌이다.

책방을 보러 비행기를 타고 유럽까지 간다-. 책을 사랑하는 이라면 한 번쯤 꿈꿔 봤을 이 이야기가 ‘실화’가 됐다. 지난달 19일 28명의 유럽서점기행단이 8박9일의 일정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 올랐다. 중앙SUNDAY에 연재한 칼럼을 엮은 『세계서점기행』의 저자 김언호 한길사 대표와 기자, 독자 26명이다. 독일·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영국의 주요 서점을 돌아보며 지혜와 감성을 충전하기 위한 여행길이다. 책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책방이 속절없이 문을 닫는 시대. 이 서점들은 어떻게 오랜 시간 살아남아 한 도시를 대표하는 서점이 됐을까. 그 비밀을 엿보러 가는 길이기도 했다.

 

네덜란드 ‘도미니카넌’
연 100만 찾는 가장 아름다운 서점

파리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헤밍웨이 등 문인 아지트 제공

벨기에 ‘쿡 앤드 북’
먹을거리 갖춘 어른들 놀이동산

런던 ‘돈트 북스’
복합공간 거부, 책으로만 승부

유럽서점기행단의 루트는 이랬다. 독일 뒤셀도르프의 대형 서점 ‘마이어셰 드로스테(Mayersche Droste)’에서 시작해 네덜란드로 건너간다. 책방 마니아들 사이에서 소문이 무성한 마스트리흐트의 교회 서점 ‘도미니카넌(Dominicanen)’에 들른 뒤 옆 나라 벨기에 브뤼셀의 ‘쿡 앤드 북(Cook & Book)’으로 향했다. 수많은 영화에 등장한 프랑스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Shakespeare & Company)’를 방문하고 영국 런던의 ‘돈트 북스(Daunt Books)’에서 마무리. ‘서점 풍경이란 게 다 비슷하지 않겠어’라는 건 성급한 편견이었음을 고백한다. 서점들은 저마다의 매력적인 이야기와 전략으로 무장하고 세계에서 몰려드는 독자들을 맞고 있었다.
 
웅장한 고딕 교회가 세계적 서점으로  
마스트리흐트 ‘도미니카넌’ 서점. 723년 전 지어진 교회 안에 철골구조의 서점을 넣었다.

마스트리흐트 ‘도미니카넌’ 서점. 723년 전 지어진 교회 안에 철골구조의 서점을 넣었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도미니카넌’ 서점은 이미 세계적인 명소다. 2008년 영국 신문 가디언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꼽은 이곳에는 매년 100만 명의 손님이 찾아온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이유를 바로 알 수 있다. 80m가 넘는 높다란 천장을 지닌 고딕 교회의 웅장함에 순간, 숨이 멎는다. 1294년 지어진 도미니크파 교회였던 이곳에 2006년 네덜란드 서점 체인인 셀렉시스(Selexys)가 책방을 열었다.
 
교회의 역할을 다한 후 복싱 시합장, 소방서 장비 보관소 등으로 쓰였던 이곳이 서점으로 변신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소유권을 가진 마스트리흐트 교구가 교회 안의 어떤 시설도 파손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조건 덕분에 서점은 옛것과 새것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는 특별한 공간으로 탄생했다. 교회를 장식했던 천장 벽화와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그대로 남아 있고, 벽에서 일정 거리를 두고 3층짜리 검은 철골구조의 서점이 들어섰다.
 
늦은 오후 찾아간 서점은 스테인드글라스를 뚫고 들어온 은은한 빛으로 감싸여 있었다. 1층에는 소설을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신간이, 2층엔 여행서와 음반 매장, 3층에는 앤티크북 등이 있다. 철제 계단을 오르내리며 사진 찍느라 책 들춰 보느라 분주하던 사람들이 옛 교회의 제단으로 사용됐던 공간을 개조한 카페로 모여든다. 누군가 말했다. “사람들이 많은데도 마음이 편안하네요. 한적한 시간에 찾아와 책 한 권 들고 조용히 묵상하면 좋겠어요.”
 
책 수집가의 어지러운 서재를 연상시키는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

책 수집가의 어지러운 서재를 연상시키는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

파리의 센 강변에 있는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도미니카넌 서점과는 다른 의미에서 숨을 멈추게 하는 공간이다. 좁고 구불구불한 서가 사이로 다소 무질서하게 책들이 꽂혀 있다. 주체하지 못할 만큼의 책을 쌓아 놓은 애서가의 다락방에 들어온 느낌이랄까. 미로 같은 서점을 헤매다 반가운 책과 마주친다. 2016년 영국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 영문판이다.
 
영화 ‘비포 선셋’에서 미국 남자 제시(에단 호크)와 프랑스 여자 셀린(줄리 델피)이 9년 만에 재회하는 장소로 등장해 관광명소가 됐지만 이 서점엔 더 오랜 이야기가 있다. 1919년 파리에서 영어책 서점을 연 미국 여성 실비아 비치와 64년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란 이름을 이어받은 조지 휘트먼은 이곳을 갈 곳 없는 작가와 배고픈 지식인들에게 내줬다. 김언호 대표는 “제임스 조이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의 대가는 물론이고 이름 없는 수많은 문학지망생의 안식처이자 아지트였던 곳”이라며 “이런 경이로운 역사가 이 장소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고 했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요즘도 주말마다 작가 초청행사를 열고 서재를 문인들의 집필공간으로 쓴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위쪽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낯선 사람들을 냉대하지 말라. 그들은 변장한 천사일지 모르니(Be not inhospitable to Strangers. Lest They be Angels in Disguise).”
 
