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실질적 경협’ 카드로 北 변화 이끌 지렛대 구축 나선다

중앙선데이 2017.09.03 01:00 547호 5면 지면보기
6일 방러, 푸틴 만나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러시아의 문화·예술을 상징하는 국가대표급 극장이 2개 있다. 둘 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모스크바 볼쇼이극장과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극장이다. 마린스키극장의 총감독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다. 푸틴 대통령은 블라디보스토크의 골드혼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마린스키극장 분관을 내도록 지원했다. 게르기예프는 블라디보스토크를 극동 러시아의 문화·예술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천명한 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최정상급 연주자와 무용수들을 내세워 마린스키 예술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6~7일 동방경제포럼 맞춰 회동
시베리아 에너지, 한국 차·ICT
양국 경제적 이해 상당 부분 겹쳐
긴장 국면 넘기면 탄력 받을 수도

 
극동의 마린스키는 푸틴 대통령의 신동방정책에 대한 의지를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신동방정책은 극동 러시아의 경제적 잠재력을 현실화해 러시아 경제성장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푸틴 대통령의 핵심 국정 어젠다 중 하나다. 푸틴 대통령은 신동방정책을 기치로 내걸고 극동 개발에 정치적 명운을 걸고 있다. 이런 신동방정책을 구체화하는 견인차가 바로 올해 3회째를 맞는 동방경제포럼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다. 이 지역의 발전 잠재력과 한·러 관계의 전략적 심화를 겨냥한 포석이다.
 
문 대통령 ‘新북방정책 비전’ 발표
문재인 대통령은 6~7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제3차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한다. 이어 푸틴 대통령과 한·러 정상회담을 열고 북핵 문제와 남·북·러 3국 경제협력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극동 개발을 포함한 양국 간 실질협력 증진방안과 북핵 문제 해결,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협력방안 등이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포럼 기조연설에서는 정부의 동북아시아·유라시아 경제협력 증진을 위한 ‘신북방정책 비전’도 발표할 예정이다.
 
그동안 정부는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러시아와의 경제협력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매번 북핵 문제에 가로막혀 진전을 보지 못했다. 러시아 측으로부터 ‘노 액션, 토크 온리(No Action, Talk Only·행동은 없고 말만 한다)’라는 불평이 심심찮게 나오는 배경이다. 그런 가운데 이번 정상회담은 ‘실질적 협력’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경제협력 증진을 통해 한·러 관계를 실질적으로 강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이를 북한의 변화를 추동하는 레버리지로 삼겠다는 구상”이라고 전했다.
 
이런 구상이 순항하려면 위기의 지뢰밭인 9~10월 고비를 잘 넘겨야 한다. 9일 북한 정권 수립일을 전후해 6차 핵실험이나 장거리미사일 시험 발사 등 고강도 도발에 나설 가능성을 예의 주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긴장 고조 없이 9월이 지나도 10월 초까지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0·4 남북 공동선언 10주년과 북한의 10·10 당 창건일까지 상황을 잘 관리하면 비핵화 대화를 위한 외교 공간이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듯이 지뢰밭을 무사히 통과하면 대화의 동력을 끌어모을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렇게 대화 모색 국면으로 전환될 때에 대비해 다각적인 외교카드의 하나로 러시아와의 공조를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러시아도 우리와 경제·전략적 이해가 적잖이 겹친다. 러시아는 석유·가스 등 에너지 원자재 가격 하락과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경제제재 등 이중의 위기에 처해 있다. 푸틴 대통령은 극동 개발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열을 올리면서도 중국·일본의 투자를 무턱대고 환영하는 편이 아니다. 대미 전략을 연대하는 파트너로 중국과 꾸준히 관계를 강화하고 있지만 중국 자금이 극동 지역에 풀리는 것은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러시아 정부 측 인사들은 대규모 투자와 함께 중국의 동북 3성 인구가 극동 지역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이 지역이 중국에 경제적으로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일본과는 쿠릴열도 4개 섬 영유권 문제가 걸림돌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푸틴 대통령에게 경제협력을 빌미로 쿠릴열도 4개 섬의 반환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푸틴 대통령으로선 영토 문제에서 일본에 밀릴 경우 정권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대화 국면 대비, 러와 사전 관계 개선 포석
이에 비해 한국과의 관계 강화는 정치·경제적 부담이 없는 점이 큰 유인 요인이다. 한국은 러시아에 직접적 안보 위협적인 존재가 아닌 데다 제조업 기술력이 두터워 경제적으로 최적의 파트너라는 분석이다. 또 경제 주력 분야가 상호 보완적이라 경제협력이 양국 관계 발전의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다. 시베리아에는 한국이 200년간 쓸 수 있는 10조㎥의 가스와 석유·전력 등 주요 자원이 있다. 한국은 이 모든 자원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의 주요 수입 품목은 자동차·정보통신기술(ICT)·합성수지 등인데 한국은 이 분야에서 수출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제재를 받고 있고 최근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와의 대규모 협력은 시기상조라는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외교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우리 정부로선 신중을 기하면서 러시아와 전략적 소통을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만만찮다. 신성원 국립외교원 경제통상연구부장은 “북한 핵·미사일 고도화가 심각한 상황이고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남·북·러 가스관 건설 문제 등 북핵 문제와 한반도 긴장 완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핵심 사업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정부는 북핵 해결 과정에서 남북 관계가 변곡점을 맞으면 러시아를 포함하는 대규모 경제개발정책을 구상하고 있는 만큼 러시아와의 사전 관계 개선은 필수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러 경제협력이 앞서가면서 북한을 지남철처럼 끌어당겨 남·북·러 경제권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의 태도다. 한국과 일본을 겨냥한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등 북한의 중·저강도 도발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신범식 서울대 교수는 “현재는 대북 제재 국면이라는 점에서 일단은 한·러 양자 관계에 초점을 맞추면서 사태 추이를 지켜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용환 기자 narrative@joongang.co.kr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