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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흉터 없이 죽고 싶지 않다

중앙선데이 2017.09.03 01:00 547호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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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 흉터를 보아라!”

'아무것도 아닌자'로 전락한 영웅
오뒷세우스, 흉터로 자신을 증명
고통 통해서만 얻을수 있는 흉터
인생의 굴곡 새겨진 우리의 본질

 
인간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 오뒷세우스가 말한다. 자신을 믿을 수 있도록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겠다면서 무릎을 걷어붙인다. 흉터는 청년 오뒷세우스가 친구들과 함께 처음으로 집을 떠나 외할아버지 집에 가면서 멧돼지를 사냥했을 때 얻은 것이다.  
 
오뒷세우스는 최고의 영웅이었다. 전장에서는 선두로 나서 싸울 만큼 용감했고, 회의장에서는 지혜롭고 우아한 말로 좌중을 휘어잡았다. 집을 떠나 모험을 나설 때마다 곳곳에 이름을 남겼으며, 산더미 같은 보물을 싣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모험을 통해 세상 모든 것을 겪어서 아는 자였고, 목마를 계책으로 삼아 끝내 트로이아를 멸망시킨 지혜의 화신이었다.
 
그러나 그 무엇도 소용없었다. 스무 해 만에 돌아온 오뒷세우스가 고향 사람들 앞에서 자기 정체를 증명할 방법은 없었다. 고왔던 살갗은 사지 위에서 쪼그라들고, 황금으로 반짝이던 머리는 잿빛이 되었으며, 더없이 형형하던 두 눈은 빛을 잃고 흐려졌다. 더럽고 찢어진 웃옷에 낡은 사슴 가죽을 걸친 채, 노끈으로 메는 볼품없는 바랑 하나만 걸친 차림이었다.  
 
아아, 인간이란 얼마나 불쌍한가. 살면서 이룩한 가장 훌륭한 것들로는 자신을 증명할 길이 없다니. 명예가 아무리 찬란하고 지위가 아무리 높고 재산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비참한 노년이 찾아오고 파멸이 임박한 후에는 그 무엇도 한 인간에 대해 말해 주지 않는다. 『오뒷세이아』는 제 꾀에 빠져 ‘아무것도 아닌 자’(outis)로 전락한 영웅 오뒷세우스가 고향인 이타케로 돌아와 정체성을 회복하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그가 이름을 돌려받는 과정을 통해 무엇이 한 사람을 ‘그 사람’으로 만드는가를 탐구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얻은 흉터다.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었을 때, 오뒷세우스는 무릎 위로 옷을 걷어올려서 자신의 이름을 만들어 준 첫 번째 흉터를 보여 줌으로써 간신히 자신을 증명하는 데 성공한다. 그에게 이 사실을 가르친 것은 유모 에우뤼클레이아다. 페넬로페의 명을 받아 발을 씻기려고 다가서 흉터에 손을 대는 순간, 그녀는 흉터를 통해 오뒷세우스를 알아보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흉터란 도대체 무엇인가. 살아가면서 우리 육체에 새겨진 굴곡들이다. 안주하는 삶에는 어떠한 흉터도 있을 수 없다. 흉터는, 성공하든 실패하든, 도전과 모험을 통해서 생겨나는, 즉 고통을 통해서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자질들이다.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덧붙는 상처의 더께가 자신을 이룩한다. 흉터는 우리 몸에 새겨진 인생의 굴곡이며, 타자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우리의 정체성이고 본질이다.
 
『파이트 클럽』에서 현대의 호메로스 척 팔라닉이 말한다. “아무 흉터 없이 죽고 싶지 않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미국 전역을 다니면서 자동차 사고조사를 하는 보험회사 직원. 이케아 카탈로그를 뒤져서 물건을 들이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다. 불면증으로 고생할 뿐, 아무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 안온한 일상을 평범하게 살아간다.
 
출장 갔다 돌아온 날, 가스 누출로 집이 불타 버린 일이 벌어지자 주인공은 비행기 옆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타일러라는 남자 집으로 간다. 술집 앞에서 타일러와 재미로 주먹다짐을 벌인 후, 그는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해방감을 느낀다. 피학적 자기사랑(마조히즘)로부터 오는 완전한 자유의 체험. 이 쾌감을 되살리기 위해 두 사람은 ‘파이트 클럽’을 결성해, 웃통과 신발을 벗고 맨주먹으로 일대일로 싸우는 결투 게임을 퍼뜨린다. ‘파이트 클럽’의 참여자들은 상처 입은 얼굴이 일그러져 갈 때마다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자신들의 견고한 일상이 어이없을 정도로 손쉽게 무너지는 것을 체험한다. 동시에 정체를 잃어버리고 고기처럼 되어 버린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기이한 연대감을 느낀다.
 
도돌이표 같은 삶에서는 흉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고뇌에 시달리는 낮과 아픔에 몸부림치는 밤 없이는 한 인간의 고유성은 형성되지 않는다. 파타이 마토스(Pathei Mathos), ‘고생을 통해서 얻은 지혜’만이 인간의 본질인 것이다. 아이스퀼로스의 말처럼, “신은 인간을 지혜로 이끌되, 오직 고난을 통해서만 지혜를 얻도록 만드니까” 말이다.
 
목숨 걸고 싸우는 모험이라야 존재 자체를 개벽할 만큼 깊은 상처가 생기고, 그것이 흉터로 남아서 한 사람의 상징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살면서 고통 없기를 기도하지 말라. 이 세상에서 우리가 입는 상처는 인간의 덧없는 육신에 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한 축복일지니.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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