책 플러스 알파 vs 책 온리
천장에 장식된 책이 마치 새가 날고 있는 느낌을 주는 브뤼셀 ‘쿡 앤드 북’ 서점의 문학코너.

천장에 장식된 책이 마치 새가 날고 있는 느낌을 주는 브뤼셀 ‘쿡 앤드 북’ 서점의 문학코너.

서점이 책만으로 손님을 모으기 어려워진 시대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많은 책방이 책 외의 먹을거리·즐길거리가 함께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그 가장 진화된 형태를 보고 싶다면 벨기에 브뤼셀의 ‘쿡 앤드 북’에 가야 한다. 쿡(Cook)과 북(Book), 먹기와 읽기를 융합한 이 공간은 김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른들을 위한 놀이동산” 같은 곳이다.
 
놀이동산에 도착한 서점기행단이 환호성과 함께 책방 안으로 흩어진다. 2006년 문을 연 이곳은 독립된 9개의 작은 가게가 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형태다. 각 방은 만화·미술·어린이·푸드·영어책 등의 테마로 꾸며져 있다. 어떤 방은 정중앙에, 혹은 서가 한 모퉁이와 창가에 식사를 위한 테이블과 의자가 놓였다. 총 6개의 레스토랑·카페가 있고 일하는 셰프만 15명이다. 디자이너 잉고 마우러의 조명, 아르네 야콥센의 가구 등으로 꾸민 서점 내부는 발랄함과 고급스러움이 어우러진다.
 
널찍한 야외 테라스까지 갖춘 이곳은 브뤼셀 시민들에게 인기 있는 약속장소다. 매니저 마르틴 하디는 “매출의 60% 정도는 음식에서, 40%는 책에서 나온다”며 “레스토랑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서점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서가에 놓인 책들 옆에 붙어 있는 직원들의 귀여운 손글씨 추천사가 그 노력의 증거처럼 보였다.
 
뒤셀도르프의 대형 서점 ‘마이어셰 드로스테’. 아기자기한 문구용품이 많다. 이영희 기자, [사진 김언호 한길사 대표]

뒤셀도르프의 대형 서점 ‘마이어셰 드로스테’. 아기자기한 문구용품이 많다. 이영희 기자, [사진 김언호 한길사 대표]

독일 뒤셀도르프의  ‘마이어셰 드로스테’ 서점 역시 직원들의 메모로 유명한 곳이다.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New York Trilogie)』 앞에는 ‘우리의 선택’이란 마크가 있고 “뉴욕의 정취를 제대로 느껴 보라”는 글이 적혀 있다. 현대적인 인테리어의 대형 서점인 이곳엔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곳곳에 마련돼 있다. 중앙에는 3층에서 1층으로 이어지는 미끄럼틀이 있다. 서점기행단 중 가장 어린 멤버였던 한빛초 3학년 이수빈양이 미끄럼틀을 타고 스르륵 내려와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책 플러스 알파(+α)’의 움직임에 제대로 역행하는 책방도 있으니 바로 영국 런던의 ‘돈트 북스’다. 이곳에는 카페도, 앉아서 책을 읽는 소파도, 대형 광고판도 없다. 심지어 음악도 틀지 않는다. 오로지 좋은 책만으로 승부하겠다는 경영자의 뚝심이 진하게 전해져 오는 품격 있는 공간이다.
 
대표 제임스 돈트가 1990년 이 자리에 있던 고서점 ‘프랜시스 에드워드’를 인수해 문을 연 돈트 북스는 떡갈나무 서가로 1층과 지하 벽면을 꽉 채웠다. 중세 유럽의 도서관을 보는 듯한 고풍스러움으로 영국 신문 데일리 텔레그래프로부터 “런던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행자를 위한 서점으로 시작한 책방답게 책들이 나라별로 진열돼 있다. ‘포르투갈’ 서가를 살핀다. 여행책은 물론이고 포르투갈 역사책, 로버트 윌슨의 『리스본에서의 작은 죽음(A Small Death in Lisbon)』 등 이곳을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까지 망라돼 있다. 서점 곳곳 직원과 손님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서점기행단은 마지막 방문지였던 이곳에서 꽤 오랜 시간 머물렀다. 물 한 잔 마실 수 없었지만 아름답게 전시된 책의 숲을 거니느라 목이 마른 줄도 몰랐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통한 걸까. 총괄매니저 브렛 울스텐크로프트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땐 왠지 마음이 뜨거워졌다. “런던의 유명인들이 돈트 북스를 자주 찾는데 이유는 손님들이 책에 몰두하느라 말을 걸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요. 우리의 고객은 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어떻게 최고의 경험을 선물하는가가 우리의 유일한 관심사입니다.”
 
 
뒤셀도르프(독일)·런던(영국)=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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