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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 없는 무의탁 노인, 장애인에겐 공공후견 추진해야

중앙선데이 2017.09.03 01:00 547호 10면 지면보기
[탐사기획] 돌봄의 사회화, 성년후견제 <3> 복지 제도로 정착하려면
성백현 서울가정법원장

성백현 서울가정법원장

지난달 29일 서울가정법원 성년후견사건 전담 재판부가 내린 결정은 가족법 전문가들 사이에서 비상한 관심을 불러모았다. 성년후견인이 법원 허가를 받아 피후견인 A씨(80)가 대주주인 회사의 대표이사를 교체하는 안건에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A씨는 매년 수백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 최대주주다. 현재는 아들 B씨(47)가 이 회사 대표이사로 있다.

후견인이 대표 교체 의결권 행사
역할과 권한 범위 지속적으로 확대
후견센터 설치해 사건 폭증 대비

신청인 취하 시 후견 진행 못하는
제도 미비점 시급히 개선해야

 
재판부는 ▶B씨가 회사에서 빌린 돈이 389억원에 달해 회사의 재정적 부담이 큰 점 ▶이 때문에 금융기관들이 대주주인 A씨 재산에 임의경매 신청을 하는 등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이는 그간 피후견인의 일상생활과 금융업무, 법률행위를 도와주는 정도로만 인식됐던 성년후견인의 역할과 권한 범위를 법원이 적극적으로 해석해 더 넓힌 결정이었다.
 
성년후견제가 도입된 지 4년이 넘어가면서 A씨 사례처럼 후견인의 역할도 새로운 영역으로 점차 확장되고 있다. 재산관리인에서 시작해 부양의무를 더한 신상보호자의 역할이 부여됐고 이제는 경영에까지 후견인이 관여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갔다. 피후견인 본인의 복리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성년후견제 취지를 법원이 재판과 감독 실무에 차근차근 반영해온 결과다. 이 덕분에 성년후견제는 단순한 재판 절차를 넘어서 고령화에 대처하는 사회복지 제도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앙SUNDAY는 지난달 30일 성백현(58) 서울가정법원장을 만나 성년후견제의 현주소와 개선 방안에 대해 물었다. 서울가정법원은 전국 법원 중 가장 많은 3개의 후견사건 전담 재판부를 운영하고 있으며 100명이 넘는 법관과 조사관이 참여하는 후견사건 실무연구회도 꾸려가고 있다. 지난 7월에는 후견센터를 법원 내에 처음으로 설치하는 등 사회복지 제도로서의 성년후견제 정착에 힘을 쏟아왔다.
 
재판하는 곳인 법원에 후견센터가 설치된 건 이례적이다.
“성년후견제는 재판과 복지가 결합한 형태의 제도다. 법원은 후견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후 수십 년간 제대로 후견이 이뤄지는지 감독도 해야 한다. 종래 법원 조직만으로는 원활한 관리가 어려웠다. 그래서 후견사건 개시에서부터 후견감독 사건 종료 및 말소등기까지 일관되고 안정적으로 업무를 전담할 상설 조직으로 후견센터를 설치하게 됐다.”
 
사건 수가 계속 급증하고 있다.
“전문성을 갖춘 후견센터가 역할을 제대로 한다면 사건 수 급증에도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지방 가정법원들도 향후 후견센터를 설치할 것으로 본다. 장기적으로는 현재 지원 단위에서 처리하고 있는 후견 업무를 광역별로 모아 처리해야 한다. 거리가 먼 경우는 원격 화상 후견감독을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법원 감독이 부담간다는 후견인들도 있다.
“시행 초기인 만큼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법원 감독은 피후견인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신상이나 재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 한해서만 감독한다. 후견인 입장에선 귀찮다 할 수도 있지만 피후견인 입장에선 꼭 필요한 부분이다.”
 
후견인 역할이 계속 커지고 있다.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피후견인 복리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면 기업 경영 등 전문적인 부분에서도 후견인이 판단해야 한다. 오는 10월에는 기존의 변호사, 법무사, 사회복지사, 공인회계사에 더해 전문 경영인, 정신보건 사회복지사 등을 전문가 후견인 후보로 새로 선발할 예정이다. 후견인 판단에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성년후견제는 2013년 7월 도입됐다.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제도 개선의 여지가 많다. 특히 친족들이 후견을 신청해 놓고 자신이 후견인으로 선임되지 않으면 이를 취하하는 부분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다. 현행법상 당사자가 취하할 경우 후견이 필요해 보이더라도 모든 절차가 종료된다. 최근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알려진 유진 박씨에 대한 성년후견도 신청인인 이모가 이를 취하하면서 종료됐다.
 
성 원장은 “후견이 필요하다고 신청해 놓고 다른 사람이 후견인으로 선임됐다고 이를 취하하는 사건이 종종 있다. 이렇게 되면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 계속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 그래서 후견 신청 이후 청구인이 이를 취하하려면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법무부가 마련한 가사소송법 개정안에 이 부분이 반영되도록 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고 설명했다.
 
검사, 지방자치단체장 등 공익적 차원에서 신청권을 가진 이들의 제도 이용도 적다.
“언론이나 국민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주로 돈 많은 사람이 피후견인인 경우다. 그런데 실제 지금 후견제도에서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공공후견이다. 돌봐줄 사람도 없고 제3자가 돌봐주게 하려 해도 비용을 지불할 수 없는 무의탁 노인과 장애인들이 많다. 상당수는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인수당마저 부당하게 빼앗기기도 한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성년후견 신청권한을 가진 지자체와 검찰에서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후견담당 부서를 설치하고 지자체의 사회복지서비스와 후견감독제도가 연계되도록 해야 한다.”
 
법원 역할도 중요할 것 같다.
“법원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내서 직권으로 후견을 개시할 수는 없다. 다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절차를 신청한 경우 형사재판에서 국선전담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처럼 법원이 변호사나 사회복지사를 국선후견인으로 선임해 사건을 맡기고 월정액의 보수를 지급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법률적 근거, 예산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일단 현행 제도상으로는 제한적으로나마 절차구조 방식을 이용해 후견인을 선임하고 보수를 지급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성 원장은 후견인에 대한 지원도 늘려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이 있다. 부양과 간병의 고통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예전에는 일부에게만 해당됐는데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경험하게 되는 일이 됐다. 후견제는 이 같은 부양과 간병의 고통을 개인에게만 맡겨두지 않고 사회 공적인 틀에서 관리하자는 차원에서 도입된 제도다. 피후견인을 보호하면서 후견인이 겪는 고충도 해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가 발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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